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정희 기자
2022.09.21 04:10:00
이데일리 경제학자 10명 설문조사
환율 1400원 코앞에서 멈췄지만 ''1400''돌파는 시간 문제
환율 오르면 수입물가 급등보다 ''자본유출'' 더 걱정
10명 중 6명 ''환율 오버슈팅'' 평가
美 빠른 금리인상 속 한은 ''베이비스텝&apos...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원·달러 환율이 16일 1399.0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3월 이후 14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외환당국이 전방위적인 1400원 방어전을 펼치고 있지만 1400원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평가다.
경제학자들은 환율이 급등할 경우 자본 유출이 가장 걱정된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환율이 오르면 자본 유출보다는 수입물가 급등이 더 걱정된다고 밝힌 것과는 상반된 분석이다. 이에 따라 경제학자들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재계약이 환율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 한은에 추가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포함한 과감한 금리 인상을 주문했다.
이데일리가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국내 경제학자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은 현재의 환율이 오버슈팅(과도한 가격 급등) 상태라고 평가했다.
오버슈팅이라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정책금리가 빠르게 인상되면서 달러인덱스가 110선까지 돌파, 20년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번 주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올려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1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예상하는 시각들이 늘어나면서 연말 미 금리가 4.25~4.5%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한은의 금리 정책이 오버슈팅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 포워드 가이던스가 한미 금리 역전폭을 더 키울 것으로 해석됐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8월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당분간 0.25%포인트씩 베이비스텝으로 금리 인상’을 하겠다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했다. 미국이 자이언트 스텝을 강하게 밟아가는 것을 고려할 때 한은 금리 역전폭이 커질 것이란 우려에 역외의 원화 약세 베팅이 더 자극됐다는 얘기다. 한미 금리는 최악의 경우 연말 1.5%포인트 역전돼 2000년 5월(-1.5%포인트) 이후 가장 큰 폭의 역전을 기록할 가능성도 있다.
유혜미 한양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도 미국 등 주요 선진국 대비 느린 금리 인상 속도를 오버슈팅 원인으로 꼽았다. 한은은 작년 8월 금리 인상을 시작해 다른 나라보다 선제적으로 움직였으나 뒤늦게 출발한 다른 나라들이 수차례 빅스텝을 통해 금리 인상폭을 키우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은의 금리 인상 속도는 느린 편에 속하게 됐다. 연초 이후 9월까지 한은은 금리를 1.5%포인트 올렸으나 미국은 9월 FOMC 회의까지 포함하면 3%포인트, 호주는 2.25%포인트나 올리게 된다. 영국도 이달 빅스텝을 포함, 2%포인트 인상이 예상된다.
경제학자들은 환율이 오를 경우 가장 큰 문제로 자본유출을 꼽았다. 10명 중 5명이 ‘자본 유출’을, 4명이 ‘수입물가 급등’을 우려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대규모 자본유출을 경험한 것은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였는데 지금의 환율 급등이 자본유출을 확대시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달 25일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환율 상승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외환위기, 금융위기가 아니라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 중간재 수입 기업들의 고충”이라고 밝혔으나 이와는 상반된 분석이다.
해결책도 달랐다. 이 총재는 달러를 제외한 전 세계 통화가 절하되는 상황에선 ‘통화스와프’가 고환율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지만 경제학자들은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경제학자들은 환율 안정책을 묻는 객관식 질문에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빅스텝 등 강한 금리 인상 △수출 경쟁력 강화 △외환당국의 환율 개입 △해결책 없음의 보기(복수응답 가능) 중 ‘통화스와프(6표)’와 ‘강한 금리 인상(6표)’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과 통화스와프 재계약을 하면 외환공급을 늘리고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올 들어 8월까지 외환보유액이 270억달러 감소했는데 외환보유액이 연간 단위로 감소한 것은 1997년, 2008년 이후 처음이다. 강태수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영국, 일본, 캐나다, 스위스, 유럽연합(EU) 등 미국과 상시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는 나라들도 환율이 급등(자국 통화가치 급락)하지만 자본유출 우려가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나라 시각으로 21일 새벽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외환시장 협력 방안을 논의키로 하면서 ‘통화스와프 재계약’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대통령실에선 ‘통화스와프’를 논의하는 방안에 대해 부인한데다 5월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외환시장 안정’이란 문구를 넣고도 이후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섣부른 기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학자들은 한미 금리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석병훈 교수는 “미국과 금리 (역전폭이) 커지면 환율이 상승해 수입물가가 상승하고 이것이 소비자물가 상승을 유발하므로 국내 물가 안정을 위해서라도 추가 빅스텝 등으로 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 미국과 금리 차이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만이 “환율 안정책이란 게 없다”며 “그냥 둬도 큰 무리가 없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