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죽이려 택한 이 나라…전세계는 '바이재팬'

by김보겸 기자
2023.06.01 05:00:00

닛케이225, 31일 3만887.88에 마감
버블 꺼지기 직전인 1990년 이후 최고치
외국인, 올 들어서만 日서 30조원어치 사
역대급 엔저·워런버핏 러브콜·저평가 해소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가장 큰 파트너로 일본을 택했다.”

최근 일본 증시가 버블경제 직전 수준까지 고공행진하는 현상을 두고 증권가에선 이런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대중 수출을 제한하자 중국은 미국 반도체 구매를 막는 등 반도체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일본이 고래싸움에서 수혜를 누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엔화 가치가 역대급 양적완화 정책에 바닥을 찍었다는 기대감과 일본 상장기업들의 저평가 해소 노력 역시 일본 증시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니케이225 4만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31일 니케이225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47% 하락한 3만887.88에 장을 마쳤다. 지난 30일 3만1328.16으로 33년 만에 최고치를 찍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이는 버블경제가 꺼지기 직전인 1990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니케이지수는 올 들어서만 20% 넘게 올랐다. 코스피(15.79%), 상해종합주가지수(2.83%)아시아 주요 증시는 물론 미국(9.97%)과 유럽(10.44%) 증시 에 비해서도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중국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투자자금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외국인은 올 들어서만 일본에서 30조원 가까이 사들였다. 4월 일본 순대내증권투자는 약 45조7775억원으로 2001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전쟁 특수’가 일본으로 향한다는 분석이다. 지난 26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미·일 상무·산업 파트너십(JUCIP)’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으로부터 제재당한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은 히로시마에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새 공급망으로서의 일본 위상이 커지고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일본행도 증시에 호재가 됐다. 버핏은 지난해 샀던 대만 반도체 회사 TSMC 주식 820만주를 올 1분기 전부 팔면서 “TSMC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 중 하나지만 회사 위치가 문제”라고 밝혔다. 지난 4월에는 일본을 찾아 “50년 후 일본과 미국은 지금보다 성장한 나라가 돼 있을 것”이라며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을 7.4%까지 늘렸다고 했다.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대만 기업보다는 일본 기업이 매력적이라는 판단이다.

엔화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뒤 오를 일만 남았다는 기대도 일본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다. 통상 엔화 가치가 극단적 약세로 흐른 후 되돌림을 시작하면 일본 증시가 아웃퍼폼할 확률이 높았는데, 작년 말부터 이 조건이 성립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주식이 쌀 때 주워두면 엔화가 강세로 전환할 때 주식을 매도해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다. 엔·달러는 중기 약세 영역인 달러당 140엔을 오르내리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고질적인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증시 활황을 이끌고 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작년 말부터 주가순자산배율(PBR)이 1배가 안 되는 기업들에 저평가 원인을 분석하고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 공시할 것을 압박했다. 일본 기업들도 호응했다. CNN에 따르면 일본 상장사들의 2022회계연도 자사주 매입은 역대 최고치인 약 9조7000억엔에 달한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영업부 이사는 “한국처럼 행동주의 펀드 타깃이 된 기업들이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캠페인을 통해 서로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모습으로 주주친화정책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짚었다.



이대로라면 일본 증시가 4만포인트를 넘기는 건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제노에셋매니지먼트는 “일본 상장사가 거래소 요구대로 자본 효율을 개선하면 3년 후 니케이225가 4만포인트를 넘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잇따른 호재에도 불구, 기업이익은 별다른 반등 조짐이 없다는 점은 증시에 걸림돌이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재평가 속 일본 증시의 12개월 선행 PER은 저점대비 20% 올랐지만, 이는 지난 10년 중위 수준으로 가격 매력은 여전하다”면서도 “다만 전반적인 일본 증시 기업이익은 아직 개선 조짐이 없으며, 이는 미국과 유럽, 한국 이익 전망이 반등하는 것과는 대비된다”고 했다. 기업이익이 반등하지 않는다면 외국인 순매수의 지속적 유입이나 추가 상승 여력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연구원도 “향후 미국과 일본 금리차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엔화 매도 포지션이 크게 누적됐다는 점과 역대 최저 수준의 실질실효환율도 높은 변동성을 초래할 수 있는 변수”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