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상장 철회에 낮춘 몸값도 거품…IPO 이후 20%만 공모가 건졌다
by양지윤 기자
2022.11.10 04:34:00
희망범위 하단 공모가 확정 기업 15개 중 3곳만 수익
쏘카·WCP 대어들의 굴욕…공모가 대비 여전히 마이너스
증시 악화해도 ‘몸값’ 부풀리기…밀리의서재 등 수요예측서 참패
현금화 나선 기관 보수적 접근…"내년 1분기까지 투심 악화"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기업공개(IPO)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가 매섭다. ‘IPO 슈퍼위크’ 기대주였던 밀리의서재가 공모 철회 결정을 내리면서 올해 IPO를 철회한 기업만 11곳에 이른다. 희망범위 하단에 공모가를 확정한 기업들의 80%는 투자자들이 본전도 못 찾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거시경제 불확실성과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IPO 시장에 연쇄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희망범위 하단에 공모가를 확정한 기업은 15개(이전 상장 포함)다. 상장 후 3개 기업의 주가만 공모가를 웃돌고, 나머지 12개는 수익률이 마이너스(-)다. 공모가 대비 가장 많이 떨어진 종목은 비플라이소프트(148780)로 무상증자를 적용한 손실률이 54.25%(9일 종가 기준)에 달했다. 노을(376930)과 스톤브릿시벤처스도 공모가 대비 40%대 손실을 보고 있고, 모아데이타(288980)도 공모가의 30%대를 밑돌고 있다.
하반기 조 단위 대어(大漁)로 꼽혔던 쏘카와 더블유씨피(393890)(WCP)는 상장 후 단 한 번도 공모가를 넘어선 적이 없다. 쏘카(403550)는 주당 공모가를 희망 수준보다 40% 가까이 낮춘 2만8000원으로 확정하고 지난 8월 하순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했다. 하지만 상장 다음날(8월23일) 장중 2만9600원을 찍은 뒤 내리 하락하면서 지난달 5일 장중 1만5100원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이날 쏘카는 전 거래일보다 5.20% 오른 1만7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공모가와 비교하면 무려 40% 가까이 급락한 수준이다. 상장 초기가 그나마 고점이었던 셈이다.
2차전지 분리막업체인 WCP는 코스닥시장 입성 첫날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상장 첫날 종가는 4만1700원으로 공모가와 비교해 30.5% 급락했다. 지난달 17일에는 장중 4만원대가 깨지며 3만9400원까지 주저앉은 뒤 반등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모가보다 낮은 수준이다. WCP의 이날 종가는 5만1500원으로 개인투자자들에게 부여한 환매청구권(5만4000원) 행사 가격을 밑돌고 있다. 환매청구권은 상장일 이후 일정 기간까지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개인 투자자들이 공모가의 90%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다. 주관사가 공모주를 매입해 주기 때문에 주가 하락을 방어하는 장치로 여겨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WCP의 환매청구권은 상장 후 3개월까지 적용되는데, 올 연말까지 주가가 5만4000원 이하에서 지지부진할 경우 추가적으로 대규모 권리 행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반면 여성 빅사이즈 전문 쇼핑몰인 공구우먼(366030)은 178%(무상 증자 적용)의 수익률를 거두며 반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청담글로벌(362320)과 샤페론(378800)도 각각 60%대, 40%대 수익을 내며 상장 후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올 들어 공모주 투자 수익률이 악화하고 있는 것은 증시에 입성하려는 기업들이 가치를 부풀려 공모 희망가를 높여 잡은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쏘카의 경우 국내 렌터카 기업과 사업 차별성이 없는데도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 위주로 비교군을 선정해 고평가 논란이 일었고, 결국 공모가를 낮춰 상장을 강행했지만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 WCP 역시 2차전지 관련 기업들과 비교해 희망 공모가가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몸값 거품론이 일었다. 최근 분리막이 필요없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분리막 기업들의 주가가 조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 전망을 지나치게 낙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기업 가치와 공모가의 괴리로 상장을 포기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전자책 구독 플랫폼 밀리의서재와 2차전지용 탄소나노튜브 제조기업 제이오는 전날 상장을 철회했다. 지난달 골프존커머스, 라이온하트스튜디오가 나란히 상장을 철회한 지 한 달 여만이다. 올해 IPO를 철회한 기업 11개 중에는 앞서 IPO를 진행한 기업들의 흥행 참패 여진이 이어진 곳도 적잖다. 밀리의서재의 경우 원스토어의 상장 철회, 쏘카의 주가 부진으로 플랫폼 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약화된 게 패착이 됐다는 분석이다. WCP 이후 코스닥에서 두 번째로 큰 공모기업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윤성에프앤씨는 WCP의 ‘학습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성에프앤씨 역시 비교 기업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적용해 가격 부담이 큰 데다 WCP의 IPO 이후 2차전지에 대한 투자자들 관심이 한 풀 꺾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는 “글로벌 금리 인상과 국내외 증시 악화로 기관 투자자들이 자산을 빠르게 현금화하며 수요예측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반면 IPO 기업들은 여전히 증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높은 공모가를 고수해 상장을 철회하거나 수요예측 후 울며 겨자 먹기로 몸값을 낮춘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며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지는 기업 가치와 공모가 괴리로 인한 IPO 시장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