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승기] 50대의 로망을 담은 쿠페 ‘벤츠 뉴 제너레이션 CLS 400’
by조영훈 기자
2015.02.07 01:03:35
[조영훈 부국장 겸 산업부장] 쿠페는 감성이다. 2인승 두 바퀴 마차에서 왔다는 어원을 보더라도 쿠페는 감성적인 코드를 담은 자동차다. 크로스오버가 대세로 자리잡은 요즘같은 시절에는 4· 5인승까지 쿠페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오히려 디자인 특징상 뒷자리의 편안함을 포기하더라도 디자인적인 완성도를 높인 기울림 있는 디자인이 쿠페의 주류로 자리잡은 분위기다.
메르세데스-벤츠가 E-클래스를 바탕으로 만든 전형적인 쿠페가 CLS모델이다. 올해 벤츠의 첫 신차로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된 더 뉴 제너레이션 CLS는 ‘400’을 붙여 ‘CLS 400’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상륙했다.
| 사진=조영훈 기자, 라이카M/보이그랜더 울트론 21mm f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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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시승차 ‘CLS 400’은 블루진과 어울려보였다. 롤렉스나 브라이틀링을 손목에 차고 가죽재킷과 블루진 드레스 코드를 한 중년의 남자, 에르메스 벌킨백이 어울리는 꽃중년 여성과 궁합이 맞을 것 같은 느낌. ‘열심히 일한 당신’이 주말에 어딘가로 훌쩍 떠날 때 함께 할 쿠페다.
많은 이들의 감성 코드로 회자되는 바이크 ‘할리 데이비슨’ 마니아 층은 젊은이부터 노인층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성을 보이고 있으며,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느끼는 중년층까지 사로잡고 있는 것처럼 ‘CLS’도 그런 마니아층을 가진 차종이라고 느껴졌다.
간단한 터치와 함께 웰커밍 라이트가 들어온 운전석 도어는 의외로 묵직했다. 쿠페형 디자인의 전형인 프레임리스 도어다. 운전석에 앉으면 벤츠만의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바로 다가온다. 대시보드 송풍구 한 가운데에 위치한 아날로그 시계가 그렇고, 흰색 바탕에 속도계를 중심으로 배치된 3개의 원형으로 구성된 계기판이 그렇다. 대시보드를 가죽으로 감싸줘 클래식한 느낌을 더 했고 유광 우드그레인으로 보강했다. 개인적으로 무광 원목 패턴이었다면 고급스러움이 배가됐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시동을 걸자 경쾌한 사운드로 믿음직스럽게 계기판이 살아난다. 순간 당황했다. 운전석 옆에 기어노브가 없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차종의 와이퍼 작동부위에 스틱형으로 기어노브가 있다. 원터치로 파킹으로 이동하고 상하 클릭으로 가볍게 후진·드라이브 모드로 변속한다. 시승 이틀째부터는 적응이 되니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필자는 도심 주행이 많아 오토홀드 기능을 선호하는데, 원터치 파킹 후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뗀 후 원타치 드라이브 이동으로 대체가 가능했지만 오른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돼 부자연스러웠다.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 사진=조영훈 기자, 라이카M/보이그랜더 울트론 21mm f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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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블루투스 페어링에 나섰다. 접속 장애없이 빠른 속도로 페어링에 성공했다. 밀크와 멜론플레이어로 MP3 파일 사운드를 점검해봤다. 귀가 뻥 뚫리는 느낌이다. 3000cc 가솔린 엔진이 주는 특유의 ‘침묵’은 덴마크 사운드 몰입도를 높여줬다. 마룬5의 애니멀 등 ‘V 앨범’을 들어보니 알루미늄 스피커 그릴로 고급스러움을 더한 트위터의 명징함이 뚜렷했다. 이 사운드를 극찬 하고 싶은 것은 사운드의 여음들이 윤기있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전설의 오디오 마크레빈슨 앰플리파이어 사운드를 접했을 때의 그런 감성이다.
차량용 오디오의 불만은 항상 고음의 민감도를 줄이면 저음 비트가 약해져 ‘뭉개지는’ 사운드를 만든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순정(?)을 포기하고 사제 오디오를 장착할 정도로 열성적인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고의 사운드다. 오디오 성능을 테스트할때 볼륨을 높이면서 사운드의 명료함이 떨어지는 지를 점검하기도 하지만 아주 적은 음량에서 밸런스를 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트위터의 민감도를 조금 줄인 상태에서 최적의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지금까지 필자가 느꼈던 최고 사운드였던 재규어 플래그십 XJR의 메리디안 사운드, 핀란드 사운드를 탑재한 볼보 사운드보다 느낌은 더 좋았다.
‘CLS 400’은 자연흡기 6기통 3000cc 엔진으로 무장했다. 벤츠가 제시한 제원은 7단 변속기에 5250rpm에서 333마력을 낸다. 토크도 48.9kg.m으로 제로백이 5.3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달린 첫 느낌은 무겁다. ‘악셀 페달을 밟으면 미친듯이 튀어나가야 한다’는 가정은 무참히 깨졌다. 느낌이 묘했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가속감으로 순식간에 시속 150km/h까지 안정적으로 치고 올라갔다.
이건 실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가속과 함께 G포스를 느끼려면 원터치 버튼으로 스포츠 모드를 사용하길 권한다. 에코모드는 ‘CLS 400’을 순한 양으로 튜닝해놓은 탓이다. 여기서 이 쿠페가 누구를 위한 차인지 더욱 명료해진다. 마음껏 성능을 뽐내는 스포츠카가 아니라 ‘절제의 여유로움’을 즐길 줄 아는 이들을 위한 컨셉트다. 만약 야생마를 원한다면 같은 모델의 500마력대 AMG가 기다리고 있다.
후륜구동 특유의 코너링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목격됐다. 운동 방향의 반대편 시트가 몸을 지지해준다. 보다 적극적인 코너링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몸을 잡아줬다. 기분좋은 느낌이다. 라운드형 주차도로를 타고 올라올 때 더 짜릿했다. 통풍에 열선, 안마까지 가능한 시트는 명품 핸드백에 쓰일 정도로 부드러운 가죽 질감과 어울려 최적의 착좌감을 제공했다. 볼보 시트가 스칸디나비아 가구의 전통을 이어왔다고 칭송받았던 점을 생각해도 그보다 훨씬 나았다.
안산에서 서울로 귀향하는 시간대는 야간으로 택했다. 서해안고속도로다. 벤츠는 이 시대에 가장 진보한 라이트 기술을 이 차에 쏟아부었다고 하기에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멀티빔 LED 인텔리전트 라이트 시스템’을 실제 주행에서 사용해보니 야간운전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앞차들이 없이 텅빈 고속도로에서는 시계 확보거리가 1km도 넘는 듯 보였다. 조도도 좋거니와 선명함이 뚜렷했다. 맞은 편 차선에서 차량이 다가오자 하이빔은 로빔으로 전환해 상대편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았다. 코너에 접어들자 회전 방향으로 스티어링 움직임 만큼 정교하게 헤드라이트가 따라 움직였다. 이미 아우디부터 시작된 ‘빛을 다루는 싸움’은 이제 고성능 차량의 필수 옵션으로 자리잡는 느낌이다.
이 차에는 각종 첨단 안전장치들이 대거 포함됐다. 차선이탈을 잡아주는 기능부터 차간 거리를 조절하는 첨단 크루즈콘트롤, 사각지대에 차량이 등장할 때 경고음과 함께 사이드미러 불빛으로 경고를 해줘 안전도를 높였다. 익숙해지니 광각 기능을 포함한 경보장치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랜저나 아우디처럼 내가 보는 사이드미러로 2개차선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클래식한 컨셉트가 강조되다보니 요즘 경쟁 독일차 뿐 아니라 현대차(005380)에도 필수 적용되는 헤드업디스플레이가 없다는 점도 옥에 티다.
쿠페의 특성상 트렁크가 작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원터치 크로징이 탑재된 트렁크가 너무 가볍고 빨리 움직이는 점도 개선해야할 점이다. 차체가 낮은 쿠페형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시트 포지션이 약간은 높게 느껴지는 점도 아쉬웠다.
IoT(사물인터넷)의 강화로 중요도가 높아지는 내비게이션 성능이 국산차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 역시 개선해야 할 점이다.
뚜렷하게 좋은 점과 약간 불편한 점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이 차는 ‘여유로운 중년의 로망’으로 자리잡기에 충분하다. 남자보다 여성 운전자들이, 젊은층보다는 노년층에 더 잘 어울리는 쿠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