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권하는 사회

by남궁 덕 기자
2013.06.28 06:00:00

남궁 덕 칼럼(편집보도국 총괄부국장)

<음모론 권하는 사회>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서 양적완화를 점차 줄여나가겠다고 했는데 주식시장은 왜 패닉상태에 빠졌었나요.“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합니다. 좋던 싫던 길 들여진 시스템을 즐기다가 이게 바뀌면 헷갈려 하죠.” “미국이 실컷 돈 찍어내다가 제 몸 추스릴만하니깐 나 몰라라하고 회수에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소형선박’은 어떻게 되던지 상관하지 않고….”

‘백설’ ‘다시다’ ‘tvN’ ‘엠넷’ 등으로 유명한 CJ그룹이 이른바 ‘메이저 언론’으로부터 치도곤을 받고있다. 그룹 총수인 이재현 회장은 횡령과 배임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곧 영어(囹圄)의 몸이 될 판이다. “메이저 언론의 ‘CJ때리기’와 이 회장 검찰 조사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정권 초기엔 꼭 대기업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가는 데 정치자금과 연결고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요즘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면 자주 나누는 대화다. 쉽게 정답을 찾기 어려운 주제를 ‘화제의 도마’위에 올려놓는다. 재미있는 건 이런 주제의 배경에 음모론이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음모론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재미있다. 음모를 꾸미기 위해 술수가 난무하고, 누군가 희생자가 나오는 서사구조이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누군가 나쁜 짓을 했을 것이란 가설에서 출발한다.



지난 26일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중 하나인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그날 정부는 이른바 ‘부자증세’를 골자로 한 비과세·감면제도 정비 방안을 내놨다.부자 주머니를 털어 선거 표심을 좌우하는 중 장년층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는 음모론이다. 물론 이번 조치는 공약 이행을 위한 세수 확보 차원에서 취해졌다. 그러나 ‘100세 장수사회’의 안전망을 위해서 필요한 작은 걸음을 걸었고, 재정 상황을 봐서 오히려 4대 중증질환에 대해 건보 100%를 보장하겠다는 대선공약에서 후퇴한 점을 ‘이성적’이라고 칭찬해 줘야 하지 않을까. 비과세 제도에 대해서도 중산층까지 세 부담이 늘 수 있다는 점에서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은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국가정보원이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을 두고도 여야가 팽행선을 달리고 있다. 여야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기를 문란했다.”(새누리당)“국정원이 법을 어겼다.”(민주당)며 서로 핏대를 내고 있다. 여러 자리에서 서해 NLL(북방한계선)논란에 대해 귀를 열고 들어보면 정치적 성향에 따라 보는 시각이 전혀 딴판일 걸 알수있다. 한편에선 잔뜩 화가 나 있고, 다른 한편에선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우리 사회에 억울한 사람들이 널려 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을(乙)이다. 음모론이 잉태시킨 선악 이분법이 억울한 을들을 양산하고 있는 게 아닌 지 점검해 볼 일이다. 음모론이 무서운 건 둥글 둥글한 세상의 한쪽만을 본다는 점이다. 종국엔 보고 싶은 것만 보게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안고 가겠다는 ‘덧셈의 법칙’이 깨지고, 나만 살고 보자는 ‘뺄셈의 법칙’이 작동하게 된다.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에서 ‘탈세계화 국가자본주의 시대’로 걸음을 옮겨가고 있다. 불퇴전의 도전정신과 빠른 의사결정으로 세계 경제 ‘톱 10’에 진입한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음모론에 탐닉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우울하다.휴식 없는 사회, 원로와 교훈을 추앙하는 분위기가 얕아진 게 배경이 아닐까 싶다. 휴가철이다. 대한민국 상위 1%내 오피니언 리더 여러분, 제발 음모론의 노예가 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