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수익 기자
2014.05.09 06:00:15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민주당은 지난해 7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안을 전당원투표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공천폐지) 67.7%, 반대(공천유지) 32.3%였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민주당은 공천폐지를 당론으로 정했다.
하지만 9개월 후인 지난달 중순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시 한번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여부를 당원들에게 물어본 결과는 달랐다. 공천해야한다(57.14%)는 응답이 공천하지 않아야한다(42.8%)는 응답보다 우세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를 근거로 9개월 전에 확정한 당론을 뒤집고 정당공천을 하기로 했다.
이같은 두 번의 조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동일한 방법에 의한 조사가 아니다. 우선 질문 문항이 다르다. 첫 번째 조사는 기초선거 공천폐지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물었다. 이는 곧 공약을 지켜야 하는지, 지키지 말아야 하는지를 묻는 것에 가까웠다.
반면 두 번째 조사는 ‘새누리당이 공천하는 상황에서 공천을 안 하면 불공정선거가 되므로 공천해야 한다는 의견과 애초의 방침대로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 중 어느 쪽에 공감하느냐를 물었다. 이는 9개월사이에 바뀐 환경(새누리당의 정당공천 확정) 변화에도 ‘원칙론’을 고수해야 하는지, ‘현실론’을 따라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나 다름없었다.
여론조사는 표본오차가 제로(0)에 가깝다고 가정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자들에게 물어본 시점, 그 순간의 민심만 반영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선거후보를 결정하는 지지율 조사뿐만 아니라 기초공천 사례처럼 정책적 사안을 결정하는 것 역시 조사시점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이때문에 중요한 정책적 사안을 여론조사로 활용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적어도 여러 사안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여론조사를 결정적 판단근거로 활용하는 방식에는 우려감이 높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예컨대 51%가 찬성하는 A안과 49%가 찬성하는 B안이 있을 때 이를 설득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갈등을 중재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인데, 여론조사 결과만 가지고 A안을 선택하면 나머지 49%의 갈등은 방치하면서 그 책임을 여론조사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정당이 여론조사를 지나치게 이용하는 것은 일종의 ‘중우정치’”라며 “여론조사는 참고사항일 뿐인데 결정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도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