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양희동 기자
2013.12.24 07:00:00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들어선 ‘대주 피오레’ 아파트. 2006년 처음 분양시장에 나온 이 단지는 당시 주택 수요자들에게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중대형(전용면적 165~198㎡)으로 이뤄진 2000가구 규모의 대단지인데다 분양가 역시 한 채에 10억원 이상의 고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양 다음해 주택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이 아파트는 대거 미분양 사태에 빠졌다. 결과는 시공사(대주건설) 부도와 집값 급락으로 이어졌다. 이 단지를 공급한 대주건설은 전체의 70%에 달하는 미분양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부도 처리됐고, 10억원에 달하던 집값은 현재 3~4억원대로 떨어졌다.
‘땅에 울타리만 치면 돈이 모이는 사업’. 아파트 개발사업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이 말은 시장 호황기에 국내 건설사들이 아파트 공급에 열을 올린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동안 주택 재고량이 많이 부족했던 터라 아파트처럼 대량 공급이 가능한 주택 개발사업은 돈다발을 긁어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됐다. 이 과정에서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선분양’이었다. 건설 계획이 마련되면 우선 입주자들을 끌어모아 건설비용을 마련한 뒤 집을 짓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 주택법 개정으로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이후 주택사업에 뛰어드는 업체 수는 우후죽순 늘어났고,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데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하지만 시장 침체기에는 용인 공세동 대주 피오레 아파트처럼 미분양 급증과 업체 부도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하면 건설 자금 조달이 힘들어져 부도 위기에 내몰리는 건설사가 속출하고, 분양 계약자들도 계약금과 중도금 등을 떼일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델하우스와 실제 건설된 모습이 달라 허위·과장광고 등의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크다.
주택 보급률이 102%로 과잉 공급시대를 맞으면서 이 같은 선분양 중심인 주택 공급 방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데일리>가 지난 10월 창간 1주년을 맞아 건설·부동산 전문가 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2%가 10년 후에는 후분양 비중이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후분양 방식에 대한 제도적·기술적 연구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인 2004년 정부 차원에서 ‘후분양 전환 로드맵’을 내놓기도 했지만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일부 ‘준공 후 미분양 단지’를 제외하면 민간 건설사가 후분양을 선택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이 투자에서 실수요 위주로 재편된 현 시점이 후분양제를 재추진할 적기로 보고 있다. 주택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선분양에 따른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는 만큼 체계적인 후분양 활성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팀장은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선데다 대량 공급이 가능한 택지도 크게 줄면서 수요자가 살 집을 고를 수 있는 후분양 방식이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후분양을 위한 다양한 개발 방식과 자금 조달 기법에 대한 연구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