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심영주 기자
2021.05.12 00:30:49
'밈(meme)’문화, 놀이 넘어 행동양식으로
엔터·정치·사회 등 '끌올' 주제 다양
"'끌올세대'는 시의성보다 취향이 중요"
전문가 "인터넷 시위 문화로 볼 수 있어...의도 변질은 유의해야"
MZ세대의 ‘밈(meme)’문화가 놀이문화를 넘어 하나의 행동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재가공하는 것뿐 아니라 중요한 사회 문제를 지속적으로 이슈화하며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MZ세대를 ‘끌올(끌어 올린다)’세대로 부르기도 한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연구원은 “MZ세대는 부정적인 이슈를 끌올해 다시 공론화하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주목받아야 할 이슈들도 다시 끌올해 공유하기도 한다”며 "사회 이슈를 대할 때도 피드백 없이 넘어갔던 과거의 잘못들을 함께 이슈화하고 공론화 하는 것이 하나의 행동 패턴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역주행' 만드는 끌올세대의 놀이문화
과거의 콘텐츠를 재가공하고 즐기는 밈 문화에는 끌올세대의 특징이 적극 반영돼 있다.
지난 2007년 종영한 MBC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이 끊임없이 재소환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배우 나문희와 박해미가 극중 ‘호박고구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는 다양한 짤과 영상으로 재가공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에피소드를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에 합성한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명 ‘호박스 기차’란 제목의 영상이다.
영상이 올라온 건 일년 전이지만 최근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재확산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상 조회수는 6일 오전 무려 2700만회를 넘어섰다.
대학생 김예진(24)씨는 “에피소드 자체로도 재미있는데 찰떡같은 영상과 비트, 자막이 더해져 중독성마저 있다”며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웃을 수 있어 이런 밈 영상을 자주 본다”고 전했다.
MZ세대의 이 같은 놀이 문화는 과거 스타들을 다시 대중 앞으로 소환하는 발판이 되기도 하고 역주행 흥행 열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호박스 기차 외에도 최근 화제가 된 ‘무야호’를 비롯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 2PM의 ‘우리집’ 등이 끌올세대에 의해 다시금 화제를 모았다.
이 연구원은 "MZ세대의 주 영상 소비 채널이 TV에서 유튜브로 넘어가면서 시의성보다는 취향이나 관심사 중심의 알고리즘이 중요해졌다"면서 "콘텐츠의 제작 시점보다 MZ세대의 취향이나 관심사에만 맞으면 과거의 영상들도 즐기고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끌올의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부정적인 논란이 있었던 경우는 결국 끌올되지 못하는 경우도 나타난다"며 "편법을 저지르지 않고 진정성 있고, 소신있게 노력해 온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응원하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전했다.
MZ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인 '공정'의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셈이다.
재미로만 그치지 않아...사회 선순환 역할도
끌올세대의 이 같은 특징은 단순 놀이문화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지만 대중의 관심 밖으로 멀어진 문제도 끊임없이 끌올하며 다수의 관심을 촉구한다.
가령 학교폭력 등 과거 부정적 논란에 휩싸였던 연예인이 복귀할 땐 그의 지난 행적을 재조명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방송인 박나래가 성희롱 논란으로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되면서 그가 과거에 출연했던 방송들까지 재소환되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과거 부적절한 발언을 한 연예인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정치·사회적인 주제도 끌올 대상이 된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한 SNS 내에서는 기업의 ‘갑질’ 행태와 ‘N번방 사건’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다양한 주제의 게시물이 주기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중에는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재판 방청 후기를 공유하고 꾸준히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온라인 카페와 SNS 계정 등도 개설돼 있다. 해당 SNS 계정 팔로워는 2만명에 달한다.
또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매년 게시물이 올라오는 주제 중 하나다. 특히 지난 1월 애경산업과 SK케미칼 등 관련 기업 관계자들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가습기 살균제 게시글은 최근에도 활발하게 공유됐다. 특정 이슈의 후속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과거 이슈도 다시 한번 화제 되는 셈이다.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 주제도 지난 2019년 춘천의 레고랜드 테마파크 건설 소식이 알려진 이후 이와 관련해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지속적으로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글은 MZ세대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67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진민정(23세·여)씨는 “시간이 지난 이슈는 언론 보도도 줄어들고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아직인 경우가 있다”며 “특히 청와대 청원에 올라온 글 중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참여율이 적을 때 끌올 게시물을 작성한다”고 전했다.
"일종의 인터넷 시위 문화"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끌올세대의 이 같은 특징을 '인터넷 시위 문화'로 설명했다.
곽 교수는 "옛날에는 젊은 층이 사회를 바꾸려고 하는 데모 등의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며 "이런 문화가 인터넷 공간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그러면서 "이제껏 침묵해왔던 젊은 세대가 부조리와 비리에 더는 묵과하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며 "개선을 촉구하는 이 같은 방향의 자기표현은 굉장히 좋다"고 평가했다.
다만 곽 교수는 인터넷 공간이 개인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칫 잘못하면 지나친 악플과 과장 정보, 가짜뉴스, 마녀사냥 등으로 변질될 문제가 있어 우려된다"며 "감정도 전염성이 있어 사건과 관련 없는 개인 분노나 감정을 쏟아내선 안된다. (끌올문화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개선을 위한 행동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냅타임 심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