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3.10.23 05:00:00
국민의힘이 지난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된 정쟁성 현수막 철거에 나섰다. 전국의 거리에 내건 현수막 가운데 정책이나 활동 홍보, 대국민 소통 등을 위한 것은 그냥 놔두고 정쟁의 요소가 있는 것은 모두 떼어내는 작업이다. 여야 정당들이 극단적이고도 과격한 표현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헐뜯는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내걸어 거리 미관과 교통 안전을 해치고 정치 혐오를 부추겨온 상황에서 바람직한 반전이다.
국민의힘이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은 정쟁성 현수막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데 주목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원태 의원이 최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서울시민 1000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현수막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다’는 응답률이 79%에 달한 게 그 증표다. ‘현수막이 정책과 정치 현안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77%, ‘현수막 때문에 일상생활 중 불편을 직접 경험했다’는 답이 60%였다. 이에 따라 정쟁성 현수막이 열성 지지층의 결집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확대에는 장애가 된다고 국민의힘 지도부가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 문제에 대해 아직 엉거주춤한 태도다. 국민의힘의 정쟁성 현수막 철거에 대해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현수막 공격 중단이라는 점에서 환영한다”면서도 “우리 당 현수막은 원래 정쟁보다 민생과 경제에 관련된 것이 더 많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민주당 현수막도 정쟁과 선동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국민의힘 현수막과 다를 바 없다. 거친 내용의 것이 되레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도 지도부에서 논의해 속히 동참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 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 정당 현수막은 지난해 말 지방자치단체 허가나 신고 없이 설치할 수 있게 하는 옥외광고물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난립 양상이 특히 심각해졌다. 이 법을 재개정하고 적절한 규제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자체의 사전심의권을 최대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정당 자율에만 맡겨둬서는 정치 불신과 혐오를 자극하는 저질 현수막을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