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정훈 기자
2007.05.15 08:20:00
카드 범죄수법 갈수록 고도화 지능화
카드사용자-카드사 분쟁 급증
소비자 권익 한단계 높이는 효과
[이데일리 이정훈기자] 서울에 살고 있는 김모씨(26세, 여)는 지난달 200만원에 가까운 신용카드 사용대금을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받았다.
월급쟁이에게는 어마어마한 사용대금을 보고 놀란 것도 잠시. 자세히 살펴보니 고지서를 보내온 카드사는 자신이 카드를 발급받은 적도 없는 회사였다. 알고보니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으로 다른 사람이 부정 발급을 받아 사용한 것이었다.
부산에 살고 있는 회사원 이모씨(35세, 남)도 최근에 신용카드 고지서를 받아보고 자신의 카드에서 누군가가 현금서비스로 150만원을 인출해간 것을 확인했다.
이 일이 있기 얼마전에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그 속에 있던 신용카드의 비밀번호가 유출됐던 것. 이씨는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카드사에 해명도 해봤지만, 결국 자신이 그 돈을 고스란히 물어야 했다.
최근 범죄수법이 고도화되고 지능화되면서 이같은 불법 신용카드 사용과 관련된 피해는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자연스럽게 이런 일을 둘러싼 카드 사용자와 카드사간 분쟁도 늘어나게 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신용카드와 관련된 이런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관계부처 협의와 관련 업계, 시민단체 등으로부터의 의견수렴 등을 거쳐 소비자분쟁 해결기준 개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8월 최종안 확정을 앞두고 윤곽이 드러난 개정안에서 정부는 명의 도용에 따른 신용카드 부정 발급이나 카드의 위·변조에 의해 제3자가 부정사용한 경우 카드대금 채무를 무효화하기로 했다.
또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신 또는 가족들의 생명이나 신체상 위해나 카드 위·변조로 비밀번호가 유출된 경우 피해도 카드사가 전액 보상토록 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이같은 카드 부정사용에 대한 책임을 카드 이용자들에게 떠넘기는 신용카드사들의 약관을 문제삼긴 했지만, 공식적인 분쟁해결 절차로서 명문화하긴 처음이다.
특히 신용카드 부정발급에 의한 사용이나 비밀번호 유출에 대한 고의성이나 중대 과실 여부를 입증하는 책임을 개인이 아닌 카드사들에게 지움으로써 소비자들의 권익을 한차원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정부는 할부계약이 성립되지 않았거나 철회요건이 되는데도 철회를 수용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항변권을 행사했지만 카드사가 이를 거절한 경우 지급거절 의사 통지 시점부터 도래하는 할부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항변권이란 할부거래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계약을 철회하고 신용카드사에게 할부금을 청구하지 않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과거에도 카드사에 대한 항변권은 있었지만, 카드사들이 이를 거부할 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 사실. 이번 조치로 카드 이용자는 지급거절 의사 통지와 동시에 할부금을 물지 않아도 돼 할부거래에 따른 위험요인이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아울러 카드사에 의해 부당하게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등재된 경우에는 `채무 불이행`이라는 기록을 삭제하고 이에 따른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근거로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이에 대해 당사자인 카드사들은 카드 이용자들이 책임을 전가하거나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영업상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발할 것으로 예상돼 향후 최종안 확정까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