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스마트폰 블랙홀'에 초토화되는 업계는?

by류성 기자
2013.06.18 06:00:00

만보기,온도계,게임기,사전,내비게이션,PMP,우체통 등

[이데일리 류성 산업 선임기자 황수연기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탄생한 ‘스마트폰 블랙홀’이 기존 비즈니스 생태계를 송두리째 흔드는 메가톤급 ‘태풍’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스마트폰 블랙홀에 노출된 업계는 조용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들 대부분 업체는 그동안 오프라인 중심으로 사업을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겐 인터넷 대중화가 미니 태풍급이었다면, 스마트폰 블랙홀은 생존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핵폭탄과 다름 아니다.

◇ 만보기

스마트폰 인기 앱 가운데 만보기가 자리매김하면서 만보기 업계는 된서리를 맞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5년전만 해도 국내 만보기 제조업체는 4~5곳에 달할 정도로 비즈니스가 번창했다”며 “이제는 모두 문을 닫고 신우전자 한 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국내 만보기 시장규모도 5년 전에는 5만대를 훌쩍 넘겼으나 지난해엔 그 5분의 1수준인 1만대 수준으로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다. 업계는 이대로 가다가는 만보기 시장 전체가 스마트폰 블랙홀 속으로 사라질 날도 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만보기 판매업체 관계자는 “만보기 시장이 위축된 것은 만보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줄어든 탓도 크지만 스마트폰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설명했다.

◇ 일반용 온도계

일반용 온도계 업계는 아직까지 스마트폰 영향이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내에선 일반용 온도계를 제조하는 중소업체 10여곳이 난립해 있지만 업황이 좋지 않아 대부분 경영난을 겪고 있다.4~5년전 5만대 수준이던 일반용 온도계 시장이 연간 2만~3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온도계 제조업체 대광계기의 한 담당자는 “아직까지 스마트폰으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은 피부로 느끼지 않고 있다”면서도 “향후 스마트폰의 온도계 앱 활용이 더욱 확대될 경우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그는 “일반 온도계의 주요 소비자는 비닐하우스 등에서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인데 아직까지 스마트폰 앱을 본격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있어 상대적으로 영향이 작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 앱을 농민들이 농사에 적극 활용하는 시대가 오면 온도계가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 게임기

스마트폰 영향으로 게임기 산업은 사실상 고사 직전에 몰리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오락실에 들어가는 오락기 제조업은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국내에서 30년째 오락기를 만들고 있는 오복글로벌전자가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4~5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활발하게 사업을 했던 몇 년전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김효남 오복글로벌전자 대표는 “스마트폰 때문에 국내 오락기 사업은 완전히 맛이 갔다”며 “우리 회사도 언제 사업을 접을 지 모르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고 하소연했다. 오락기 사업은 얼마 전까지 PC방이 인기를 끌면서 1차 타격을 받았고, 2차 스마트폰 공습으로 전멸 상황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후폭풍으로 오락실도 덩달아 사라지고 있다. 과거 서울에는 1개 동마다 오락실이 평균 20~30개씩 있었지만 지금은 1개를 찾기도 힘들 정도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 기업으로 손꼽히던 일본 게임산업의 대부 닌텐도도 스마트폰 대세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다. 최고 히트상품이던 닌텐도 3DS 등 게임기 판매부진으로 지난 1분기 영업손실만 전년도보다 100억엔 가까이 증가한 305억5000만엔을 기록했다. 닌텐도는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스마트폰 게임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스마트폰용 모바일 게임 ‘퍼즐&드래곤’을 서비스하는 일본의 겅호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이 닌텐도를 추월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달력·수첩

달력·수첩업계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달력이나 메모기능을 애용하는 젊은 고객들의 이탈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스마트폰을 덜 사용하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꾸준하게 고객으로 남아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

기업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달력·수첩을 맞춤 제작하는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한 상황이다. 반면 주문 제작이 아닌 소품종 대량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들은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로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다. ㈜프린파크 관계자는 “대량생산을 하는 업체중에선 판매가 절반 이상 감소한 경우가 상당수”라고 귀띔했다.

현재 이 업계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전국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업체는 10여곳에 불과하다. 대구에 있는 에스카렌다 최시원 사장은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업체들은 수요가 줄면서 출혈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며 “인터넷과 더불어 스마트폰 확산으로 전통적인 달력·수첩의 장래는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내비게이션

“김 기사, 운전해~”

한 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유행어다. 그때의 김 기사는 가고 없지만 이젠 그 자리를 스마트폰 앱 ‘국민내비 김 기사’가 꿰찼다. 이 앱의 누적 가입자 수는 400만명에 달하고 한달 길 안내 횟수는 3500만건을 웃돈다. ‘T맵’ ‘올레내비’ 등 통신사 앱도 인기다.

이 때문에 내비게이션 제조업체들도 울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10년 가장 높은 순익을 기록한 이후 경기 침체와 스마트 기기 등장으로 전체 내비게이션 시장 규모가 크게 줄고있다”고 밝혔다. 이 업계의 지난 2011년 내비게이션 매출 비중은 전체의 90%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67%로 뚝 떨어졌다. 매출 역시 지난 2010년 2150억 수준에서 지난해 18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이 난국타개를 위해 내비게이션 제조업체들이 선택한 생존전략은 스마트폰 앱이라는 대세에 따르는 것이다. 팅크웨이 관계자는 “최근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과 연동한 내비게이션 앱인 ‘아이나비 AIR for Kakao’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우체통

빨간 우체통도 졸지에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우체통 설치 대수는 1만9428대로 전년보다 8%가량 줄었다. 10년 전인 지난 2003년만 해도 우체통은 4만대 가까이 설치됐지만, 해마다 자취를 감추고 있는 추세다.

스마트폰과 같은 통신기기의 발달과 인터넷 메신저의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우체통을 이용하는 우편량이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일부 지역의 우체통은 심지어 우편물 대신 쓰레기와 분실물로 채워지면서 쓰레기통처럼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편함을 생산, 납품하던 두원산업 관계자는 “수요가 크게 줄면서 이 사업에서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다”며 “사업을 계속할지를 심각하게 고민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정보통신기술(ICT) 등 우편 대체 수단이 발달하면서 우편 물량 자체가 줄었다”며 “기업들이 우체국이나 물류센터를 직접 방문해 접수하는 대량 물량을 제외하곤 개인들의 순수 우편물은 급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신 IT와 접목된 상품인 전자우편제도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인터넷 우체국을 통해 하는 ‘e-그린우편’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가령 문상 다녀간 조문객을 대상으로 다량의 감사인사장을 보내고자 할 때 직접 손으로 쓰거나, 워드 프로세스로 작성한 편지를 스캔해서 업로드해 접수하면 우체국이나 우체통을 거치지 않고 제작부터 배달까지 해주는 서비스다.

◇사전

종이사전 시장도 스마트폰 블랙홀의 흡입력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전자사전이 속속 등장할 때부터 휴대가 불편한 종이사전들이 쇠락할 것이란 조짐은 보였지만 스마트폰이 전격 등장하면서 사세는 더 심하게 기울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교보문고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부터 전자사전들 때문에 종이사전을 많이 찾지 않았다”며 “시장이 죽은 지는 오래됐다”고 전했다. 실제 영풍문고 종로점에서 사전 분야 판매를 관리하는 한 직원은 “종이사전의 매출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저학년 학생들이 가끔 찾거나 일부 나이 든 어르신들이 옥편을 찾는 것 외에는 거의 수요가 없다”고 말했다.

꾸준히 나가고 있는 물량 위주로 재판을 간혹 찍기는 하지만, 신간 물량 자체가 많이 급감했다는 설명이다. 두산동아 프라임이나 엣센스 등 기존 종이사전 출판에 열을 올렸던 업체들이 최근 앱 시장으로 발을 들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PMP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 시장도 생기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지금은 다소 낯선 PMP는 음악과 동영상 재생, 디지털카메라 기능, 통신 기능을 갖춘 기기로 한때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다. 통신모듈을 추가하면 휴대폰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2009년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이후 애플의 아이폰, 삼성의 갤럭시폰 등 인기상품이 출시되면서 PMP 시장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국내에서 PMP로 많은 인기를 누렸던 업체인 아이스테이션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으며 결국 몰락했다. 2000년 중반 이후 국내 PMP 업계 1위를 차지하며 연매출 600억원을 올리기도 했던 아이스테이션은 지난 2009년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관련 시장이 위축되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레인콤이나 거원시스템, 디지털큐브 등 중견 벤처기업들도 줄줄이 PMP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