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한전의 참담한 현실 직시해야

by윤종성 기자
2023.10.16 05:00:00

[이데일리 윤종성 경제정책부장] “어떤 대책이든 있지 않으면 한국전력(015760)이 부도가 날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했던 이 발언은 한전의 경영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물론 한 총리의 ‘부도 경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지만, 지금처럼 원유, 액화석유가스(LNG) 등 발전 연료로 쓰이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분이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한전이 못 버티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지난달 25일 전남 나주 본사에서 전사 비상경영회의를 열고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을 결의하고 있다. (사진=한전)
한전의 몇 가지 재무제표만 뜯어봐도 한 총리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한전은 △1분기 -6조1776억원 △2분기 -2조2724억원 등 올 상반기에만 총 8조4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그나마 3분기에는 올 여름 폭염 여파로 역대급 전력 판매를 기록해 2021년 1분기(6000억원 흑자) 이후 10개 분기 만에 흑자전환이 예상된다.

하지만 3분기 기대되는 약 1조 6000억원대 영업이익은 ‘반짝 흑자’일 가능성이 높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으로 한전이 4분기에 다시 6300억원대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봤다. 예측이 맞다면 올해 한전의 연간손실 규모는 또 7조원이 넘는다. 2021년부터 쌓인 47조원의 영업손실은 올해도 줄이기엔 글렀다.

계속된 영업손실에 사채나 부채로 자금을 수혈하던 한전의 총부채는 6월말 기준 201조4000억원으로 불어나 국내 상장사 1위에 올랐다. 부채 규모는 올해 말 205조8000억원으로 늘고, 2027년에는 226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한전은 추산했다. 이에 따른 이자비용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간 24조원에 달한다. 매일 131억원씩 이자를 내야 하는 셈이다.



신규 한전채 발행을 통한 ‘빚 돌려막기’도 한계에 다다랐다. 현재는 작년 말 기준으로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20조9200억원)의 5배인 104조6000억원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시장 전망대로 올해 7조원대 영업손실이 난다면 내년 한전채 발행 한도는 약 70조원 수준으로 줄어드는데, 7월말 기준 한전채 발행 잔액은 78조9000억원이다.

정부는 한전의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방만 경영과 내부 비리를 척결한다고 하지만, 한전이 고꾸라진 근본 원인은 왜곡된 에너지 가격 구조에 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전의 정상화는 전기요금 현실화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상황이 시급한 데도 4분기 전기요금 논의는 하세월이다. 벌써 10월 중순을 지나는데, 국회 안팎에선 국정감사가 마무리되고 11월 이후에나 당정간 전기요금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물론 정부와 여당의 고심도 이해한다. 지난 겨울 ‘난방비 폭탄’으로 곤욕을 치른 만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기요금 인상이 부담스러울 테다. 3.7%로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오 오른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하지만 벼랑 끝 한전의 참담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최근 “kwh(킬로와트시)당 25.9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정용 전기요금(kwh당 150원) 기준 17.3% 인상 요구다. ‘과하다’ 여길 수 있지만, 정부가 추산한 한전 적자 해소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 필요분(kwh당 30.5원)보다 적다. 이조차도 적자 해소에 역부족이란 얘기다. 더는 여론 눈치나 살피며 한전 적자의 근본 처방을 외면해선 안 된다. 전기요금 방치로 인한 한전의 부실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공무원과 정치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