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들킬 세상"…안경 너머 지워진 눈빛에 기죽다

by오현주 기자
2021.08.04 03:30:00

아트파크 ''사유의 경련'' 전 연 작가 김호석
역사 속 인물, 수묵으로 그려온 한국화가
눈 지운 인물화로 시대 관통한 시선 심어
불통의 세상에 느끼는 ''화가의 경련'' 옮겨

김호석 ‘사유의 경련’(2019), 종이에 수묵채색, 142×73㎝(사진=아트파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정갈한 도포자락, 그 깊은 소맷자락에 감춘 손은 볼 수가 없다. 긴 그림에서 굳이 그 지점에 시선을 고정한 건 안경 탓이다. 날아갈 듯 나풀거리는 수염, 직조한 한 올 한 올까지 선명한 갓 정도는 무색하게 만든 안경. 감히 ‘엿볼 수 없는’ 눈빛에 기가 죽었다고 할까. 그러니 ‘감춘 것’으로 다를 게 없는 애꿎은 손만 들먹일 수밖에.

어느 선비의 단단한 자태를 빼낸 작가 김호석(64)은 수묵인물화를 그리는 한국화가로 이름이 높다. 김구, 안창호, 신채호 등 근대인물을 거쳐 성철 스님,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등 현대의 유명인을 차례로 붓끝에 소환해 왔다. 그렇다고 그들의 초상에서도 눈을 그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 유독 ‘500년쯤 전 우리나라 최초의 투명한 알 안경을 쓴’ 상상 속 이 선비의 그림에서만 눈빛을 거둔 건데.



“인물화의 핵심인 눈을 지워 버린다면 그건 인물화로서 가치가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단다. “다른 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가리킨다”는 ‘눈부처’란 별칭을 가진 ‘사유의 경련’(2019)은 그렇게 나왔다. 결론은 이렇게 난 모양이다. “눈을 지우고 비우니 오히려 확장이 되더라”고. 뜻밖의 소득도 생겼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왔고 그걸 듣는 게 퍽 재미있더라”고 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아트파크에서 개인전 ‘사유의 경련’을 열고 있다. 눈을 비운 인물로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시선을 만들어낸 역설, 눈빛은 물론 말도 닿지 않는 불통의 세상에 느끼는 화가의 경련을 이렇게 옮겨냈단다. 이미 판매된 ‘사유의 경련’이 이번 개인전을 위해 나왔고, ‘구름 위’(2021), ‘송담 큰 스님’(2020),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우리’(2020) 등 신작을 걸었다. 전시는 28일까지.

김호석 ‘구름 위’(2021), 종이에 수묵채색, 142×72㎝(사진=아트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