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동욱 기자
2016.04.10 07:00:00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정부가 카드 수수료율 인하 여파로 벼랑에 몰린 카드사의 비용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추진한 5만원 이하 무서명 카드거래 활성화 조치가 업계 간 첨예한 이해관계에 맞물려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관련 규정을 고쳐 카드사가 가맹점에 통지만 하면 무서명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지만 현재 카드사들은 새로 바뀐 제도를 활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형 밴(VAN·결제대행업체)사는 물론 가맹점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설치해주는 전국 수만여 곳에 이르는 밴대리점들이 무서명 거래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위 주재로 카드업계와 밴 업계가 만나 무서명 카드거래 활성화 방안 도입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눴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갈등의 핵심은 무서명 카드결제로 발생하는 밴대리점의 줄어든 수익인 건당 35원을 카드사와 밴사 중 누가 메워줄 것이냐다. 카드결제 1건당 카드사는 밴사에 100~110원의 밴수수료를 지급하고 이중 35원이 밴대리점의 몫이다. 소비자가 카드 결제 후 전표나 사인패드에 본인 서명을 하면 밴대리점은 전표와 이미지를 일일이 모아 밴사에 보내는데 이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문제는 무서명 거래가 확산하면 거둬들일 전표가 사라지는 밴대리점으로선 수익의 대부분을 잃을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평균 카드결제 금액은 4만6533원으로 5만원을 밑돈다. 1년 전보다 4.4% 줄어든 수치인데 앞으로 카드 결제금액 소액화 현상은 더 두드러질 게 뻔해 무서명 거래가 확산할수록 밴대리점의 수익성은 악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카드업계는 밴사가 밴대리점의 수익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카드업계 임원은 “밴대리점에 하청을 준 밴사가 해결해야지 카드사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며 “무엇보다 전표수거 일을 하지 않았는데 수익이 줄었다고 카드사가 보전해주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밴사들은 무서명 거래 때 전표수거 과정이 사라진다고 해서 수수료 35원을 다 깎는 건 무리라는 태도다. 밴업계 임원은 “전표수거 비용 35원엔 밴대리점이 단말기를 설치해주고 AS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며 “이런 식으로 수수료가 깎이면 밴사로선 영세가맹점에 단말기 비용을 포함해 모든 비용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재자 역할을 맡은 금융위는 최근 가맹점에 대한 리베이트 금지로 밴사의 수수료 수익(60~75원)이 온전히 남는 만큼 이 가운데 20원을 밴대리점에 보전하라는 중재안을 내놨지만 밴사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사안이 이익의 배분 문제와 관련돼 있다 보니 서로 타협점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현재로선 언제쯤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지 예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