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호 1년…'절간'에서 '시끄러워진' 한국은행의 명암[줌인]

by하상렬 기자
2023.04.21 05:00:00

21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취임 1주년
'타운홀 미팅'·'총재 식사권' 수평적 조직문화 형성
K점도표·한은 블로그 등 시장 소통도 강화
'빅스텝 소동' 시장불안 부작용…'답정너' 비판도
정부로부터 독립성은 과제, 다른 목소리 낼지 주목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국제통화기금(IMF) 인사들과 대담을 나누는 한국은행 총재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한 한은 직원이 “이창용 총재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조직의 위상을 높였다”며, 들어준 사례다. 한은 대표가 외신의 주목을 받으며 국제 토론회에 나선 것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이 직원 뿐만이 아니다.

21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이 총재는 그간 적극적인 소통으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높인 그를 두고 네티즌들은 그를 ‘창용신(神)’, ‘창드래곤(dragon)’이라며 애정을 표한다. 과거 외부와의 소통을 최소화해 ‘절간’이라 불리던 한은이 이 총재 부임 후 시끄러워지고 있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3.5% 수준에서 동결했다. 사진공동취재.
이 총재는 작년 4월 21일 취임 후 한은의 조직 문화 개선과 대외협력·교류, 통화정책 결정 등 일정을 소화하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8년 만에 등장한 외부 출신 총재에 대한 조직 내부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 총재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하며 조직문화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직급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원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임직원이 주요 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주간현안포럼’을 신설하고, 전 직원이 참여해 혁신방안 등을 논의하는 ‘타운홀 미팅’을 열었다. 국·부·팀제로 조직을 개편해 국장급 이상 임원 권한을 부장과 팀장 이하로 하부 위임했다. 또 총재 본인과의 식사권을 신청받아 희망하는 직원과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다.

직원들의 내외부 소통 강화를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 시스템’도 상시화했다. ‘모두가 대변인’이라는 모토 아래 커뮤니케이션국 내 담당 직무를 신설하고, 분야별·직급별로 연수체계를 만들어 사례 중심 강의와 실습을 조합한 연수도 진행하고 있다.

시장 평가도 긍정적이다. 통화정책 운용 과정이 보다 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부임 이후 6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2.0%포인트 인상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K 점도표’를 발표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처럼 FOMC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점으로 표시한 도표를 제시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간의 최종금리 수준을 제시한다. 이는 사실상 점도표와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또 국제통화기금(IMF) 블로그를 차용해 금융·경제 주요 현안에 대한 임직원의 분석과 견해를 공유하기 위한 공식 블로그를 신설해 시장과의 소통 창구를 늘렸다.



인재 발탁 방식도 눈에 띈다. 부총재보 승진을 위해 4명의 국장급 인사의 면접을 보는 등 IMF식 인사 방식을 적용했다. IMF 등 국제기구로의 파견이나 교류업무도 확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4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3.50% 수준에서 동결했다. 사진공동취재.
이 총재의 ‘소통왕’ 행보는 부작용도 따랐다. 작년 5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소동이 대표적이다. 이 총재는 당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첫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빅스텝을 배제할 단계가 아니다”고 밝혀 채권금리가 급등하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한은은 이후 ‘원론적인 발언’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물가상승률과 기대인플레이션율이 급등하면서 빅스텝이 현실화됐다.

부작용을 넘어 일부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이 총재는 수평적인 소통을 강조하지만, 이른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만 대답하면 돼)’ 같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작년 말 이 총재 지시로 총재에게 주로 결제를 맡으러 오는 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독선적이고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한다. 한은 관계자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라고 하지만, 정작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경우 달가워하지 않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본인의 평판을 중시하는 성향이라는 얘기도 있다. ‘오피니언 리더’로 지내왔기에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이 총재가 시험기간에 공부를 미리 끝내놓고 예상 문제와 답안을 만들어 학우들에게 공유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같은 인정욕구는 ‘중앙은행 총재다움’과도 연결되는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들은 이 총재가 ‘바뀌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총재는 결국 퇴임 이후 중앙은행 총재로서 평가받을 것이기에 개인이 아닌 중앙은행 총재로서의 입장을 우선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한은의 독립성으로 이어진다.

그간 이 총재는 정부에 너무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와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이 총재가 이를 너무 강요한 나머지 한은이 마치 정부의 정책을 받쳐주는 연구기관화되고 있다는 우려다. 정부는 작년 7월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안심전환대출을 지원하기 위해 한은이 주택금융공사에 1200억원을 출자한다고 발표했는데, 당시는 금통위 의결을 거치지 않은 상태였다.

일각에선 이 총재가 하반기엔 정부와 정책 노선을 다르게 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로 인해 금리 인하를 바라는 정부를 무시한 채 긴축기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