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 “기술 포기하지 않았더니 기회 찾아오더라”

by김형욱 기자
2013.09.25 06:00:00

창업 37년만에 연매출 2000억 눈앞 강소 車부품 ‘유니크’
‘시계부터 밸브까지..’ 100여개 부품 만드는 마이더스의 손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세계 최고 솔레노이드 밸브 제조 기업은 어디입니까.”

세계 1~2위 자동차 부품사 독일 보쉬와 일본 덴소에 각각 물었다. 솔레노이드 밸브는 자동차 자동변속기의 핵심 부품이다. 답은 달랐다. 보쉬는 “우리가 1위이고 덴소가 2위, 3위는 유니크”라고 말했다. 반면 덴소는 “우리가 1위고, 보쉬, 유니크 순”이라고 답했다.

연매출 30조 원을 훌쩍 넘는 이들 거대 기업은 서로 자기가 1등이라고 했지만 3위에 대한 답은 같았다. 지난해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국내 자동차부품사 유니크(011320)(UNICK)였다. 안정구 유니크 대표는 “결국 유니크는 명실공히 세계 3위”라며 웃음 지었다.

자동변속기용 솔레노이드 밸브 세계 3위 생산기업인 유니크의 안정구 대표. 김형욱 기자
유니크가 차량 자동변속기용 솔레노이드 밸브 세계 3위 기업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적잖은 고비가 있었다. 가장 큰 위기는 5년 전 찾아왔다. 현대자동차 6단용 제품 납품 입찰에서 떨어진 것이다. 6단 자동변속기는 당시 아반떼부터 그랜저에 이르는 주요 차종에 모두 장착되는 차세대 주력 부품이었다.

유니크는 2005년부터 자체 개발 4~5단 변속기용 제품을 납품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6단용 제품 입찰 때는 외국계 A 경쟁사에 밀렸다.

하지만 제품 개발은 계속했다. 손해를 감수했다. 안정구 대표는 “연구 인원을 줄일 수 없었다. 6단용 제품을 개발해 놓지 않으면 이후 7~8단용 제품 개발로도 연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얼마 뒤 갑자기 현대차 구매담당 임직원이 들이닥쳤다. 납품키로 한 외국계 A사가 돌연 개발 일정을 맞추지 못한다고 통보한 것이다. 부품 하나 때문에 2500억 원짜리 프로젝트가 통째로 날아갈 위기였다. 다행히 유니크는 이미 6단용 제품의 자체 개발을 거의 마쳐 놓은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양산 모델을 만드는 데까진 1년이 채 안 걸렸다.

유니크의 6단 자동변속기용 솔레노이드 밸브. 납품 입찰에서 한차례 떨어졌지만 결국 유니크의 주력 제품이 됐다. 유니크 제공
유니크는 현재 매년 306만대 분의 자동변속기용 밸브를 생산한다. 국내 생산 차량의 약 76%다. 이 중 90%에 가까운 270만대가 한번 입찰에 떨어진 6단용 제품이다.

유니크는 2010년엔 차세대 8단용 제품도 개발해 납품했다. 일본 덴소와 독일 ZF에 이어 세계 3번째 독자 개발이었다. 유니크는 현재 10단 이상의 변속기용 제품 개발도 거의 마치고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회사 규모도 급성장했다. 700억 원 전후이던 연 매출은 지난해 연결재무제표기준 1977억 원까지 늘었으며. 올 상반기 연결재무기준 매출액은 1028억 원이다. 이 추세라면 올해 매출 2000억 원은 무난할 전망이다.

안 대표는 한번 떨어졌던 6단용 제품을 다시 납품하게 되면서 받았던 당시 ‘업체변경 통보서’를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손 놔 버리면 끝”이라고 말했다.

유니크는 사실 자동차 부품사로 출발하지 않았다. 1971년 적고란 시계 회사로 출범했다. 적고는 ‘제코(JECO)’란 자체 시계 브랜드의 한국명이다. 당시엔 법인명을 영문으로 할 수 없었다.

제코는 꽤 인기를 끌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의 창업주 안영구 회장은 손재주가 있었다. AAA 건전지가 들어가는 소형 시계 장치를 최초로 국산화했다. 당시엔 삼성전자도 포기한 신기술이었다.

이후 자동차 회사들이 차량용 시계를 만들어 달라며 찾아왔다. 한창 국산차 개발 붐이 일었던 1970년대였다.



유니크 김해 공장 내부를 소개하고 있는 안정구 사장. 유니크는 경남 김해에 3개 공장과 연구소, 충남 아산과 중국 칭다오에 1개 공장을 갖추고 있다. 김형욱 기자
기술력에서 인정을 받으니 기회는 계속 찾아왔다. 1980년대 초 현대차가 캐나다에 수출하던 ‘스텔라’ 차량의 시거 라이터에 문제가 생기면서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 현대차 구매본부장은 기술력을 인정받은 유니크에 시거 라이터 개발을 부탁했다. 경험은 전무했으나 6개월 만에 개발해 냈다. 이회사는 현대차가 미국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면서 동반성장했다.유니크는 시거 라이터 내수시장의 59%를 점유하고 있다.

시거 라이터는 시작에 불과했다. 당시 대부분 자동차 부품은 일본 미쓰비시에서 수입해 오던 때였다. 현대차 구매담당 임원은 아예 42개 부품을 선정해 유니크에 개발을 의뢰했다.

유니크는 1987년 자체 연구소를 세우고 10여개 기관·기업과 공동 개발 프로젝트·기술제휴를 맺는 등 부품 국산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유니크는 결국 이 중 41개를 국산화했다.

유니크 직원들은 농담처럼 ‘슈퍼마켓’에서 일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제품이 다양하다. 전자·계기장치부터 증발·배출가스 저감시스템, 엔진 제어 부품, 센서류까지 20여개 제품군 100여 종을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사가 선점하고 있던 시장에 낮은 가격에 치고 들어간 적이 없다. 모두 필요성 때문에 자체 개발한 덕분이다. 유니크가 지금까지 출원·등록한 특허와 실용신안, 의장, 상표는 366개에 달한다.

사명 ‘유니크(UNICK)’도 이런 회사의 특성을 반영해 2000년 새로 정했다. 독창적이란 의미의 ‘유니크(Unique)’에서 따 왔다. 여기에 ‘유일’을 뜻하는 접두사 ‘UNI’와 친환경(Clean)을 뜻하는 ‘C’, 국산(Korea)를 뜻하는 또 다른 ‘K’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유니크는 현재 차세대 먹거리 개발에 고삐를 죄고 있다. 연구소에선 10단 이상 자동변속기용 솔레노이드와 함께 수소연료전지차 관련 부품, 전자파 규제 대응 부품 등 선행기술 부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해외 납품 비중도 꾸준하게 늘리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크라이슬러에 50억 원어치 시계 납품 계약을 맺었다. 변속기 회사 현대파워텍을 통해 200억 원 규모의 6단 자동변속기용 솔레노이드 밸브도 납품하고 있다.

유니크는 가족 친화적 기업을 지향한다. 창업주 안영구 회장(66)과 15살 터울 동생인 안정구 대표(51) 형제가 각자 대표를 맡아 제각기 역할을 한다. 창업주 회장은 엔지니어, 동생 사장은 일본·미국 학교를 졸업한 ‘경제통’이다.

안영구 회장의 아들 안재범 이사(43)도 유니크의 미래가 걸린 해외 영업 전선에서 뛰고 있다.

오너 기업이라는 의미에서만 가족 친화적 기업은 아니다. 524명 직원 전체를 가족처럼 여긴다. 다른 회사와 달리 사내 커플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실제로 이회사엔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들이 함께 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직률도 낮다. 2002년 설립한 중국 칭다오 공장도 설립 당시 파견된 직원 4명은 지금도 그대로 일한다. 갈 땐 사원급이었지만 지금은 임원이다.

유니크는 대형 자동차그룹에 속해 있지 않고 재벌가 친족 관계도 아니다. 오롯이 자체 기술력으로 성장해 왔다. 그럼에도 학연·지연·혈연도 꼭 지양해야 할 폐단만은 아니라는 게 안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물론 실력 없이 연줄만 의존하면 안되지만 더 오래 봐 온 사람이나 기업의 장단점을 더 잘 아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안정구 대표가 김해 공장 내 자동변속기용 솔레노이드 밸브 생산 라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