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불가리·에트로의 불황극복 전략
by조선일보 기자
2009.12.26 09:47:57
"경쟁하지 않는 게 우리의 경쟁력" 불황에 명품업체 직격탄
올 마이너스 8% 성장 예상 佛업체의 M&A공세까지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품질과 창조성에 집중
이탈리아 명품 자존심 지켜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조선일보 제공] 그는 매우 수수한 차림이었다. 그 흔한 목걸이도 하지 않았다.
68세 나이의 다른 남성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그래선 안 됐다. 그가 바로 니콜라 불가리니까. 세계 3대 보석 브랜드인 불가리(BVLGARI) 창업자의 손자이자 현재 부회장이 아닌가 (그의 형인 파올로 불가리가 회장, 누나의 아들인 프란체스코 트라파니가 CEO이다). 불가리의 커프스버튼과 넥타이, 시계를 착용하곤 있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이에 대한 니콜라 불가리의 '해명'은 이탈리아식 유머의 진수를 보여줬다.
| ▲ 1 니콜라 불가리 부회장. 2 야코보 에트로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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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귀라도 뚫게 할 셈인가? 아름답게 꾸미는 건 여자들에게 양보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여성들이 아름다워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남성들은 희열에 빠진다. 기원전 300년 전부터 이집트인들은 금으로 된 보석을 만들었다. 남자들에게 보석이란? 여자들에게 사다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리처드 버튼이 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맥주를 가르쳤고, 그녀는 내게 불가리를 가르쳤다.' 나도 아내에게 보석 선물을 꾸준히 한다."
그는 잠깐 말을 멈추더니 인터뷰가 진행된 뉴욕 5번가의 불가리 플래그십 스토어의 총괄 매니저를 시켜 두 점의 목걸이를 가져오게 했다. 그 중 하나는 빨주노초의 형형색색 사파이어가 마치 알사탕처럼 엮여 있었다. 그는 "구차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느껴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가격표부터 먼저 확인했다. 40만달러(약 4억7000만원). 아파트 한 채 값이다. 흠이 날까 봐 손이 긴장됐다. 표면이 종이처럼 매끄러웠고, 빛을 받으니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알사탕 같은 사파이어 각각이 비슷한 명도와 채도를 갖고 있다. 몇달씩 스리랑카와 미얀마 등지를 돌며 최상의 원석을 찾는다고 한다.
| ▲ 대담한 유색(有色) 보석을 쓰기로 유명한 불가리는 다이아몬드 세공에도 일가견이 있다. 원과 네모 틀 안에 다이아를 알알이 박아 놓은 초커(목에 딱 붙는 목걸이). 시가 79만달러 상당의 제품이다. 불가리 제공 / 일러스트=김의균 기자eg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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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가 미국적 실용성을, 카르티에가 프랑스의 여성스러운 섬세함을 지녔다면, 불가리는 그리스 핏줄인 창업자 소티리오 불가리의 영향과 1000년 이상 이어져 온 로마 특유의 검투사적 기질이 합쳐져 과감하고 남성적인 제품이 많다.
그렇지만 니콜라 불가리의 밝은 표정과는 달리 세계 명품시장은 올해 어느 때보다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불가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트라파니 사장은 올해 자기 연봉의 75%를 스스로 깎았다. 베인&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명품시장은 지난해 2% 줄어든 데 이어 올해 다시 8%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들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구찌나 펜디 같은 이탈리아 토종 브랜드가 몇년 전 프랑스 거대 기업에 인수된데 이어 올해는 베르사체가 한때 부도 위기를 맞았다. 프라다 역시 휘청거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있는 자'들의 손을 들어줬고, 거대 기업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와 PPR(피노프렝탕르두트) 등이 소규모 명품 기업들을 속속 매입하면서 프랑스로의 쏠림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올챙이 무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명품 브랜드 에트로(Etro)의 야코보 에트로(47) 사장은 이탈리아 브랜드들의 퇴조에 대해 "이 얘기만 나오면 슬프다"고 말했다. 최근 방한한 그는 "정말 슬픈 것은 프랑스 기업들이 이탈리아 명품의 브랜드와 함께 역사까지 사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창업자이자 회장인 짐모 에트로의 장남이자 사장이다.
| ▲ 전통적인 페이즐리 무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에트로 남성복. 2010 봄·여름 컬렉션 중. / 에트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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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남은 이탈리아 명품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Weekly BIZ는 불가리와 에트로의 최고 경영진을 각각 만나 생각을 들어봤다.
가족 경영 체제인 두 럭셔리 브랜드의 생존 전략은 일맥상통했다. 바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품질과 창조성이라는 핵심역량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요컨대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basics)'는 메시지였다.
102세까지 살았다는, 불가리 형제의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항상 겸손하되,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라. 그러려면 스스로에게 당당해야 하고, 어디 내놓아도 언제나 떳떳한 제품을 만들라"는 것이다.
불가리의 트라파니 CEO는 "불가리의 제1 원칙은 '절대로 경쟁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회사는 그저 우리와 다른 회사일 뿐"이라며 "중요한 건 그들이 뭔가를 잘했다고 해서 따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코보 에트로 사장은 "에트로의 철학은 30년 뒤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는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는 일관된 기조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400캐럿의 천연 사파이어와 70캐럿의 다이아몬드, 18K 골드로 장식된 불가리의 멀티 컬러 목걸이입니다. 15만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6만달러, 저 중앙에 계신 분이 30만달러를 외치는군요. 더 없습니까? 보세요, 이건 불가리라고요! 마지막입니다. 32만, 더 없습니까?"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록펠러 플라자에 위치한 크리스티 경매장. 티파니, 카르티에와 함께 세계 3대 주얼리 메이커로 꼽히는 불가리(BVLGARI)가 창립 125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경매 행사다.
프란체스코 트라파니 불가리 사장은 이번 자선 경매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관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길고 돋보이는 역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최고의 장인(匠人) 정신이 곁들여진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소비자들은 브랜드들이 좀 더 나아가 박애주의를 펼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 소비자 스스로 자선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환경 이슈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있는 회사들을 더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럭셔리 업계엔 '럭셔리 셰임(luxury shame·명품 소비에 대한 부끄러움을 의미)'이란 말이 유행했다. 주변의 이웃들이 다 어려운데 나 혼자 드러내놓고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자선(慈善)은 이에 대한 럭셔리업계의 대응책이란 의미도 있다.
| ▲ 세계 3대 주얼리 브랜드인 불가리는 시계, 향수를 비롯해 호텔업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사진은 2006년 발리 불가리 호텔&리조트 오픈식에 모인 불가리가(家) 사람들. 왼쪽부터 니콜라 불가리 부회장, 프란체스코 트라파니 사장, 파올로 불가리 회장. / 불가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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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셰임' 현상에 대한 명품업계의 또 다른 대응책은 화려함을 강조하기보다는, 품질과 전통을 강조함으로써 제품을 '가보(家寶)'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불가리의 두 남자, 니콜라 불가리 부회장과 프란체스코 트라파니 사장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는 명품 중에서도 특히 보석과 시계에 타격이 컸다. 베인&컴퍼니에 따르면 올해 명품 보석시장은 작년보다 12%, 명품 시계는 20%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트라파니 사장은 "과거의 경험에서 보건대 우리에게 불황은 늘 기회였다"면서 "불황일수록 우리는 새로운 투자를 시작하는 '거꾸로 전략'을 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 불경기 때 향수사업에 뛰어들었고,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 때 스카프와 넥타이, 안경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또 호텔사업에 비전이 없다고 남들이 다 말릴 때 호텔업을 시작했고, 세계적인 불황인 지금 대대적인 자선사업에 뛰어들었다. 불가리는 매출의 11%를 마케팅에 투자하는데, 이번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비용은 줄이지 않았다.
| ▲ 불가리의 여인들. 1 잉그리드 버그먼(귀걸이·목걸이). 2 키이라 나이틀리(목걸이). 3 제시카 알바(목걸이). 4 전도연(귀걸이·팔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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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업이 위기 상황일수록 오히려 마케팅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라는 건 침체와 회복을 반복한다. 투자를 저버렸다가 나중에 경제가 되살아나 모든 것을 새롭게 재건해야 한다면 그 비용은 더 어마어마하다. 반면 이미 브랜드 이미지를 고양시키고 보존해왔던 그룹은 자신의 브랜드가 더 눈에 띌 수 있도록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3분기에 우리가 매출 호조를 보인 것도 이러한 마케팅력에서 도출됐다고 할 수 있다."
1900년대 초 보석 세공의 주도권은 프랑스가 갖고 있었다. 카르티에, 쇼메, 반클리프&아펠, 부쉐론 등 프랑스의 주얼리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프랑스식의 우아하고 현란한 세공법은 주얼리의 '정석(定石)'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은(銀) 세공업자로 출발했던 소티리오는 프랑스식에서 벗어나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를 바탕으로 르네상스풍의 대담하고 독창적인 이탈리아의 예술가 정신을 제품에 담았다.
불가리 가문의 철자는 'BULGARI'인데도, 1934년에 브랜드 이름을 'BVLGARI'라고 바꾼 이유도 프랑스와는 다른 독자 노선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니콜라 불가리 부회장은 "'V'는 'U'의 고대 로마자 표기법"이라며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를 나타나기 위해 그런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불가리의 보석 디자인은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이다. 동전 같은 일상의 물건에서 모티브를 발견하기도 하고, 예술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따오기도 한다. 최근 나온 세르펜티 팔찌와 시계는 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로마를 방문할 때 난 언제나 불가리 매장에 들른다. 그곳에는 주목할만한 현대 미술의 창조물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불가리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앤티크 동전을 주얼리로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니콜라 불가리 부회장은 "은은 어떤 재료를 섞느냐에 따라, 또 어떤 방식으로 단련하느냐에 따라 같은 원료라도 수천달러짜리 목걸이가 되기도 한다"면서 "우리는 프랑스를 따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일본과 함께 장인(匠人) 문화를 대표한다. 그러나 많은 럭셔리 메이커들의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고, 이탈리아 패션 기업들이 프랑스로 흡수 합병되는 상황에서 장인 정신이 살아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질문에 대해 트라파니 사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는 "그것은 정체성과 비전의 문제"라고 말문을 열었다.
| ▲ 1 시가 105만 달러(약 12억 3000만원) 상당의 불가리 멀티 컬러 목걸이. 2 불가리 루비 다이아몬드 팔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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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기에 소비자들은 소비에 좀 더 조심스러워지고, 여러 가지 요구를 많이 하게 된다. 로고만으로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기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 뛰어난 품질과 세심한 디테일, 최상급의 장인 정신을 지닌 제품들을 찾는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모든 생산 설비를 중국으로 이전하는 건 확실히 살아남는 데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럭셔리 마켓에서 진정으로 경쟁하고 싶으면 무엇보다 제품을 통해 드러나는 기업 정체성을 보존시켜야 한다. 불가리의 경우, 시계와 향수는 스위스에, 주얼리와 액세서리는 이탈리아에 생산 기반을 두고, 장인의 기술과 전통을 통해 최상의 품질을 선보인다."
그는 "스스로 쉽게 만족해서도, 또 고객을 쉽게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불가리가 25년 전 100주년 행사를 건너뛰다시피 하고 이번 125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른 이유도 품질 지상주의 철학에 기인한다. 불가리 부회장은 "100주년 때는 우리의 역사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이 덜 확보됐다고 생각했고, 아카이브를 모으는 과정에서 충분한 제품들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5년을 더 일하면서 차근차근 우리의 유명한 빈티지 제품을 전 세계에서 모아 드디어 자랑스럽게 우리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또 다른 의미에서 럭셔리업계의 화두이다. 전 세계 명품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아직 4% 정도에 불과하지만, 날로 급성장하면서 선진국 시장의 정체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불가리의 경우 5년 전만 해도 중국에 매장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10개 도시에 매장이 15개에 이른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올 3분기까지 중국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8% 늘어났다고 트라파니 사장은 전했다.
그러나 불가리의 일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줄었다. 트라파니 사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수익성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목 높은 일본 고객들의 이해도는 세계 시장에서 성공의 가장 중요한 보증서가 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일본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불가리 전체 매출의 25% 가까이를 차지한다."
트라파니 사장은 나폴리대학과 뉴욕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30세인 1987년에 CEO가 됐다. 본인 자신은 물론, 불가리로서도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 일에 대해 트라파니 사장의 외삼촌인 니콜라 불가리 부회장의 설명은 이랬다.
"누구는 서른 살이 너무나 어린 나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트라파니에게서 타고난 열정을 발견했다. 사람은 큰일을 앞두고 한 번쯤은 인생을 건 도박을 하기 나름이다. 사실 인생은 도박 아닌가? 그 정도 베팅할 배포도 없다면 이렇게 큰 기업을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겠나? 트라파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를 지지할 수 있었다."
트라파니 사장은 글로벌화와 사업 다각화에 주력해 불가리를 글로벌 브랜드로 널리 알려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불가리의 여러 제품 군(群) 중에서 올해 향수와 스킨케어는 여전히 호조인 반면, 시계와 호텔업은 전년 대비 20% 이상 매출이 떨어졌다. 그는 호텔의 경우 "이윤을 올리기 위한 사업이 아닌, 불가리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이미지 메이킹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넥타이 분야에서 탑 브랜드로 뛰어오를 수 있도록 경쟁할 생각"이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그러나 사업을 다각화하더라도 리치먼드나 LVMH와 달리 단일 브랜드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LVMH그룹이 불가리 인수를 추진한다는 항간의 풍문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불가리 부회장은 "세상에! 우리는 주식 52%를 보유하고 있고 경영권을 방어하고 있다"고 했고, 트라파니 사장은 "우리 회사는 파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가 자신을 알리는 방식은 대체로 두 부류다. LV(루이비통), CC(샤넬), GG(구찌), FF(펜디) 같은 로고를 택하거나, 아니면 특유의 무늬로 언뜻 봐도 '딱 그 제품'임을 알게 하는 것.
체크무늬의 대명사 버버리나 지그재그 직조로 유명한 미소니는 후자에 해당된다. 여기에 하나 더. '무늬'하면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 이탈리아의 에트로(Etro)가 있다. 요리조리 화려하게 꿈틀대는, 간단히 말해 올챙이 모양인 페이즐리 무늬로 명성을 이어간다. 어찌 보면 '무임승차' 같기도 하다.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존재했던 페이즐리 문양을 차용해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남자, 야코보 에트로(Etro·47)는 고개를 젓는다. 창업자이자 회장인 짐모 에트로의 장남이자 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커다란 눈을 굴리며 과장된 손동작으로 시선을 끌었다.
| ▲ 야코보 에트로 사장에게 “현란한 동작을 취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에트로 매장의 바닥에 누우며 “멋지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그는 “다음번에는 반드시 술자리에서 만나 한국 명품 업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며 자리를 떴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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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DNA예요! 당신의 눈에는 그저 하나의 문양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옛날 페이즐리를 바라봤던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눈에는 그 조각 하나하나가 DNA처럼 형상화된 것이죠. 우리를, 에트로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그 순간(it moment)을 그들은 맛본 거예요!"
최근 방한한 그를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애비뉴엘 매장 구석의 소파에 앉아 인터뷰했다. 1968년 창업한 에트로는 전형적인 이탈리아식 가족 경영을 하고 있다. 에트로 사장의 바로 아래 동생은 남성복, 셋째는 재무, 막내 여동생 베로니카는 여성복을 나눠 맡고 있다.
그는 "휘둘리면 안 된다. 사람의 취향은 돌고 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신은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우리는 페이즐리의 역사를 샀다는 사실을. 그로 인해 페이즐리가 갖고 있는 1500여년의 역사는 우리의 일부가 돼 버린 것이다."
―하지만 페이즐리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닌가. 루이비통이나 구찌 같은 다른 브랜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패턴과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우리가 인도에서 찾은 페이즐리 무늬를 에트로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맞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났다면 우리는 실패했을 것이다. 한 번 염색한 천을 한 색깔씩 탈색시키면서 다른 색을 더해가는 탈염법의 테크닉이나, 이카트(직물에 문양을 넣는 직조) 기법, 타이다이(홀치기 염색) 등을 통해 변화를 주기도 하고, 현대적인 팝 아티스트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내년 시즌에 보게 되겠지만 시폰이나 캐시미어가 아닌 플라스틱에 찍어내는 기술도 구현했다. 우린 소수 민족의 의상에서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착안해 낸다. 얼마 전엔 중국과 티베트의 마을을 돌면서 영감을 얻었다."
―로고는 조금만 달라도 금방 티가 나지만, 무늬만으로 진품 여부를 구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길거리에 가면 에트로가 아닌 페이즐리 가방이 도처에 널려 있다.
"다른 사람이 페이즐리를 만들면 오히려 그건 우리를 도와주는 일이다. 우리 브랜드 이미지가 좀 더 강해진다는 표시다. 푸치를 예로 들어보자. 푸치 프린트가 패션계의 핫(hot) 아이템으로 득세하던 1970~80년대, 푸치의 명성은 최고였다. 푸치 이외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푸치 식의 기하학적 무늬 프린트를 디자인에 적용했다. 하지만 그래도 오리지널 푸치 프린트의 카피일 뿐이다."
에트로는 이른바 '접근 가능한 명품(affordable luxury)'에 속한다. 가격대가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에트로 사장은 "우리는 1만달러 이상의 제품이 없다"면서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면서 '이 사람 도둑이군!'이라고 느낀다면 그 브랜드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에트로의 매출은 2008년 기준 약 2조원에 달한다.
―한때 로고를 숨기는 게 유행이더니 최근 다시 로고를 내세우는 추세다. 로고화에 대한 욕심은 없는가.
"CC, GG, LV 같은 게 적혀 있는 걸 볼 때마다 '네 이름이 CC냐'고 묻고 싶다. 과거엔 로고 달린 제품을 입는 것이 내가 마치 명품이 되고, 신분 상승이라도 한 것 같은 자랑의 표지였다면 이젠 그런 행동은 더이상 섹시하지 않아 보인다. 생각해 봐라. 셔츠에 D&G라고 적힌 셔츠를 입는다면, 그들(D&G)이 오히려 내게 돈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그들 브랜드를 광고해 주고 있는데!"
―새로운 업체가 등장해 명품 시장에 뛰어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품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이렇게 수많은 브랜드가 난립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인지도를 세우기는 무척 어렵다. 새로운 '아!' 하는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틈새시장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옷, 가방, 신발 모두 다 하려 하지 말고, 일단 한 분야만 파고들어라. 지금 시작하려면 딱 하나만 있는 걸 해내는 게 낫다. 구찌를 이끌던 디자이너 톰 포드를 봐라.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그도 구찌를 나온 뒤 정착하기 쉽지 않았다. 대단한 능력을 지녔지만 혼자 서는 건 쉽지 않다. 남성복에서 일단 실력을 인정받은 뒤 나중에 안경 같은 액세서리로 확장하질 않았나. 우선 파고들어라."
그는 그러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신발"이라고 말했다.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에트로의 다음 프로젝트 역시 신발이라고 털어놓았다. 베인&컴퍼니에 따르면 명품 신발시장은 세계적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올해 매출 감소폭이 0.5%에 그쳐, 다른 명품에 비해 두드러지게 선방했다. 베인&컴퍼니는 '신발은 새로운 가방(Shoes are the new bags!)'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시 페이즐리로 돌아와 보자. 회사 동료는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페이즐리 무늬를 정말 좋아하지만 게이로 오해받을 것 같아 섣불리 손이 안 간다고. (화려한 무늬의 페이즐리 패션은 게이 커뮤니티에서도 인기가 높다.)
"하하. 한국 사람들이 다소 조심스러운 것 같다. 근데 셔츠 하나가 게이를 결정짓는 건 아니지 않은가. 최근 한국 남자들도 타이를 매지 않고 셔츠를 입는 게 유행인듯싶다. 그렇게 스타일이 변해가는 것이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1960년 즈음엔 검정 재킷에 흰셔츠만 입었다. 시칠리아 갱들 유니폼처럼 말이다. 하지만 요즘엔 분홍색 바지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좀 더 도전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명품 기업이 살아남는 단 한 가지 조건을 꼽는다면.
"급히 성장하면 빨리 망한다는 게 이 업계의 신조다. 꾸준해야 한다. 한 시즌 입고 버릴 물건은 결국 쓰레기로 인식될 뿐이다. 패스트 패션? 획기적이었지만 현재 상태로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갑자기 떠오르는 패션 브랜드? 글쎄…. 이들은 현대 작가들과 비교할 수 있겠다. 제프 쿤스나 다카시 무라카미처럼. 센세이셔널하긴 하지만 10년 뒤에도 인기가 계속될까? 지금은 그렇게 열광해도 10년 뒤에 '내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렇게 비싸게 샀을까?'하며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클래식한 전통이 살아 있어야 한다. 클래식은 영원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