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조업마저 주춤..더블딥 공포 엄습
by피용익 기자
2010.07.02 05:13:00
[뉴욕=이데일리 피용익 특파원] 느리지만 꾸준한 회복세를 나타내던 미국 경제에 더블딥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고용, 주택, 소비에 이어 그동안 회복세를 주도하던 제조업마저 주춤해지며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후퇴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순탄치 않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은 계속해서 있어 왔다. 그러나 최근 경제지표의 지속적인 부진은 회복세 자체에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다.
특히 유럽과 중국의 긴축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전세계가 더블딥으로 빠져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제조업 경기가 3개월 동안의 빠른 확장세를 마무리하고 지난달 크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인해 해외 수요가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1일(현지시간) 공급관리자협회(ISM)가 발표한 6월 제조업지수는 56.2를 기록했다. 이는 올 들어 최저다.
지수가 50을 상회하면 경기가 확장세에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6월 지수는 5월의 59.7에 비해 크게 낮아졌고, 블룸버그통신과 마켓워치의 예상치인 59도 밑돌았다.
미국 제조업 지표의 부진은 앞서 발표된 중국 제조업 지표 악화와 맞물리며 더블딥 우려를 더욱 높였다.
이날 중국 물류구매연합회(CELP)가 발표하는 6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대비 1.8포인트 하락한 52.1을 기록하며 전문가 예상치 53.2를 밑돌았다. 뒤이어 발표된 HSBC의 PMI 지수도 2.3포인트 하락한 50.4에 발표됐다.
자크 카이유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제지표는 앞으로 둔화될 것으로 본다"며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더블딥에 대한 우려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이어 미국의 제조업 경기 확장세가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위축세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는 주요 국가 가운데 그리스,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만 6월 제조업이 위축됐다.
댄 그린하우스 밀러타박 이코노미스트는 "ISM 제조업지수 56.2는 여전히 좋은 숫자"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현재의 경제 회복세는 대부분 제조업에 집중돼 왔기 때문에 이 부문이 둔화되면 다른 부문이 회복세의 바통을 이어받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최근 발표된 다른 경제지표들도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주춤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특히 고용지표와 주택지표는 더블딥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이날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6월26일 마감 기준) 신규 실업수당 청구는 전주 대비 1만3000건 증가한 47만2000건을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실시한 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들은 신규 실업수당 청구가 45만5000건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증가했다.
노동부는 주정부들이 교원 고용을 줄이는 시기가 맞물려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변동성을 줄인 4주 평균치도 46만6500건을 기록해 3월 이후 최고를 보여줘 고용 시장 침체에 대한 우려를 높였다.
제시 로스스타인 노동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는 충분히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고용 침체를 걱정했다.
또 전미부동산협회(NAR)가 이날 발표한 5월 잠정주택판매는 전월대비 30% 감소했다.
이는 지난 2001년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블룸버그통신이 실시한 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들은 14% 감소를 예상했었다. 지난해 같은달과 비교해서도 잠정주택판매는 1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발표는 정부가 주택 구입자들에 제공했던 최대 8000달러 세제 혜택이 4월 종료된 데 따른 것으로, 정부의 지원 없이는 주택시장이 스스로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코트 브라운 레이먼드제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구입 수요는 앞으로 2~3개월 동안 상당히 침체될 것"이라며 "주택차압 물량이 여전히 많을 것이고, 집값이 훨씬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각종 지표들이 전방위적인 더블딥 징후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9일 발표된 6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전월 62.7에서 52.9로 급락했다. 3개월간 꾸준했던 상승세가 급격히 꺾인 것이다.
스티븐 리치우토 미즈호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가 곧 또다른 위축을 겪을 운명으로 보인다"며 "유럽 역시 디플레이션으로 갈 것이고 일본은 이미 디플레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제조업 지표가 지난 11개월 동안 경기 확장세를 보여준 만큼 일시적인 지표 둔화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아울러 중국의 성장세 둔화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을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노버트 오어 ISM 조사담당자는 "제조업 경기의 회복세가 11개월째 지속됐다는 점에서 지수가 다소 둔화돼도 놀랄 일은 아니다"며 "많은 사람들은 올 하반기 경제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제조업은 꾸준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티븐 로치 모간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전일 베이징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의 성장률은 하반기 들어 둔화될 것"이라면서도 "최근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려하면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제통화기금(IMF)은 수많은 역풍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최근 진단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지난달 29일 워싱턴 피터슨연구소에서 가진 연설 직후 가진 질의응답에서 더블딥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IMF의 전문가들의 추정으로는 글로벌 경제는 평탄치 않은 회복세를 지속할 것"이라면서도 "회복세는 더블딥 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 회복세에는 분명한 하강 위험과 많은 경기 반락 가능성이 있지만, IMF의 기본적인 전망은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