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의 경세제민]코로나19와 각국의 서바이벌 게임
by신하영 기자
2021.10.14 04:00:00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고려대 16대 총장]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전 세계 8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오징어 게임’은 삶에 실패해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일확천금의 기회를 주는 극단적 경쟁게임이다.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같은 단순게임을 9번이나 시켜 탈락하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처형하고 최후의 승자에게 456억원의 상금을 준다. 상금은 처형된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대가다. 인생의 나락에 빠진 사람들에게 돈을 얻으려면 생명을 걸라는 선택을 요구하고 승자 1인을 남겨놓고 모든 참가자들을 죽이는 잔혹한 게임이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가 각국을 경제생명을 유지하는 승자와 죽음을 당하는 패자로 나누면서 오징어 게임과 유사한 결과를 낳고 있다.
2019년 말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하자 각국은 경제타격을 막기 위해 무제한적으로 돈 풀기에 나섰다. 나라마다 기준금리를 낮춰 통화 공급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예산을 늘려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팽창정책을 경쟁적으로 펴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위기 극복정책이 최악의 경제상황을 막는 외형적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물가불안과 경기침체가 점차 경제의 숨을 막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낳고 있다. 유동성이 과도한 상태에서 코로나 확산에 따라 글로벌 공급 망이 불안해지자 물가불안과 경기침체가 서로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원자재 공급 차질과 가격상승이 이 악순환에 불을 지르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국제 원유가격이 연초 대비 60%이상 올라 배럴당 77달러가 넘는다. 천연가스 가격은 120%이상 올라 100만 BTU 당 6달러에 육박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스태그플레이션의 가속 페달을 밟으며 각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불안이 확산함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에 트리플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가, 환율, 채권가격이 일제히 하락세다. 인플레이션의 확대, 중국의 헝다그룹의 파산위기 등이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거품으로 들 뜬 금융시장이 트리플 약세를 지속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에 걸린 경제를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주가가 추락하고 증권시장이 혼란에 처하면 자금흐름에 경색현상이 나타나 기업의 부도위험이 높아지고 산업현장이 냉각한다. 환율이 올라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물가상승을 가열하는 것은 물론 외국자본의 유출을 유발해 국가부도의 위험을 높인다. 더욱이 채권가격이 하락해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가계부채와 한계기업들이 연쇄부도위험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경우 실업자가 대규모로 쏟아져 나오고 동시에 물가가 급등하는 경제위기의 폭발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서바이벌 게임의 주요종목으로 등장해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을 만들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에 걸리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각국 경제가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백신을 조기에 개발하고 접종을 서둘러 경제피해를 줄이고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을 피한 나라는 승자의 대열에 서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패자대열에 서야 한다. 더욱이 코로나 시대에 맞춰 미래 산업을 선도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는 코로나 수혜국으로 앞서 나가며 코로나 타격으로 고통을 받는 다른 나라들을 따돌리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19의 유력한 승자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6%가 넘는다. 고속성장을 주도하던 중국의 경제성장률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실업률이 자연실업률인 5%대로 떨어져 사실상 완전고용상태다. 문제는 물가불안이다. 기준금리를 0%대로 낮추고 무제한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펴 물가상승률이 5%를 넘어 심각한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나온 정책이 금융정상화 정책이다. 미국은 금년 말부터 테이퍼링 정책을 펴 양적완화를 축소하고 내년부터 기준금리를 올릴 예정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들도 미국을 따라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의 금융정상화 정책은 경제 회복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은 있으나 신흥국 등 다른 나라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줘 패자를 양산하는 서바이벌 게임의 후속 종목의 성격을 띤다. 금융정상화 정책에 실패하는 나라들은 무더기로 서바이벌 게임의 탈락자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최후 승자와 탈락자를 가르는 서바이벌 게임 종목은 금융정상화보다는 과학기술이다. 바이오·제약·반도체·인공지능·전기자동차·블록체인 등 혁신산업을 어느 나라가 선점하는가에 따라서 경제의 운명이 달라진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전쟁 중이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10대 미래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미국은 ‘미국 중심의 공급 망 구축’을 선언하고 미래 산업 발전을 주도하는 패권전략을 펴고 있다. 앞으로 어느 나라가 기술전쟁에서 이기는가에 따라 최후 승패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대응에서 비교적 선방해 경제적으로 패자의 대열에 서는 것은 피했다. 대내적으로 자영업 등 서민경제의 피해가 크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수출경쟁력이 높아 올해 4%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문제는 후속 게임인 금융시장 불안의 대처다. 가계부채가 1800조원을 넘어 가구당 8800만원에 이른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15%에 이른다. 여기에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이 거품에 들떠 언제 꺼질지 모른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금융위원회는 대출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자칫하면 스스로 금융위기를 촉발해 경제 불안을 가중할 수 있다. 자영업 회생, 가계부채 해소, 기업투자 활성화 등의 대책을 마련한 후 필요한 정책을 펴야 한다. 무엇보다 과학기술과 산업혁신의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하다. 한국판 뉴딜, K-반도체, K-바이오 등의 정책이 있으나 실질적인 내용이 없다. 더구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후보자들의 공약이 눈에 띄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승자독식의 서바이벌 게임에서 탈락자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