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는 말랄라·20대는 에드 시런..“당신의 시대의 얼굴은?”
by김은비 기자
2021.05.20 03: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10대쯤 보이는 소녀가 파키스탄 출신 시민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997~) 앞에 섰다. 유사프자이는 2009년 자신의 고향이 탈레반에 점령됐을 당시 자신의 삶과 여성 교육 탄압에 대한 글을 써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2014년에는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국내 교과서에 등장하기도 한 인물이다. 뚫어져라 말랄라의 초상화를 바라본 아이는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로 교과서에 나왔던 사람이야”라며 반갑게 외쳤다.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전경(사진=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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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로 보이는 한 남성 관람객은 영국의 유명 가수 에드 시런(1991~) 앞에서, 50대 여성은 영화 ‘클레오파트라’(1967)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의 초상화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작품 속 얼굴과 앞에 적힌 인물의 설명을 보는 이들은 단순히 그림을 감상할 뿐만 아니라 각 세대별로 자신의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고, 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달 29일부터 8월 15일까지 여는 특별전 ‘시대의 얼굴: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에서다.
‘시대의 얼굴’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과 함께 기획한 전시다. 국립초상화미술관은 1856년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 미술관으로 여러 분야에서 저명한 인물들의 방대한 컬렉션을 수집해 왔다. 이번 전시는 500여년의 시간을 넘어 세계 역사와 문화를 빛낸 인물들의 초상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첫 전시다. 전시는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전시에 선보이는 초상화는 16세기에 나무판에 그린 것부터 21세기의 홀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형식을 아우르며 초상화의 과거와 현재를 한 자리에서 조망한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을 때 제작된 유일한 초상화.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제1호 소장품.(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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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예상외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전시 기획을 담당한 양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초상화는 일반 서양화 작품과는 달리 스토리텔링이 없어서 대중이 전시를 좋아할까 고민이 많았다”며 “다행히 얼굴이 주는 감동이 있는지 관람객들이 그 어느 때보다 몰입해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고 전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전시는 코로나19로 30분당 관람객을 최대 50명으로 제한하고 있음에도 전시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난달 29일 개관 직후 1일 평균 관람객은 500여명, 주말에는 예약이 가득 차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는 총 76명의 초상화가 걸렸다. 대문호 셰익스피어,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엘리자베스 1세, 진화론과 만유인력을 주창한 찰스 다윈과 아이작 뉴턴, 세계적인 록 밴드 비틀스와 그들을 잇는 에드 시런, 당대 최고의 배우 오드리 헵번 등 그 면면도 다양하다. 이들을 그린 작가도 루벤스, 반 다이크, 로댕, 앤디 워홀, 알렉스 카츠, 데이비드 호크니 등 당대 최고의 화가 73명이다. 이들의 그림을 통해 관람객은 총 76명의 사람을 대면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매력은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내면까지 통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상화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 한 시대를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다. 양 학예연구사는 “사진이 발명되기 전 왕이나 귀족이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그린 초상화부터 시작해 ‘셀카’(셀프 카메라)를 찍고 공유하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의 초상화까지 형식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초상화가 전하는 본질적 메시지는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시런까지’에 걸린 영국 가수 에드 시런 초상화(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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