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오르자 자사주 처분 상장사 '쑥'…"성장동력 확보"

by박정수 기자
2021.05.24 00:20:00

자사주 처분 결정 164건…전년비 73%↑
작년 코로나19로 자사주 매입 급증
"올해 사뭇 다른 증시 상황에 처분 증가"
자사주 처분 열에 일곱은 주가↑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올해는 자기주식 처분에 나서는 상장사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코로나19 확산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극대화하자 상장사들은 자기주식 매입을 통해 주가 방어에 나서는 모습이었으나, 올해는 사뭇 다른 증시 상황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코스피 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코스닥 지수가 이른바 천스닥 고지를 넘어서자 앞다퉈 자기주식을 처분하고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연초 이후 지난 21일까지 자기주식 처분 결정 공시 건수는 코스피 40건, 코스닥 124건으로 총 164건(기타 법인, 코넥스 상장사, 자회사 공시 제외)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때(95건)와 비교하면 72.6%나 늘었다. 이에 반해 자사주 매입을 결정 공시 건수는 코스피 31건, 코스닥 17건으로 총 48건이다. 전년 동기(181건)와 비교하면 73.5% 감소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은 전례 없이 증가했다”며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주가 변동성이 증가하고 정부의 한시적 자사주 취득 완화 조치가 도입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3월 코로나19 위기로 주가가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정부는 시장 안정화 조치의 일환으로 6개월간 자사주 취득 한도를 확대(올해 3월 15일까지 6개월 연장)했다. 이에 지난해 2~4월 3개월간 자사주 직접취득 공시 167건에 대한 총 취득 예정 주식 수는 1억7500만주로 이미 2019년의 공시 규모(5482만주)를 크게 넘어섰다.

조승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코스피 상장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공시 건수가 2012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자사주 매입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지난해 3월 이후 주가는 큰 폭으로 반등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의 시장 가치도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향후 기업들은 자사주의 다양한 활용 방식을 모색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들어서만 코스피 지수는 2873.47에서 3156.42로 282.95포인트(9.85%)나 뛰었다. 지난 10일에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3249.30)보다는 3% 가까이 떨어졌으나 여전히 9%대 상승 폭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하면 코스피 지수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2배씩은 오른 상태다.

최근 자사주 처분을 결정한 상장사 열 곳 가운데 일곱 곳은 올해 들어 주가가 올랐다.

지난 4월 이후 자기주식 처분 결정 공시 건수는 70건으로 기업 수는 총 65개사다. 이들 가운데 총 75.4%에 해당하는 49곳의 주가가 올해 들어서 상승했다. 단순 평균으로만 봐도 이들 주가 상승률은 51.7%에 달한다.

가장 큰 폭의 주가 상승률을 보인 곳은 NE능률(053290)이다. NE능률은 올해 들어서만 2845원에서 1만7650원까지 주가 상승률만 520.39%에 해당한다. 이에 NE능률은 지난 17일 약 120억원에 달하는 자기주식 처분 결정을 공시했다. 회사 측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취득한 자기주식의 기한 내 처분으로 신규투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193.52%로 다음으로 주가가 많이 오른 PN풍년(024940)도 마찬가지다.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자 지난달 4월 27일 43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처분을 결정했고, 이를 연구개발(R&D) 투자재원과 운용자금에 쓰겠다고 설명했다.

티케이케미칼(104480)도 마찬가지다. 올해 149.61%에 주가 상승을 보였고, 지난달 약 249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처분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대한해운 유상증자 재원을 확보하겠다고 전했다.

백산(035150) 또한 54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처분을 통해 투자재원을 마련하고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혀 주가 상승률 상위 열 곳 가운데 네 곳이 성장동력 확보에 활용한다고 밝혔다.

이렇다 보니 자사주 처분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조승빈 연구원은 “자사주를 매입 후 즉시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는 것에 대해 주주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향후 기업이 자사주를 되팔면 자사주 매입의 긍정적인 효과가 소멸하고 주가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이 주가 저평가 신호 효과를 가지듯이 반대로 자사주 처분은 주가 고평가 신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인데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자사주 처분 공시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실제 대신증권에 따르면 2012년 1월부터 2021년 2월 동안 자사주 처분을 발표한 코스피 기업의 주가 성과를 분석한 결과 공시일 이후 5거래일까지는 평균적으로 주가가 하락했다. 다만 하락률이 0.5% 미만으로 제한적인 수준이었고 하락 확률도 50% 내외로 높지 않았다. 60거래일, 250거래일 이후로는 오히려 평균적으로 주가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최근에는 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 지분 인수 등에 자사주를 이용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NAVER(035420)(이하 네이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래에셋증권과 서로 자사주를 교환하는 방식의 주식스왑으로 지분을 취득하고 전략적 제휴를 맺은 바 있다.

또 네이버는 지난 10일에는 글로벌 콘텐츠 사업 다각화와 북미사업 강화를 위해 1769억원 규모의 자사주 처분을 결정한 바 있다. 이외 그리티(204020)(에코마케팅 전략적 사업제휴), 아이에이(038880)(아이에이강소전력전자유한공사 현물출자) 등도 자사주를 이용해 사업을 강화했다.

조 연구원은 “자사주를 매수했을 때보다 시장가치가 커진 자사주로 주식스왑을 실행할 경우 자산은 늘어나고, 자기자본의 차감항목으로 들어가 있는 자사주 규모가 줄어들기 때문에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의 입장에서는 지분 교환을 하게 되면 사업에 대한 확장도 가능해지고, 우호지분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경영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