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구합니다' 입주물량 몰리자 8개월 전 전세 내놔

by권소현 기자
2018.07.23 05:00:00

내년 1분기 서울·수도권 4만가구 입주
집주인들 역전세난 우려에 거래 서둘러
3월 입주 앞둔 수원 ''영통아이파크'' 전세 22건
"대출규제로 세입자 확보 더 서둘러"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지난 2016년 7월 안양 호계주공 재건축 아파트인 평촌더샵아이파크를 분양받은 손 모씨(43)는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세입자를 구해달라고 부탁해놨다. 입주가 내년 3월이어서 8개월이나 남았지만 인근 전세시장 상황을 보니 세입자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제때 전세보증금 받아 잔금을 치르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조바심에 아직 골조만 올라간 상태인 아파트를 전세로 내놨다.

내년 입주 예정인 새 아파트 단지에서 벌써 전세매물이 나오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이어 내년에도 서울 내 입주물량이 상당한 데다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입주시기가 다가올 수록 전셋값이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미리 세입자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22일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내년 3월 입주 예정인 경기도 수원시 영통아이파크캐슬1단지에 전세매물이 28건 등록돼 있다. 중복 물건을 제외해도 20채가 넘는다. 전용 59㎡부터 105㎡까지 다양한 면적이 3억3000만원에서 5억원까지 올라와 있다. 1783세대 대단지로 지어지는 아파트인 만큼 갈수록 세입자 선점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한 집주인이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같은 달 경기도 안양시 평촌신도시에 입주하는 평촌더샵아이파크 역시 6가구가 전세 세입자를 찾고 있다. 남양주시 다산동 지금지구에 들어서는 반도유보라메이플타운과 용인시 처인구에 짓는 양우내안에에듀퍼스트, 동탄2신도시2차 동원로얄듀크 역시 내년 3월 입주 예정인데도 전세매물이 한두 채씩 나와 있다.

내년 1~2월에 입주하는 아파트 단지는 더하다. 내년 2월 입주 예정인 강남구 개포주공 2단지 재건축 아파트 래미안블레스티지는 등록된 전세매물이 75건에 달한다. 중복매물을 감안해도 전세매물이 60건 이상은 된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 설명이다.

서울시 성북구 길음동에 짓고 있는 2352가구 규모의 래미안 길음센터피스 역시 78채가량이 세입자를 찾고 있고 성북구 석관동 래미안 아트리치에도 28건의 전세매물이 등록돼 있다. 양천구 신정동 목동 파크자이와 영등포 신길뉴타운아이파크도 16~17건, 은평구 응암동에 짓는 백련산파크자이는 6건의 전세매물이 나와 있다. 이들 단지 모두 내년 2월 입주 예정이다.

내년 1월 입주하는 답십리파크자이(34), 경희궁 롯데캐슬(35), 미사강변제일풍경채(7), 미사신안인스빌리베라(5), 평택자이더익스프레스3차(3) 등도 전세 살 이들을 구하고 있다.

입주 6개월 전부터 전세매물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그 시기가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다. 올해 연말 9510여가구가 입주하는 송파구 문정동 헬리오시티는 지난 2월부터 세입자 구하기에 나섰다. 입주물량이 미니 신도시급인 만큼 집주인들이 무려 10개월이나 먼저 움직인 것이다. 실제 입주시기가 다가올수록 전세금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올해 2월만 해도 9억원선이었던 전용 84㎡ 전셋값이 최근 6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최저 5억5000만원에 세입자를 찾는 매물도 올라와 있다.



문정동 J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입주시기가 다가올수록 세입자 구하지 못할까 불안해하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며 “전세를 구하는 이들은 이들은 좀 더 기다리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어서 지금은 세입자 우위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집주인이 서두르는 것은 과거 경험 때문이다. 1000세대 넘는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입주시기가 다가올수록 전셋값이 낮아지고 세입자 구하기 전쟁을 치렀다. 과거 잠실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2008년 2만여가구 입주가 동시에 이뤄지자 극심한 역전세난을 겪었다. 당시 전용 84㎡ 전셋값이 강북과 비슷한 2억원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올해와 내년 초까지 입주물량 부담이 이어질 전망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8월부터 내년 3월까지 서울시내 월평균 입주물량은 4400가구 수준이다. 특히 올해 12월에는 송파구 문정동 헬리오시티 입주 여파로 1만3941가구가 집들이를 하고 내년 2월에는 개포 래미안 블레스티지, 길음동 래미안길음센터피스 등 대단지 아파트 입주가 이뤄지면서 입주물량이 7809가구로 늘어난다. 내년 1분기(1~3월) 서울과 경기지역 500가구 이상 주요 단지 입주물량만 4만3308가구 수준이다.

이렇게 입주물량은 넘치는데 전세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지난 16일 기준 서울 전셋값은 이달 초 반등해 3주째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자치구별로 보면 성동·광진·강남·노원 등은 여전히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고 은평·서대문·구로·송파 등은 보합세를 보였다. 내년 3월 입주 예정 단지가 있는 수원 영통구나 안양 동안구는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세금 요인도 있다. 과거 분양권 전매에 따른 양도소득세는 보유기간 1년 미만이면 50%, 2년 미만이면 40%, 2년 이상이면 6~38%의 기본 세율이 적용됐다. 하지만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으로 청약조정지역 내에서는 보유 기간에 관계없이 양도세 50%를 부과하기로 했다. 양도세의 10%를 부과하는 지방소득세까지 더하면 양도소득의 5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따라서 지금 분양권 전매제한이 가능해도 집주인들이 양도세 부담 때문에 팔기보다는 전세를 일단 주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 세입자 구하기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석관동의 R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분양권 매도할 것인지 전세 놓고 보유할 것인지 고민하다 세금 때문에 보유로 결정한 집주인은 하루라도 빨리 세입자를 정해놓고 싶어 한다”며 “주변 아파트 전세시세보다 높을 때 전세가격을 확정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보통 입주때 물량충격이 있어서 입주 후 2~3개월 정도 지났을 때가 전셋값이 가장 싸다”며 “투자목적으로 분양받은 이들이 특히 대출 규제 때문에 전세금 낮춰서라도 빨리 세입자를 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