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는 K출판]①BTS, 오겜 관련 책 각국에 번역 출간...K출판, 날개 달다
by김은비 기자
2021.11.12 05:00:00
출판시장으로 확장된 K콘텐츠 위상
인기 K드라마·영화와 관련된 책
높은 홍보효과에 출간경쟁까지
유명 문학상 국내작가 선전도 한몫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어린이책 출판사인 키큰도토리는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어린이책 3종을 미국에 번역 출간하기로 했다. ‘반갑다 대왕 딱지’, ‘던져라! 공깃돌’, ‘날아라! 똥제기’ 등 우리 전통놀이에 관한 책들이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다.
출판사가 출간을 제안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주일. 통상 논의를 하는데 짧아도 2개월은 걸리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다. 인세 역시 다른 책에 비해 5%가량 높게 계약했다. ‘오징어 게임’ 효과로 시장에서 어느 정도 책 판매가 보장된다는 기대가 반영된 숫자다. 이학수 키큰도토리 대표는 “영미권 시장은 해외에서도 가장 진입장벽이 높았던 곳”이라며 “이렇게 단기간에 좋은 조건에 출간 계약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대표는 영미권 외에도 현재 브라질, 러시아, 포르투칼, 스페인 등의 국가와도 수출을 논의 중이다.
세계적으로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K출판도 날갯짓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출판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책을 수입하려는 현지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기 아이돌그룹 멤버가 읽은 책 혹은 한국 드라마, 영화에 등장한 책은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에 관련 책을 출간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높아진 관심에 해외에서는 한국책을 전문으로 수입하는 에이전시·출판사 및 번역가가 등장할 정도다.
대표적으로 BTS 소속사의 자회사인 하이브에듀가 해외 팬들을 위해 지난해 출간한 ‘BTS와 한국어 배우자’는 최근까지 30개국에서 30만부가 넘게 팔렸다. 또 지난 8월 RM이 읽은 것으로 알려지며 국내에서도 20년 만에 재출간된 예술서 ‘요절’을 두고는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 앞다퉈 출간문의를 하며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하루 출판사를 운영하는 리아 안드리아나 대표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통한 인터뷰에서 “최근 2년 사이 K팝, K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 책 수요가 부쩍 늘어 한국 출판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태국의 아마린 출판사 관계자는 “태국 10대들이 한국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돌”이라며 “방탄소년단(BTS)나 블랙핑크 등 아이돌 스타가 읽은 책과 콘텐츠는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책 판권 수입을 위해 고액의 선인세를 지급하거나 경매에 참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효과로 한국 출판물의 해외 수출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도서저작권 수출 실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7년 1285건이었던 도서 수출은 2018년 1714건, 2019년 2142건으로 집계됐다. 문학의 경우 2014년 119권에서 2019년 306권으로 3배 가까이로 늘어나기도 했다.
단순히 양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해외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먼저 진행한 뒤 한국문학번역원 지원 사업에 공모한 건수는 2014년 11건에서 올해 9월까지 129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번역원의 지원 사업을 통하지 않은 수출도 2014년 전체 30%(34권)에서 2019년 70%(210권)로 늘어났다. 한국 출판물을 눈여겨보고 있는 해외 출판사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대변하는 수치다.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는 “해외출판사가 자체적으로 작품 및 번역가 선정, 저작권 계약, 출판, 마케팅을 일괄 담당해 현지 출판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출간정책을 펼치다보니 현지 독자들의 반응도 훨씬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외 유명 문학상에서 국내 작가들이 좋은 성과를 얻은 것 역시 수출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한국 문학은 해외에서 꾸준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지난해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수상자로 선정되면 일본 전역 서점에서 판매가 급증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권위를 인정받는 이 상을 아시아권 작품이 받은 최초의 사례다. 책은 이후 일본에서 1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백희나 작가가 그림책 ‘구름빵’으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린드그렌상, 김이듬 시인이 ‘히스테리아’로 전미 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김금숙 작가가 그래픽노블 ‘풀’로 ‘만화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하비상 최우수 국제도서 부문, 김영하 작가가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독일 추리문학상 국제부문과 독일 독립출판사 문학상을 손에 쥐었다. 수상은 못 했어도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전미도서상 예심 후보에 오르고,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와 재미교포 시인 최돈미 등 한국계 작가 세 명이 오른 것 역시 이례적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한 작가의 경우 국제적 지명도가 올라가 신작이 나오기 무섭게 책이 수출된다”며 “이런 작가들이 점차 늘어날수록 한국 출판 전반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