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 '사람 냄새 나는 섬' 강화도를 가다
by이승형 기자
2013.03.05 07:00:49
[강화도=이데일리 이승형 선임기자] 강화도는 바야흐로 겨울과 봄의 중간 어디 쯤에 와 있습니다. 볕은 제법 따스한 기운을 전해주지만 아직 바람 끝은 매운 날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맘때쯤 강화도의 풍경은 아직 봄맞이 청소를 하지 못한 추레한 방구석과 비슷합니다. 구석구석 겨우내 쌓인 때와 먼지가 여전합니다. 어디에서고 초록색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도 이 곳 강화도 사람들은 분주합니다. 여기저기서 태우고, 자르고, 갈고, 묻으며 서성거리는 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 강화도 마니산 부근 농가에서 온 가족이 볏집과 죽은 나무가지를 태우며 봄맞이 채비를 하고 있다. 이승형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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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주머니가 서럽게 운다. 그의 앞에 놓인 좌판에는 쑥과 냉이가 수북하다. 지난달 28일 오후 강화도 마니산 들머리. 이 곳에는 직접 캔 봄나물을 파는 노점 아주머니 예닐곱명이 앉아 있다. 아주머니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진다. 다른 아주머니들이 달래어도 보고, 꾸짖어도 보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냉이를 오늘 아침에 다 사간다고 했는데…. 안 왔단 말이에요. 철썩같이 약속해놓고. 이렇게 많이 가져왔는데. 엉엉.”
아주머니가 우는 새로 겨우 겨우 말한다. 어쩌면 그 까짓 이유로 대낮에 행인들이 많은 길에서 우느냐고 하겠지만 지켜보는 마음은 안쓰럽다. 봄나물은 하루만 지나도 그 값어치가 떨어진다. 누구에게는 돈 몇 푼에 지나지 않지만 그 아주머니에게는 전 재산과 다름없는 보물이다.
하루 하루 근근히 먹고 사는 우리네 고단한 삶을 마니산 들머리에서 본다. 누구에게는 흔한 관광지일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
서울서 자동차로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강화도는 주말여행으로 흔히 찾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산과 들, 바다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있다. 여행의 목적이 일상과 다른 세상을 찾아가는 데 있다면 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중요하다.
| 함허동천 계곡을 따라 가는 마니산 등산로. 이승형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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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이잖아요. 단군 할아버지가 가르치신 게. 이 산은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바로 그 산 아닙니까. 그러니 이 산에서 사람 냄새가 나지요. 저는 여기 수백 번 올랐어요.”
함허동천(涵虛洞天)계곡을 따라 마니산 오르는 길에 만난 한 아저씨가 숨을 헐떡대며 말한다. 해발 469m의 마니산은 매년 개천절이면 정상의 참성단에서 천제(天祭)가 올려진다. 산의 원래 이름은 ‘마리’에서 따 왔는데 마리는 ‘머리’의 옛말이다. 강화도 뿐만 아니라 전 민족의 머리를 상징한다는 의미다.
높이는 낮지만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계곡에는 잔설이 여전하지만 그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봄이 눈 앞에 있음을 알려준다. 정상까지 쉬다 말다 오르는데 2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렇게 오르면 마니산 정상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
산을 봤으니 바다를 봐야 한다. 함허동천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는 동막해변이 있다. 이날 도착한 해변은 바닷물이 빠져 검은 갯벌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여느 해변의 풍경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나무 막대로 뻘을 헤집어 보는 연인, 해변을 따라 달음질치는 아이들, 갓난아기를 안고 산책하는 부부, 형형색색의 촌스러운 횟집 간판들. 값비싼 휴양지 해변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어딘지 촌스러운 풍경.
| 바닷물과 갯벌, 모래사장이 있는 동막해변을 아이들이 줄달음 치고 있다. 강화도는 산과 들, 바다와 사람이 있어 가족과 연인들의 짧은 여행지로 그만이다. 이승형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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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안에서 프랑스 여가수 에디뜨 삐아쁘의 노래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가 흘러 나온다. 눈과 귀의 부조화다. 하지만 매력이 넘친다. 노래의 진원지는 ‘바리스타 김주란의 특별한 커피’라 쓰여진 커피 판매 차량이다.
“이 커피물이 어떤 물인지 아세요? 강화에서 가장 유명한 약수라는 찬우물 약수터 물이에요.”
여사장님이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히 설명해 준다. 그래서인지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는 근래 먹은 어떤 커피보다 맛이 좋다.
강화도에 오면 마음이 푸근해져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풀려서일까. 시인 고은의 시처럼 오는 길 못 느꼈던 감성을 가는 길에 느낀다. 그래서 귀가하는 길, ‘호랑이도 도망가는 곶감이 50개 만원’이라는 팻말에 웃고, ‘축협조합원 아들이 태권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는 현수막에 박수를 보낸다. 텃밭에서 태우는 볏집 냄새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밥 짓는 연기에도 절로 흐뭇해 진다.
| 썰물 때를 맞은 대명포구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이 곳에선 새우깡을 보면 즉각 반응하는 갈매기들이 떼지어 날아다닌다. 이승형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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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화도의 제철 별미는 숭어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숭어를 회로 쳐서 먹으면 씹는 맛이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강화도 어느 횟집에서도 2만원이면 서너명이서 두툼하게 썰은 회를 넉넉히 먹을 수 있다. 강화도 특산물인 순무김치를 곁들여 먹는 숭어 매운탕도 시원해서 만족스럽다. 4월이면 숭어의 역할을 밴댕이가 한다. 7월 산란기를 앞두고 살을 찌우는 때이기 때문이다.
강화도에서는 예로부터 새우젓이 유명하다. 찌개와 국, 찜 등에는 여지없이 새우젓이 들어간다. 이 중에서도 새우젓을 넣고 끓인 돼지갈비 찌개는 강화도의 별미다. 새우젓이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잡아주고, 기름기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주로 토속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데 강화읍내 중앙시장 골목에 가면 찾을 수 있다.
이밖에 가격은 좀 비싸지만 물 좋은 갯벌장어, 단호박을 넣고 끓인 꽃게탕도 강화도의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