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외교 공백 현실화 “정부·기업 원팀으로 美 소통 나서야”

by김은비 기자
2025.01.10 05:00:00

주요국, 앞다퉈 트럼프 당선인과 정상외교
트럼프 취임 후 관세, 방위비 등 경제 타격 우려
정부·기업 한팀 ‘외교 사절단’등 전략적 대응 필요

[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한국은 관세 폭탄 등 거대한 폭풍우를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릴 위기에 놓였다. 핵심 의제를 풀어갈 ‘정상외교’ 공백이 현실화하면서다. 정부는 ‘대행의 대행’ 체제 속 접촉 방안에 대해 고민을 이어가고 있으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은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한 돌파구 마련을 위해 앞다퉈 외교전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선제적 대응은커녕 트럼프 행정부의 한층 강력해진 통상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진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연합뉴스)
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외교부 등은 오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전화통화 등 정상외교 및 소통 방안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다.

다만 아직 미 신정부와 직접적 접촉은 없는 상황이다. 통상 백악관을 통해서 전화통화 및 정상외교 일정을 정하기 때문에 취임 전까지는 공식 소통 채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소통 방안 및 어떤 한계가 있을지 챙겨보고 있다”며 “아직 공식 접촉을 하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이 앞다퉈 트럼프 당선인과의 정상외교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을 명분으로 트럼프 당선인을 프랑스로 초청한 뒤 회담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자 지난해 1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로 날아가 트럼프 당선인을 만났다.

새 행정부의 정책이 수립되기 전 자국의 입장이 미국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발 빠른 외교 행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대행 체제에선 정상외교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1기 당시 양자협상을 선호했는데, 최 권한대행 체제는 과도기적 정부로 협상의 카운터파트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당시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취임 후 한국과는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과 의례적인 전화통화가 전부였다. 정상회담은 출범 5개월 뒤인 6월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후에야 이뤄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선제적 대응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후 무역 관세 현실화, 방위비 분담 인상 등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어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에 10%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연 152억 달러(약 21조 8000억원), 20%를 부과하면 304억 달러(43조 6000억원)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에서도 이렇다고 할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 권한대행이 지난 6일 범부처 차원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 대외경제현안간담회을 열긴 했지만, 산업별 이슈를 꼼꼼히 점검하고, 소통과 협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수준에 그쳤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통상질서에 큰 변화가 예상됨에도,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무방비 상태로 고율 관세를 부과받게 되면 경제에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정상외교를 고민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과 원팀을 이뤄서, 가능한 인적네트워크를 최대한 동원해 트럼프 2기 행정부 내각 인사들과 접촉에 나서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현재 우리 기업들은 개별 네트워크를 통해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범정부·기업들이 하나로 뭉쳐서 보다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관계부처 장관들과 기업 총수로 구성된 ‘경제 사절단’을 보내는 방안도 제시했다.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트럼프 당선인을 설득할 수 있는 치밀한 협상 전략도 중요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업들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향후 투자·고용 계획 등 미국에 협상에서 제시할 방안을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된다”면서 “동시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받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