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운동화를 일부러 더럽히는 이유

by권보경 기자
2021.06.26 00:35:07

연필·먹지로 운동화 칠하는 ‘더티워싱’ 유행
깨끗하게 보존하는 ‘슈테크’와 대조...“개성표현 수단”
낡아보여도 희소성 추구해 ‘빈티지 패션’ 입어요
화려함보다 평범함으로 개성 드러내려는 성향 반영된 것

“얼룩덜룩한 디자인이 나만의 스타일이에요.”

김태훈(30·남)씨는 흰색 운동화에 일부러 얼룩을 묻혔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운동화와 다른 느낌을 내기 위해서다. MZ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일명 ‘더티워싱’이다.

더티워싱은 얼핏 보면 운동화가 지저분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패션에 일가견 있는 MZ세대들은 더티워싱이 개성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반응이다. 리셀(중고거래)를 위해 깨끗이 운동화를 보존해야 하는 슈테크(신발 재테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MZ세대는 화려한 새 제품보다는 낡았지만 희소한 제품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는 화려함보다 평범함으로 개성을 드러내려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먹지·4B 연필로 얼룩덜룩...“500원으로 개성표현

그레이씨, 김태훈씨가 더티워싱한 운동화 (사진=인스타그램 @every_grey_, @ggin_kim)

김 씨는 4B연필과 먹지를 운동화 표면에 문질러 까맣게 연출했다. 그는 “직접 하나뿐인 나만의 운동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더티워싱의 매력”이라고 했다.

우한승(24·남)씨도 운동화를 더티워싱해 꾸몄다. 우씨는 “흔하고 무난한 어글리 슈즈가 더티워싱을 통해 포인트를 주면서 차별화 한 운동화로 재탄생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유행은 한정판 운동화를 구매해 깨끗하게 보존한 뒤 중고거래하는 슈테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슈테크를 즐기는 장준석(30·남)씨는 “슈테크에서 중요한 것은 신발의 퀄리티”라며 “본드자국, 운동화 구멍 등 외관 모습이 출시 당시의 원형과 같은지와 깔끔한 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슈테크와 더티워싱을 모두 즐기는 김형환(30·남)씨는 “평소 투자와 패션 두 가지 목적으로 운동화를 산다”며 “리셀보다 저렴하고 구매하기 쉬운 운동화에 더티워싱을 한다”고 설명했다.

화려함보다 나만의 느낌 살린 빈티지 패션추구

더티워싱을 즐기는 이들은 화려한 새 제품보다 낡은 제품이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비슷한 이유로 빈티지 패션을 좋아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레이(별명·34·남)씨도 운동화를 더티워싱해 꾸몄다. 그는 “남들과 다른 제품으로 만들고 싶어 운동화를 더티워싱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 제품은 광고도 많고 돈만 주면 쉽게 살 수 있지 않냐”며 “반면 빈티지 의류는 같은 제품이어도 세월이 흐르며 완전 다른 느낌이 나기도 해 특별하다”고 했다.



MZ세대가 좋아하는 빈티지 패션 (사진=현아 인스타그램)

김주형(26·여)씨는 빈티지 의류는 흔하지 않아 유행을 타지 않고 자신만의 느낌을 연출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흰색 운동화를 샀는데 너무 새것처럼 보여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다”며 “조금 더럽고 헤진 게 더 애착이 가고 안정감이 든다”고 했다.

박소현(28·여)씨도 ”평소 빈티지 의류를 즐겨 입는다“며 ”옷과 마찬가지로 신발도 너무 깨끗하게 신으면 ‘멋’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새 신발처럼 화려하면 부담스럽고 사용감이 있는 게 오히려 예쁘고 편해 보인다“고 말했다.

화려함보다 평범한 가치 선호하는 경향 반영된 것

전문가는 이러한 유행이 젊은 세대가 화려함 속에서 평범함으로 개성을 드러내려는 경향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개성이 강한 세대”라며 “깨끗하고 비싼 새 것이 좋다는 일반적인 가치를 벗어나도 본인이 좋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젊은 세대가 큰 돈과 성공 등 동경의 대상보다 현실적이고 나랑 가깝다고 느끼는 평범한 가치를 선호하는 ‘노멀 크러시’적 경향”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과거와 달리 MZ세대는 새로 출시되는 제품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며 “완벽하고 너무 꾸민 게 티 나면 촌스럽다는 반응이다. 정장에 운동화를 신는 것 같은 ‘언발란스 룩’이 유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신제품 출시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드러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냅타임 권보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