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업의 '어닝 서프라이즈'…"우리는 두번 놀랐다"

by박종오 기자
2013.05.13 07:00:00

해외서 통하는 기술력..''실적쇼크''속 예상밖 이익까지
중동·석유화학 플랜트 중심 선별수주 영향
올해 목표 ''원가율↓·수주액↑''...업계관심 주목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우리는 대림의 기술에 놀랐다.”

대림산업(000210)의 해외 건설현장 직원들이 발주처 관계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올 2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단지에서의 일이다. 석유화학 공장의 콘크리트 균열을 방지하기 위한 연속 타설 작업이 원인이었다. 19시간에 걸쳐 무려 5000㎥(25층 아파트 1개동 분량)의 콘크리트를 쉬지 않고 쏟아 부었다. 발주처조차도 만류했던 이 진기한 작업은 사우디 현지신문인 ‘ARAB NEWS‘에 그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는 31년 전에도 있었다. 1982년 싱가포르 남단 부쿰 섬(島)의 정유공장에서였다. 현지회사가 공사를 수주해 90% 가까이 공정을 마쳤지만 콘크리트 강도 등 품질 문제로 발주처가 전면 철거 및 재시공을 결정했다. 개·보수 시공사로 선정된 건 대림산업이었다. 24시간 연속 콘크리트 타설을 선보이며 공사기간을 1개월 단축한 끝에 대림산업은 추가 수주를 올리는 성과를 낳았다.

▲1982년 싱가포르에서 수주한 ‘플라우 부쿰 정유공장’ 전경
◇대림산업, ‘건설업 실적쇼크’ 우려속 예상 밖 성과

“우리는 대림의 실적에 놀랐다”

지난 4월 건설·증권업계가 예상치 못한 보고서를 받았다. 타 건설사들이 수천억원 대 적자를 발표하며 건설업계 전반의 ‘실적쇼크’ 우려가 불거진 시점이었다. 대림산업의 올 1분기 실적은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로 평가받았다. 대림의 1분기 영업이익은 123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9% 늘었다. 매출은 작년 1분기보다 22.7% 늘어난 2조 5160억원, 당기순이익은 5.9% 줄어든 1213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증권가는 이 같은 깜짝 실적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실적쇼크 우려의 핵심에는 해외시장에서의 저가 수주와 부실이 있었다. 특히 공사비 자체가 빡빡한 사업구조 속에서 해외공사 원가율이 예상보다 크게 상승해 손실을 입은 기업이 적잖았다. 예정 원가율을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인상, 공정 지연 등으로 예상보다 원가가 초과되면서 적자가 쌓였다는 것이다.

반면 대림산업은 저가수주 사업장이 다른 기업에 비해 적고 예정원가율 대로 현장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으로 평가됐다. 한종효 신영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인 원가율이 조금씩 올라 저마진 현장은 있었지만 손실이 난 곳은 없었다”면서 “강점 있는 지역만 공략하는 보수적인 사업 방식을 고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예상을 깬 실적으로 업계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대림산업 측은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이번 실적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사업을 진행해온 결과일 뿐 특별히 주목받을 만한 건 아니라는 게 사내 분위기”라고 말했다.



◇과거의 ‘쓴 맛 경험’, 現 선별적수주에 한몫

해외시장이 국내 건설사에게 새롭게 부각된 건 2008년부터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건설시장이 위축됐지만 중동지역은 유가 상승 등으로 건설경기 활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국내업체의 잇따른 해외진출과 격화된 경쟁으로 저가 수주가 잦아진 건 2010년을 전후한 때부터로 전해진다. 당시 수주했던 공사들이 2~3년 간의 공정을 거쳐 준공시점이 가까워지며 적자가 쌓인 대형 폭탄으로 돌아오는 실정이다.

이 시기 대림산업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지켰던 원칙은 내실 수주다. 외형 확장보다 강점 있는 지역과 사업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대림산업이 지난 2008년부터 수주한 해외공사 내역을 보면 지역과 사업 편중도가 높다. 덩치를 불리기보다는 텃밭에서 주특기를 발휘하는 데 주력했다는 의미이다.

그 중심에 놓인 건 중동과 동남아지역의 플랜트 사업이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대림산업이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수주한 공사의 과반 이상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필리핀, 베트남 등 특정국가에 집중돼 있다. 특히 사우디는 중동 내 최대시장이자 대림산업의 대표적인 주력 시장 역할을 해왔다. 대림산업은 지난 1973년 사우디에 현지 지점을 설치해 첫 해외 플랜트 수주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로 사우디 누적 수주액 150억 달러를 달성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대림산업은 가격을 치고 들어가는 공격적인 수주 대신 기존에 강점이 있는 사우디 등에서 정유·석유화학·화공 플랜트 사업을 선별 공략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보수적인 대림산업의 경영방침은 오랜 기간 누적된 해외건설 경험에서 비롯된 결과다. 과거 양적 성장에 치중했다가 적자의 역풍을 맞았던 적이 대림에게도 없지않다. 1995년 말레이시아에서 수주한 ‘페트로나스 가스 처리공장’ 공사가 그랬다. 옛 대림엔지니어링 등과 6억 달러에 공동수주했지만 큰 손실만 남겼다. 저가 투찰인 데다 기후, 지형 등으로 인해 공사 변경, 지연이 잦았고 인력 농성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의욕만 앞세운 성장계획은 대림에게 씁쓸한 뒷맛과 함께 치밀한 계획과 검토의 필요성을 가로새겼다.

◇올해 목표 ‘원가율↓·해외수주 8.7조’..내실 성장에 초점

지난해 대림산업은 창사 이래 최초로 연 매출 10조원(IFRS 연결 기준)을 달성했다. 과거의 교훈 아래 축적된 기술력을 경영 실적으로 순조롭게 이끌어낸 결과다. 해외건설이 위기를 맞았다지만 대림산업의 올해 목표는 한층 높아졌다. 90% 대로 치솟은 원가율을 낮추는 동시에 해외시장에서 신규수주 8조 7000억원을 올린다는 방침이다. 금액만으로 작년 해외수주액보다 2배 이상 많은 규모다. 이를 위해 대림산업은 지난해 원가혁신팀과 올 초 해외영업실을 신설했다. 위기 국면을 넘는 대림산업의 발걸음에 건설업계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2011년 필리핀에서 수주한 20억 달러 규모 페트론 정유공장 전경. 올 1분기 매출신장은 이 같은 대형현장의 매출이 순조롭게 반영된 때문이라는 게 대림의 설명이다. (사진제공=대림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