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몰수, 상한 없는 벌금…음주운전에 자비없는 美·英

by성주원 기자
2024.08.12 05:30:00

■음주운전 공화국 (중)솜방망이 처벌에 음주운전 날뛴다
美, 차량 몰수·번호판 압류…시동잠금장치 의무
英, 재범시 10년 전력 공개…獨, 의무 심리검사
"처벌 실효성 높이고 단속 의지 강화해야" 지적
반성문·공탁 감형 재검토, 교특법 폐지 등 제안

[이데일리 성주원 백주아 기자] 최근 휴가철을 맞아 안타까운 음주운전 교통사고 소식들이 잇달아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음주운전 근절 효과가 입증된 해외 주요국들의 다양한 정책들을 벤치마킹해 우리 현실에 맞춰 도입·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1만3042건으로 하루 36건꼴로 발생했다. 전체 사고 건수가 다소 줄면서 연간 사망자·부상자 수도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음주운전 사고 피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음주운전은 재범률이 42%로, 마약류 사범 재범률(30%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세종경찰청은 전날 실시한 여름 휴가철 음주단속 및 교통법규 위반 단속에서 음주 운전자 2명 등 총 7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전날 나성동과 도담동, 보람동 일대 도로에서 일제 단속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경우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매우 강력하다. 일부 주에서는 최초 음주운전 적발 시에도 구금(교도소 또는 구치소에 구속) 이상의 처분을 내리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차량 몰수 및 번호판 압류 제도다. 애리조나, 오하이오 등 여러 주에서 음주운전자의 차량을 몰수하거나 번호판을 압류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미네소타주의 경우 음주운전 적발 시 특별한 번호판을 부착하도록 해 사회적 낙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미국은 음주운전 억제를 위해 보험 제도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음주운전 적발 경력이 있는 운전자에게는 보험료를 최대 159%까지 할증하는 등 경제적 부담을 크게 높이고 있다. 실제로 보험료 할증률이 높은 주일수록 음주운전 사망자 수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적 부담이 음주운전 억제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면허정지 기간 중 제한적 운전 허가와 시동잠금장치 의무화 역시 미국의 특징적인 정책이다. 제한적 운전 허가는 생계유지나 교육 등 필수적인 목적에 한해 운전을 허용하는 제도로 음주운전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동시에 재범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시동잠금장치는 운전자의 호흡에서 알코올이 감지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로 미국 내 많은 주에서 음주운전 재범 방지책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영국의 경우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1년6개월 이상 14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다. 벌금에는 상한선이 없다. 또 최소 2년 이상 운전면허를 박탈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지난해 5월부터 음주운전 재범자에 대해 반드시 10년간 음주 운전 전력을 공개하도록 하는 새로운 법안을 도입했다.



독일은 혈중알코올농도(BAC) 0.11% 이상인 경우 절대 운전불능 상태로 간주해 형법에 따라 처벌하고 있다. 또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경우 재취득을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의료심리학적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처벌을 넘어 음주운전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는 접근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음주운전 근절을 위한 노력에도 사고 감소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지난 2019년 이른바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처벌 기준은 강화했지만 실제 선고되는 형량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경우에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처리되는 등 처벌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천적으로 음주운전을 차단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면허정지와 취소처분 병행, 알코올 치료프로그램 실시,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사후관리 강화, 자동차 몰수 등의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는 “강력한 처벌뿐만 아니라 철저한 단속 의지도 필요하다”며 “단속에 걸릴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 음주운전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CCTV 설치로 소매치기가 감소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하면 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경일(왼쪽)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와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진= 이영훈 기자)
현행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의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법으로 인해 종합보험에 가입한 음주운전자들이 형사처벌을 피하는 경우가 많아 음주운전 억제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윤해성 선임연구위원은 “교특법 폐지를 통해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감형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반성문 제출이나 공탁금 납부 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러한 관행이 실질적인 반성이나 피해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보험 제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적발 시 자동차보험료 할증률은 초범의 경우 9%, 재범의 경우 15% 내외에 그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최대 159%(평균 60%) 할증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음주운전 적발 경력이 있는 운전자에 대한 자동차 보험료 할증률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