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히면 죽는다…시진핑·푸틴의 '공포정치 브로맨스'[글로벌스트롱맨]
by박종화 기자
2023.10.01 07:00:20
시진핑 의형제도 체포설…"러 바그너그룹 반란에 習도 불안감"
푸틴과 갈라서면 의문사…러 공포정치에 반대 목소리 사라져
계속된 숙청에 주변엔 충성파만…''인의 장막''에 고립 부작용도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200만 인민해방군을 이끄는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이 한 달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에선 그가 왜 사라졌는지, 국방부장직을 유지하고 있긴 한 건지 함구하고 있다. 외부에선 리 부장이 부패에 연루돼 조사받고 있다고 관측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내 화교방송인 NTDTV는 리 부장이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부부장(차관)급 간부 6명과 함께 체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 지난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회의에서 친강(앞줄 오른쪽) 당시 외교부장과 리상푸(앞줄 왼쪽)이 선서를 하고 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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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중국 고위급 인사는 리 부장만이 아니다. 지난 7월엔 친강 외교부장이 한 달 새 종적이 감췄다가 면직됐다. 면직 사유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소식통을 인용해 친 전 부장이 주미대사 시절 저지른 불륜 때문에 해직됐다고 지난주 보도했다.
친 부장에 이어선 인민해방군의 핵무기를 담당하는 로켓군의 리위차오 사령관과 쉬중보 정치위원이 동시에 경질됐다. 비슷한 시기 우궈화 로켓군 부사령관은 돌연 세상을 떠났는데 병사라는 중국 매체 보도와 달리 홍콩 성도일보 등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중국 고위직 인사들이 종적을 감추거나 뚜렷한 이유 없이 해임되는 상황에 대해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지난달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시 주석의 내각 포진이 이제 (영국 추리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닮았다”며 “중국 청년들과 시진핑 내각 중 어디가 실업률이 더 높을까”고 비꼬았다.
리 부장의 ‘실종’이나 친 전 부장의 해임이 눈에 띄는 건 그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으로 불리며 올 초 중국 안보라인 전면에 발탁됐기 때문이다. 리 부장과 함께 체포설이 돌고 있는 장 부주석은 시 주석의 ‘의형제’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측근들의 몰락이 시 주석에게 아주 손해라곤 볼 순 없다. 측근이라도 언제든 갈려나갈 수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해 충성경쟁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문가인 위핑은 “최고 참모진이 자신에게 충분히 동조하지 않는다는 의심이 있기 때문에 시진핑은 단속을 통해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려 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듯 시 주석은 최근 중국공산당 중앙판공청에 “당 중앙의 집중통일 영도를 확고히 수호하고, 사상·정치·행동에서 시종일관 당 중앙과 고도의 일치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시 주석이 지금처럼 절대권력을 구축한 것도 2012년부터 ‘사정정국’을 통해 당과 군의 거물들을 잇달아 쳐낸 게 큰 도움이 됐다. 군부에서만 고위급 인사들이 100명 넘게 숙청됐는데 관영 중국중앙(CC)TV는 국공내전에서 숨진 장군 수보다 많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시 주석이 이 시점에서 공포정치를 결정한 배경은 무엇일까.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크레이그 싱글턴 선임연구원은 “경제 성장과 중국군 현대화를 희생시키더라도 이념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진핑의 집착이 러시아 바그너그룹 반란으로 강화됐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우크라이나 침략에 앞장섰던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순식간에 총구를 푸틴 대통령에게 돌리는 걸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푸틴 대통령도 정적에 대한 잔혹함이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과 척을 진 사람 중 상당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프리고진만 해도 푸틴 대통령의 용서를 받는 듯 했지만 반란 두 달 만에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지난해엔 전쟁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 온 라빌 마가노프, 파벨 안토프 등 러시아 재계 거물들이 잇달아 추락사한 채 발견됐다. 반푸틴 시위를 이끌던 보리스 넴초프는 2015년 괴한의 총을 맞고 사망했는데 그는 생전 푸틴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푸틴 대통령의 공포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차’(茶)와 독살이다.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에서 일하다가 영국으로 망명, 반(反)푸틴활동을 하던 알렉산드르 발테로비치 리트비넨코는 2006년 옛 동료들과 녹차를 마신 후 2주 만에 사망했다.
리트비넨코가 마신 차에선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25만배 강한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 검출됐다.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2021년 리트비넨코 살해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판결했다. 2020년엔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톰스크공항에서 차를 마신 후 의식을 잃었다. 나발니는 치료를 위해 독일로 이송됐는데 의료진은 나발니의 체내에서 옛 소련이 개발한 화학무기인 노비초크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공포정치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것도 결국 시 주석과 마찬가지로 충성심이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는 프리고진 사망에 대해 “자신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생각해도 푸틴에게 반대하면 비슷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모든 러시아 엘리트들에게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공포정치가 이들 ‘스트롱맨’에게 도움만 될까.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에선 서로 불신하며 아무도 푸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다며 푸틴 대통령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측근들과만 어울리며 점점 고립돼 국가 경영에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틴 거너스 미국 랜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시진핑은 충성파만 측근에 두면서 국가안보 문제에서 다양한 견해나 관점을 접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는 잠재적으로 해롭거나 갈등을 키울 수 있는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폴리티코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