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부자 인터뷰]빌딩 1채·원룸 45채 소유.."아내 외조도 재테크다"

by성선화 기자
2013.12.18 06:00:00

홀어머니 밑에서 맨손으로 시작..한달 월세 8000만원·300억대 자산가로
생각은 무형이 아닌 유형..돈에 대한 신념이 에너지

[이데일리 성선화 기자]“개천의 용이요?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바로 산 증인이죠.”

맨땅에서 시작해 300억원대 빌딩부자가 된 이상화(42,) 경영웰리스 대표. 그는 군대 제대 전까지 17년 간 살았던 영등포 빈민촌을 찾았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 밖에 살지 않는 13평 다세대 주택에 홀어머니와 3남매가 함께 살았다.

오랜만에 찾은 옛집에서 어린 남매를 발견한 그는 “너희들도 나처럼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며 “나 또한 여기서 초중고교 시절을 찢어지게 가난하게 보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용돈 10만원씩을 쥐어 준 이 씨는 “지금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며 “사회 구조상 상류층도 언젠간 내려오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억만장자가 될 것이다. 2014년 12월까지 빌딩 한 채를 더 매입해 고정 수입을 1억 5000만원으로 만들 것이다. 비만사업(다이어트 센터), 교육사업, 임대 사업 등을 통해 2017년 12월까지 1000억원대 부자가 될 것이다.”

현재 월세 수입이 8000만원인 이 대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자세를 하고 스스로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지난 2002년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세번씩 잠재의식을 일깨우는 주문을 외운다.

그는 “신념이 부자를 만든다”며 “마음 밭에 어떤 씨를 뿌리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스스로 매일같이 마음 밭에 ‘부자’라는 씨를 뿌렸고, 지금은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랐다는 것이다.

“생각은 무형이 아니라 유형입니다. 생각이 곧 에너지입니다.”

목소리에 강한 에너지를 담은 그는 “돈에 대한 확신과 신념을 가지면 얻어진다”며 “돈에 대해 확신하는 순간, 돈이 곧 에너지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대로 연봉 1억원의 잘 나가던 직장을 박차고 나온 지 10년 만에 빌딩부자가 됐다. 지금 그는 빌딩 1채와 원룸 45채를 가진 300억대 자산가다. 한 달 월세 수입은 8000만원이고 대출 이자를 뺀 순익은 4000만원이다. 만약 고액 연봉에 안주하며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면, 이같은 부를 축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대표의 가장 큰 장점은 ‘실천적 지능’이다. 그는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 대표는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축적하지만, 절대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실천한다. 그를 바꿔놓은 것은 두 권의 책이다. 로버트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나폴레옹힐의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이다.

“여자친구가 없던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을 새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었고,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는 생각한 즉시 행동에 옮긴다. 삼정KPMG 경영컨설턴트로 있으면서 부동산 물건 분석에 재능에 보였던 그는 현금 2000만원과 마이너스 통장 3000만원으로 일산 아파트 5채를 구입했다. 2002년 당시만해도 24평 아파트 값이 9000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셋값은 8100만원이었다.



그의 과감한 배팅으로 1년 만에 한 채당 2000만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올렸다. 이를 토대로 보다 넓은 평형의 아파트에 투자했고, 이를 통해 1억원 정도의 종잣돈을 마련했다.

불과 1년 6개월 전에 처음으로 원룸 사업에 뛰어들 때도 그랬다. 모든 사람들이 “이제 부동산 시장은 끝났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신념을 가지고 과감한 투자를 했다. 19채의 다세대 주택을 35억원에 매입했다. 이후 올초 26채를 추가 매입해 현재 운영하는 원룸만 45채다.

그의 목표는 원룸 100채다. 첫 원룸 매입 때는 은행 대출을 80%까지 받았고, 두번째 원룸 매입 때는 90%까지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공실이 전혀 없기에 원리금에 대출이자를 매달 갚아도 순익이 남기 때문이다무일푼으로 시작한 그가 종잣돈을 확보한 비결은 뭘까. 그것은 바로 아내의 다이어트 비만 사업의 대박을 통해서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내와 결혼 당시만해도 이들은 가난한 신혼부부였다. 일산의 24평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만큼은 확고했다.

“아내에게 참 고마웠던 점은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아무말 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거에요. 대학생원 생이었던 아내 역시 수입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 역시 아내가 강남 압구정동에 다이어트 센터를 오픈한다고 했을 때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줬다. “대림동 빈민촌 촌놈이 강남 지리가 알았겠습니까. 그래도 아내가 한다니깐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아내의 사업은 처음 1년 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 말부터 고객이 밀물처럼 몰려들면서, 이른바 대박이 났다. 2000년대 중반 3년간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고, 연간 순익이 20억원에 달했다. 사업적 마인드가 뛰어났던 그가 아내의 사업을 도운 것이 대박의 비결이었다. 맨손으로 시작한 부부가 서로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불같은 시너지 효과를 낸 셈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비만 사업이 영원히 잘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주장처럼 꾸준한 고정 수입의 필요성을 느꼈고 빌딩 매입을 결심했다. 이에 다이어트 센터가 입주해 있던 41억원 짜리 빌딩을 현금 7억원으로 사버렸다.

결국 아내의 비만 사업은 빌딩 매입의 종잣돈이 된 셈이다. 이 씨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애처가다. 아내를 공주처럼 떠받든다. 그의 처갓집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서로가 부자에 대한 신념을 공유한 덕분이다. 그는 “화목한 가정은 부자의 전제 조건이 된다”며 “이혼을 하게 되면 에너지가 분산돼 사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결혼 10년 만에 늦둥이를 낳았다. 아내가 박사 학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 나중에 아이를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운전을 할 때도 몇 번씩 아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고 말한다. 행복한 가정이 그에게 주는 만족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는 세간의 부정적 시선에 대해 쿨하게 인정했다.

“임대업보다 보다 창의적인 일을 통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할 수도 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부동산 임대업을 통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1년에 3~4번씩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삶이 더 행복합니다. 부동산 임대업이 아니면 지금처럼 자기 시간을 가지기 힘드니까요.”

앞으로 그의 목표는 한 달에 고정 수익이 1억원 정도 나오게 원룸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그는 교육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혈혈단신으로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강연 활동을 통해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