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해우소] 운전기사에 개집정리? '가족'회사 갑질 백태
by황효원 기자
2020.11.08 00:15:41
지방 사립대 전 총장 ''갑질·폭언'' 녹취록 공개
지난 8월 심근경색으로 숨진 운전기사 유족 "머슴 생활"
사용자의 가족이 ''사적인 일''까지 지시한다?
사업주 친인척도 책임과 권한을 가졌다면 엄연히 ''사용자''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지방 사립대의 전 총장 B씨와 가족들이 운전기사 A씨에게 폭언과 갑질을 했다는 폭로가 등장했다. 유족 측은 최근 사망한 A씨가 B씨 일가의 갑질과 폭언 등에 의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심근경색이 왔다고 폭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A씨의 유족이라고 밝힌 이가 작성한 ‘김** 전 **대 총장의 갑질과 폭언 스트레스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특히 청원 당일에는 총장의 이름과 대학명이 실명으로 올라왔지만 현재는 익명처리된 상태다.
청원인은 “아버지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 갑은 지역에서 이미 유명한 사람”이라며 “장례식장에 온 그는 우리에게 아버지는 ‘가족’ 같은 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개XX’라고 욕하고 운전 중에 뒤통수를 때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청원인은 “아버지는 그들이 말하는 가족이 아니라 진짜 가족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모욕도 참고 1995년부터 25년 가까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신 분”이라며 “진짜 가족을 위해 그들이 시키는 개밥 주기, 개집 정리, 구두 닦기, 거북이 집 청소 등 온갖 일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2~3년간의 휴대전화 녹음파일과 업무수첩 등을 발견했다”며 “녹음파일에는 B씨가 아버지에게 폭언한 내용과 심지어 더위를 타는 개를 위해 선풍기를 틀어주라고 지시하는 등의 갑질 정황이 담겼다”고 주장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A씨는 B씨의 업무 지시 외에도 그의 가족들 심부름까지 도맡아야 했다. B씨의 부인은 A씨에게 고추 말리기, 잔디 풀뽑기, 세탁소 다녀오기 등을 지시했고 그는 사적인 지시도 감내해야 했다. 평소 A씨는 지인들에게 B씨 일가에 항의하기는 어렵다며 고통을 호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사례처럼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부당한 행위를 당해도 회사 대표 등 사용자에게 괴롭힘을 신고하는 것은 어렵다. 사용자의 가족들이 모욕·폭언을 일삼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 ‘가족회사 갑질’은 여전히 빈번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명확한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했지만 사장의 친인척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76조의 3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관련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하고, 사용자는 관련 내용을 조사한 뒤 조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제2호에 따르면 친인척 등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사용자는 사업주 외에도 사업경영 담당자,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도 포함된다.
따라서 친인척이나 특수관계자가 사업장에 출근해 부당한 업무를 지시하는 등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한다면 사업주가 일정한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다. 사업주 친인척이 일정 책임과 권한을 가졌다면 엄연히 사용자에 해당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는 사용자의 가족이 직원들에게 모욕·폭언을 일삼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 ‘가족회사 갑질’이 빈번하다며 가해자가 사용자이거나, 사용자의 친척일 경우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회사에 신고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청에 직접 신고할 수 있는 장치를 법에 둬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사업주의 친인척도 사용자로 볼 수 있는 만큼 사업주의 친인척이 괴롭힌 경우에도 노동청에 신고해 근로감독관이 직접 조사·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갑질과 횡포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며 “지방고용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 직접 해당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