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영유·초등의대반 잡는다지만...현장 반응은 '글쎄'

by김형환 기자
2023.06.27 04:29:28

교육부 ‘킬러문항 배제’ 사교육 대책 발표
준킬러문항 중심으로 개편하는 학원가
학생들 “불확실성으로 학원 더 찾게 돼”
의대반·영유 집중단속에도 선호도 여전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26일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 경감 대책은 ‘킬러문항 배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사교육 업계는 벌써부터 킬러문항 대신 준킬러문항 중심의 커리큘럼을 구상하는 등 우회로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대책이 실효를 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교육비 경감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사교육업계는 지난 19일 당정이 ‘킬러문항 배제한 수능’ 출제 기조를 밝힌 이후 준킬러문항을 중심으로 수업 커리큘럼·교재를 개편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목동의 한 국어학원은 현재 국어교과서 10여종과 EBS 교재 등을 통해 준킬러문항 교재 제작에 들어갔다. 원장 A씨는 “지문은 한정적이지만 문제 자체를 비틀어낼 가능성이 있기에 이를 중심으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입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오히려 사교육을 더 찾게 된다고 토로했다. 대치동의 한 학원에 다니고 있는 고3 장모(18)양은 “이제는 교과서·EBS에 집중해 공부하면 되기 때문에 공부할 부분은 줄었지만, 변별력 저하로 실수로라도 틀리면 안되기에 더욱 철저히 교육해줄 학원을 찾게 된다”며 “수능이 어떻게 나올지 정보가 제한적인 상황이라 의지할 곳은 학원뿐”이라고 말했다. 중계동의 한 학원에 다니고 있는 고3 우모(18)양은 “결국 변화에 빠르게 움직이는 학원이 학생들의 선택을 받는다”며 “준킬러문항 중심의 수능이 될 경우 이를 중심으로 개편한 학원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입시업계에선 킬러문항이 사라져도 ‘준킬러문항’에 대응하기 위한 사교육 수요가 생겨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킬러문항이 사라지면 상위권 학생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또 다른 사교육을 찾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해선 이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능의 목적은 결국 1등부터 100등까지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이라며 “킬러 문항이 사라진다고 하면 상위권 학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이는 사교육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초등학생 대상 의대반과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은 사교육비를 경감하려면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고액 수강료로 인해 조기부터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키우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전국 영어유치원 847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월 평균 수강료는 175만원에 달했다. 초등 의대반의 경우 학원마다 다르지만 대치동의 경우 주1회 수업 기준 평균 50만원의 학원비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과 함께 학원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하고 과도한 교습비·허위과장광고 등이 적발될 경우 교습정지·등록말소 등을 통해 엄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의 이러한 대책에도 학부모들의 영어유치원·의대반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하다. 6살 딸을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는 김모(35)씨는 “경제적 부담은 있지만 영어유치원과 일반유치원은 교육의 질부터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학습 수준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공교육을 영어유치원 수준으로 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단속만 한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주장했다.

영어유치원과 초등 의대반은 학부모들의 선호도를 토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 2017년 474곳에서 지난해 811곳으로 337곳(71.1%) 증가했다. 서울의 대치동·목동을 중심으로 생겨났던 초등학생 대상 의대반은 최근 경기·인천·부산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경상·전라·충청 등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교육부가 사교육 경감대책 중 하나로 제시한 논술·구술 등 ‘대학별고사의 교육과정 범위 내 출제’에 대해선 대학가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미 선행학습금지법을 통해 대학별 고사가 관리되는 상황에서 교육당국의 압력까지 더해지면 출제할 문제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서울 지역 대학의 한 입학처장은 “공교육의 범위가 계속해서 좁아지는 상황에서 수능·내신 등을 보완하기 위해 대학별 고사를 치르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억압한다고 하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