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증시 다시 읽기)상하이 펀드매니저의 하루

by상하이지사 기자
2010.08.18 12:43:00

[이데일리 상하이지사] 펀드매니저는 중국 언론으로부터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중 하나다. 중국 펀드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이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올해 8월초 기준, 중국 내 자산운용사는 60개, 펀드 순자산규모는 2조1280억위안(원화 약 383조원)에 달한다. 고학력, 고소득의 상징이자 시장 흐름의 핵심에 서 있는 한 펀드매니저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편집자주)



▲ 상하이 푸둥 루쟈쭈이 금융가
월요일 아침 7시40분, 상하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2호선 루쟈쭈이(陸家嘴) 지하철역. 아직은 본격적인 출근전쟁 전이다. 붐비지 않는 지하철역에서 루(陸) 펀드매니저가 성큼성큼 걸어나온다. 10여분후, 그는 자산운용사가 위치한 빌딩에 도착해 문을 들어선다. 새로 온 듯한 경비원은 그를 본체만체 한다. 이른 시간 나온 루를 빌딩 관리사무소 직원쯤으로 아는 듯하다.

루는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박사학위 소지자. 중국 펀드매니저는 14.3%가 박사, 79.6%는 석사인 고학력집단이다. 루는 전형적인 쓰촨(四川)사람으로 평범한 헤어스타일에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한다. 대개 넥타이는 매지 않고 산지 1년 정도된 검정 구두를 신고 있다. 우리 돈으로 억대를 넘어서는 연봉에 걸맞지 않게 소박한 복장이다.

매일 빌딩의 경비원, 청소부와 같은 시간에 출근하지만 루는 수만명의 투자자를 대신해 10억위안이 넘는 자금을 굴리고 있다. 오전 8시 무렵, 즐겨 마시는 티에관인(鐵觀音) 차를 타며 컴퓨터를 켠다. 주요 뉴스와 증권사 리서치 자료를 읽으며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전날 탐방을 나갔던 내수업종 연구원이 출근하면 간단하게 최근 바이주(白酒) 생산기업들의 현황을 묻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전 8시40분 모닝 미팅이 시작된다. 루를 비롯한 모든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그리고 트레이더들이 모여 이날 경제뉴스와 업종 관련 주요현황들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애널리스트가 리서치중인 종목에 대한 투자정보를 업데이트를 하는 것도 이 자리에서다.

오전 장이 시작되기 전, 루는 자리로 돌아와 내부 시스템을 통해 하루 매매전략을 입력한다. 최근 그는 주식 보유비중을 3~4%포인트 축소하며 중소형주 몇 종목도 함께 처분했다. 대신 경기민감주에 대한 비중을 높였다.

이날의 루의 중점은 최근 물량확보중인 중소형주다. 성장성이 좋아보여 주력종목으로 편입중이다. 하지만 유통물량이 너무 적어 하루에 200만~300만위안씩 꾸준히 매수중이다.

9시30분 드디어 장이 열렸다. 금융정보프로그램인 `Wind`를 켜 지수와 주요 보유주식 20개사의 주가를 살펴 본다.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노트를 펼치고 리서치 자료들에 집중한다.

루가 일하는 운용사는 가치투자를 내세운다. CIO(최고투자책임자)도 `시장과 너무 가까이하지 말라, 날마다 시세만 보지 말라`고 강조한다. 애널리스트 출신인 루 역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종목 연구에 쏟고자 한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호흡을 길게 갖기가 쉽지 않다. 날마다 펀드 수익률 순위가 발표되고 이 순위로 펀드매니저의 몸값이 결정되는 탓이다. 눈과 손은 자료 속을 헤집고 있지만 자꾸만 마음이 시세판에 가는 것을 막긴 어렵다. 사실 적지 않은 애널리스트 출신 펀드매니저들이 개장시간 동안 한시도 시세판에서 눈을 못뗀다.



점심 휴장시간인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 빌딩엔 구내식당이 있지만 루는 이 곳을 가본 적도 없다. 점심도 업무의 연장이다. 펀드매니저야 수익률로 능력을 입증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펀드가 어느 정도 규모가 되지 않으면 회사가 수익을 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영업 역시 루의 주요 업무가 된지 오래다.

▲ 중국 펀드매니저의 대표 격인 왕야웨이 차이나애셋매니지먼트 투자위원회 의장.
점심은 주로 영업부문 직원과 법인 고객들을 만나는 자리로 마련된다. 상대는 은행이나 보험사의 자산관리부문 컨설턴트가 많다. 이들은 자신들의 VIP고객에게 펀드를 추천하기 전에 펀드매니저의 생각을 듣고 싶어한다.

오후 3시, 장이 끝난다. 이후 역시 고객과의 미팅이 주요 업무다. 만약 증시 추세에 큰 변화가 생기기라도 하면 한 주에 대 여섯번씩 고객을 만나야 할 때도 있다. 한번 얘기를 하다보면 1~2시간은 예사. 이럴 때면 루는 자신이 펀드매니저인지 펀드 영업담당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펀드매니저의 `제1 임무`는 종목 연구다. 고객미팅이 없으면 루는 장 마감 뒤 종목 연구에 열중한다. 자신이 발굴한 성장주들은 적어도 2~3주에 한번씩 직접 회사탐방을 가기도 한다. 민감한 시기엔 하루가 멀다하고 회사 경영진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현황을 파악한다.



내부 전략회의를 마치고 쉴틈없이 전화를 돌리다보면 어느덧 퇴근시간인 5시30분. 루는 읽다남은 보고서를 넣고 노트북을 챙겨 회사를 나선다. 투자전략회의가 있거나 증시에 큰 변화가 있을 때는 저녁 9시, 10시까지 회의를 하며 동료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는 제 시간에 퇴근한다.

물론 모든 자산운용사가 이런 건 아니다. 어떤 자산운용사는 최고투자책임자가 저녁 9시까지 퇴근을 하지 않아 다른 직원들까지 고스란히 야근을 해야 한다.

루의 일과중 거의 유일한 휴식시간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뿐이다. 젓가락을 놓은 뒤 저녁 8시께부터는 다시 펀드매니저다. 그날 못 다 읽은 리서치 자료를 보거나 인터넷에 나온 상장기업 관련 뉴스들을 챙기는 게 일이다. 서재에 쳐박혀 있다보면 이미 아내와 딸은 곤하게 잠들어 있다. 어느듯 자정, 루도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글쓴이 김재현 : 상하이 교통대학 기업금융 박사과정, 前 우상투자자문 연구원
email: zorba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