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신뢰의 위기’부터 극복해야
by권소현 기자
2019.07.31 04:12:00
[신세철 전 금융감독원 조사연구 국장·‘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사마천은 “국가의 흥망성쇠는 백성들의 신뢰들 얻는데 달려 있다”고 사기 상군열전(商君列傳)과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서 강조했다. 오늘날처럼 지식의 융·복합을 넘어 서로 다른 지식들이 연결되어야 새로운 가치창출이 가능한 ‘연결사회’에서는 상호협력을 위한 소통이 경쟁력의 근간이 된다.
다양한 기술과 기술, 의견과 의견이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하기 때문에 각 경제주체들 사이에 신뢰기반 구축은 경제 성장과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서로 속이고 속는 혼탁한 모습을 보이던 전국시대 BC359년, 진나라 진효공(진시황 5대조)의 신임을 받은 상앙은 야심찬 개혁안을 마련했다. 상앙은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어떠한 개혁도 물거품이 되기 쉽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개혁 시행에 앞서, 남문 저자거리에 3장(丈) 크기의 나무를 세워 놓고, 그 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거금 10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다. 서로 믿지 못하는 세태에서 사람들이 어이없다며 코웃음 치자, 상금을 50금으로 크게 올렸다.
밑져도 본전이라고 생각한 어떤 백성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자 바로 상금을 줬다.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한 약속은 무엇이든 꼭 지킨다는 자세를 만천하에 보여 줬다.
그 다음 새 법령을 공표하고 왕족이건 천민이건 모두 예외 없이 지키게 했다. 백성들이 믿고 따르자 진나라는 빠르게 부강해져 500년 동안 이어져 온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통일천하를 이룩한 진시황이 죽고 환관 조고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쥐면서 삽시간에 불신풍조가 온 나라에 퍼졌다.
심지어 조고는 2세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우겨 황제를 꼭두각시로 농락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가 생겨난 배경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천하를 통일한 그 거대한 제국은 삽시간에 불신사회로 변하고 바람결 등불이 됐다. 무릇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트리기는 쉽다는 교훈을 후세에 남긴 셈이다.
지난달 말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특별좌담회에서 역대 경제학회장들은 “한국경제가 활력을 찾으려면, 정부주도 성장이 아니라 시장주도 성장으로 전환해야만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면서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험과 불확실성은 G2 갈등 같은 외부요인보다 경제정책 리스크”라는 염려가 컸다. 검증되지 않은 정책실험이 사람들을 서로 믿지 못하고 다투게 하니, 외환(外患)보다도 내우(內憂)가 더 걱정이라는 뜻이다.
한국경제 미래를 주름지게 하는 것은 각 경제주체들 간의 소통을 방해하는 불신의 늪이다. 정보가 다양한 경로로 빠르게 전파되는 세상에서 나만의 주장을 펴다보면 조직과 사회는 부지불식간에 서로 믿지 못하게 된다.
특히 경제문제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 나오기 마련”인데, 현실을 무시한 이상을 실험하려 들다가는 좌우전후가 뒤틀리고 어긋날 수 있다.
원칙을 무시하는 묘수가 반복되다보면 도리 없이 불신이 잉태될 수밖에 없다. 선한 의지라 하더라도 과신에 찬 일방통행은 신뢰를 깨트리고 나아가 사람들을 무엇인가 불안하게 만들기 쉽다. 대내외 위험과 불확실성이 닥치더라도 신뢰가 두터워 서로 힘을 합하다보면 충격흡수장치(air bag)가 작동해 큰 희생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신뢰는 작은 약속이라도 실천하는 데서 이룩되는 것이어서 그럴듯한 헛말보다는 마주친 현실을 인정하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하찮은 통계를 침소봉대하거나 엉뚱한 빛깔로 덧칠하는 사소한 왜곡으로 비롯되는 거대한 ‘불신 장벽’을 경계하여야 한다.
편 가르기에 연연하지 하지 말고 서로 협조를 구해야 한다. 논리적 타당성이나 통계적 근거를 가지고 이해를 구해야만, 더디더라도 신뢰기반이 구축되고 나아가 경제회복 지름길로 다가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