by전설리 기자
2008.10.10 03:02:10
7000억弗 구제금융 일환
채권 아닌 주식 매입..초강도 조치
英식 구제금융과 유사..`더 효과적`
[뉴욕=이데일리 전설리특파원] 미국 정부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부실은행의 자본에 직접 투자해 부분 국유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지난주 발효된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의 일환이다. 그러나 구제금융 방식이 `부실채권`이 아닌 `주식` 매입이라는 점에서 훨씬 강력한 조치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초강도 카드를 고려중인 것은 최근 기업어음(CP) 매입, 각국 은행들의 금리인하 공조 등 잇단 고강도 대책에도 불구하고 자금시장이 해동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전문가들도 부실채권보다는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금융시장을 진정시키는데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정부가 주요 은행들을 부분적으로 국유화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재무부 관료를 인용, 보도했다.
재무부 관계자는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은 필요할 경우 재무부가 은행에 직접 현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허용했다"며 "이를 통해 은행의 재무구조 개선과 여신기능 회복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재무부가 원하는 은행들에 한해 자본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재무부의 방안이 아직 예비적인 단계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로이터통신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재무부가 이르면 이번 달 말부터 주식 매입을 통해 은행권에 현금을 투입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폴슨 재무장관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영국과 유사한 은행 국유화 방안도 검토중이냐는 질문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답해 은행의 부분 국유화 채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미국이 새로 검토중인 직접 투자 방식은 전날 영국이 취한 구제금융 방식과 유사하다.
영국의 구제금융은 정부가 은행에 직접 현금을 투입하고, 그 대가로 우선주를 부분 소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은행이 수익을 내면 정부는 지분 만큼 수익을 나눠 갖게 된다. 은행이 파산할 경우 국민들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에 비해 미국 정부는 은행의 부실 모기지증권을 매입해 재무제표를 건전화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정부는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 이익을 남기고 되팔 수 있다. 정부 매입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 경우 세금으로 충당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직접 투입 방식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지적해왔다.
윌리엄 풀 전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의장 "(현 금융위기의) 문제는 기업과 은행, 은행과 은행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불확실성에 있다"며 "불확실성을 신속하게 제거하는 한 방법으로 은행에 직접적으로 현금을 투입하는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조셉 메이슨 루이지애나주립대 교수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은행을 국유화하는 영국식 구제금융이 훨씬 직접적이고 앞선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앤드루 클레어 카스경영대 교수는 "영국식 구제금융은 명확한 지분을 갖는다는 점에서 더 나은 방식이라고 본다"며 "반면 미국식 구제금융은 7000억달러로 부실 채권을 매입할 뿐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방안은 정부의 각종 조치에도 불구하고 꽁꽁 얼어붙은 자금시장이 해동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거론되고 있는 초강도 조치다.
이번주 들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업어음(CP) 매입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인하 공조에 나서는 등 유례없는 조치들이 잇달아 나왔으나 신용시장은 더욱 꽁꽁 얼어붙기만 했다.
하이 프리퀀시 이코노믹스의 칼 와인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금융 시스템이 붕괴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이라며 "누가 부실 자산을 얼마나 들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도 서로를 믿으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폴슨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구제안도 현 문제들을 신속하게 치유하지는 못한다"며 인내심을 당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