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맥주 잘 팔리는데, 아직 목 마르다…하이트진로의 변신

by지영의 기자
2023.05.19 08:41:29

[마켓인]
4년새 27개사 투자…VC 빰치는 주류회사
진로 소주에 테라·켈리도 잘 팔리는데
스타트업 투자로 새 먹거리 찾기 나선 하이트진로
농수산 혁신 스타트업 발굴해 중점적으로 키운다

[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두꺼비 소주’로 대중들에게 독보적인 입지를 굳힌 주류회사 하이트진로(000080)가 초기 스타트업 시장에서 전략적 투자자(SI)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기업투자조직을 키워 본업인 주류사업 외에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정식 투자를 시작한 지 4년차에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을 다수 발굴해내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회사 발전과 새 먹거리 확보를 위해 지난 2016년 창설한 신사업개발팀을 통해 투자를 시작했다. 신사업개발팀이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한 건 지난 2020년부터다. 연간 평균 30억원대의 예산을 투입해 투자를 해온 지 4년차. 하이트진로에서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수혈받은 스타트업만 27곳에 달한다. 주로 시드(초기) 또는 프리 A 단계에서 성장성이 높은 기업 위주로 들여다보고 있다.

유망 성장 동력을 갖춘 기업이면 폭 넓게 들여다보지만, 그 중에서도 방점을 두는 투자 방향은 1차 산업 중 농수산 관련 부문이다. 현재의 농수산 원물을 미래에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소비할 수 있는 분야에 도움이 될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을 적극 발굴해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하이트진로가 투자한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농수산업 분야의 유통·기술 혁신에 기여하고 있는 이색 스타트업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나물 가공 및 유통 업체 ‘엔티’다. 엔티는 전국 각지의 농가와 계약을 맺고 생산한 나물을 가공해 소비자에게 배송하고 있다. 건강식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지는 점을 감안하면 성장성이 높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잠재적 성장성이 높은 스마트팜 기업 ‘그린’, 수산물 온라인 중개 플랫폼 ‘푸디슨’, 작물 선정부터 생육 시설 설계·시공 재배 후 관리·출하까지 관리하는 스마트팜 토탈 솔루션 기업 ‘퍼밋’ 등에 투자를 단행했다.

신사업팀에서 발굴한 회사가 하이트진로와 시너지가 있다고 판단돼 인수·합병(M&A)에 나선 사례도 있다. 푸드테크 스타트업 ‘놀이터 컴퍼니’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놀이터컴퍼니는 파트너사의 PB,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상품의 디자인과 브랜딩까지 원스톱 퍼블리싱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쿠팡 등과 협력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이트진로 서초 사옥(사진=지영의 기자)
올해 상반기부터는 ‘자연 기반 투자 연계형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과 함께 농수산 분야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최종 투자까지 진행하는 민관 협업 프로그램이다. 하이트진로 외에도 농식품 및 수산펀드를 보유한 투자기관들이 함께 참여해 스타트업들을 만났다. 상반기 행사에서는 총 163개사가 지원했고, 이 중 농식품분야 6개 업체, 수산분야 4개 업체가 최종 선정됐다. 이 중 양식장 사업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스타트업 ‘타이드풀’을 포함한 총 5개사가 하이트진로에서 투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주로 초기기업에 투자해와서 투자 회수 기간이 길 수밖에 없지만, 최근 첫 엑시트 성과도 냈다. 하이트진로가 7번째로 투자에 나섰던 클라우드 기반 창고관리 시스템을 개발한 스타트업 ‘스페이스리버’다. 지난해 하반기에 다우기술이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스페이스리버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 하이트진로도 멀티플 2배 수준으로 투자금을 회수해 호실적을 거두게 됐다.

구성림 하이트진로 신사업개발팀장은 “ 하이트진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불어넣기 위해 신사업개발팀을 출범시켰다”며 “주류 시장에만 기대지 않기 위해 스타트업 투자를 시작했고, 하이트진로가 종합 식품회사로 진출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안 좋지만, 초기 단계의 기업 투자 여건은 좋다고 보고 있다”며 “자금 경색으로 어려운 초기 유망 기업을 적극 발굴해 키워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6월 일반기업 중에서는 최초로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 운영사에 선정됐다. 투자에 뛰어든지 3년차 만에 기업 심사·발굴 역량을 입증 받은 셈이다. 팁스 운영사가 된 이후 관련 프로그램을 전담할 코디네이터와 심사역 인력을 충원해 조직 규모를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