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어린 상징 현란한 색채 장난같은 묘사…아프리카 '붓'이 왔다
by오현주 기자
2021.11.09 03:30:00
[줌인] 아트스페이스선 ''포커스 아프리카'' 전 개막
대표작가 3인의 같은 붓 다른 결
낙서하듯 자유로운 선의 음파두
알록달록 피부색 물들인 릴랑가
바오바브에 의지 담은 팅가팅가
척박한 현실속 희망 노래한 90점
| 아프리카 카메룬 작가 조엘 음파두의 ‘무제’(2014). 카메론의 국보급 작가로 꼽히는 음파두가 쓱쓱 그은 선으로 사람과 자동차를 들이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입힌 작품은 딱 보는 순간 장 미셸 바스키아의 낙서화를 떠올리게 한다(사진=아트스페이스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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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노란 셔츠의 가슴팍에 큼지막이 찍힌 흑인 남성 얼굴. ‘내 취향이네, 아니네’는 나중 문제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이 올여름 남성컬렉션으로 공개하고 세계 패션계의 눈길을 확 잡아끈 ‘작품’이니까. 사실 여기서 포인트는 셔츠가 아니다. 그 셔츠에 박힌 흑인 남성의 얼굴을 그린 ‘화가’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 아모아코 보아포(37). 우리에겐 아직 생소하지만, 그를 향한 세계 미술시장의 반응은 그리 느긋하지 않다. 유수의 갤러리가 줄을 서서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니까.
최근 국내서 보아포의 강렬한 화면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손가락으로 찍고 문지르는 특유의 핑거페인팅 인물화 ‘블랙 재킷’(2020)이 지난 9월 서울옥션 가을세일에 나와 컬렉터를 유혹했는데. 결과는 어땠을까. 한국 경매사를 통틀어 처음 나선 그 작가의 그 그림은 5억원을 부른 응찰자에게 팔렸다.
어디에 내놔도 표시가 난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술은 말이다. 누구는 끈질긴 생명력이라 하고 누구는 간절한 절실함이라고 한다. ‘비사실성에 주술이 가미된 표현주의’라고. 그런데 그뿐인가. 어쩌면 그건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지독한 편견일 수 있다. 최소한 우리가 봤던 ‘아프리카 작가’들은 자신이 사는 땅을 벗어난 이상향을 그린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편견만 탓할 수도 없다. 편견이 사실처럼 굳은 건 유럽 인상파 작품들만큼 ‘많이 자주 접하지 못했던’ 이유가 클 테니.
딱딱하게 치우친 그 생각에 ‘유쾌하게 금을 낼’ 아프리카의 붓이 왔다.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 아트스페이스선이 ‘포커스 아프리카’란 테마로 펼친 기획전이다. 아프리카 미술, 특히 회화에 도드라진 과거의 상징, 현재의 형상, 미래의 색채를 한꺼번에 내보이는 자리다.
| 탄자니아 작가 헨드릭 릴랑가의 ‘아프리카 동양식 카페’(African Oriental Cafe·연도미상). 현란한 색채를 무기로 모든 작품에 떠들썩한 축제분위기를 띄우는 건 릴랑가의 특기다(사진=아트스페이스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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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개막하는 전시는 아프리카 대표작가 3인을 집중 조명한다. 카메룬의 조엘 음파두(65), 탄자니아의 헨드릭 릴랑가(47)와 에드워드 사이드 팅가팅가(1932~1972)다. 세 작가를 한 데 놓고 비교하기보다 하나 하나에 좀더 몰입할 수 있게 한 전시구성이 특징이다. 음파두(11월 9∼28일)를 시작으로, 릴랑가(11월 30일∼12월 19일)를 거쳐, 팅가팅가(12월 21일∼1월 9일)로 이어가는 두 달여의 일정을 마련했다.
전시 속 전시로 꾸린 이번 ‘포커스 아프리카’ 전에 나올 작품은 총 90여점. 지난 화업을 들여다보게 할 대표작을 포함해 아프리카 회화의 오늘을 대변할 신작까지,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뿜어내는 세 작가가 같은 붓, 다른 결로 완성한 30여점씩을 건다.
쓱쓱 그은 선이 모여 사람을, 집을, 자동차를 만들더니 아무렇게나 모아놓은 그들이 동네를 이루고 세상을 세운다. 스케치 같기도 드로잉 같기도 한 화면이, 똑똑 끊어진 애니메이션처럼 흐르지만, 섣불리 다 봤다고 할 순 없다. 저 깊숙한 곳에서 피어나는 스토리가 보이고 서사가 읽히기 때문이다. 카메론 국보급 작가로 꼽히는 음파두의 기량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띄우는 데 있다. 독재와 가난, 내전의 위협까지 아프리카의 척박한 현실을 목도한 작가가 터득한 ‘예술하는 방식’이라고 할까.
| 카메룬 작가 조엘 음파두의 ‘무제’(2019). 물감을 두껍게 입힌 알루미늄판을 송곳이나 면도칼로 긁어내는 기법으로 완성한 작품. 그렇게 드러난 하얀 선, 반짝이는 금속광을 두고 “어두운 아프리카 현실을 비추는 빛”이라 했다(사진=아트스페이스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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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는 순간 연상되는 누군가가 있다.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 비딱한 표상에 붙인 익살스러운 표현도 닮았고, 자신들이 발붙일 곳은 ‘거친 현실’이란 것을 낙서화에 감춰놓는 방식도 닮았다. 비슷한 연배였던 둘 중, 바스키아는 그 고비를 넘기지 못했고 음파두는 기어이 넘어섰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까.
붓으로 긋는 것보다 선명힌 흔적을 남기는 기법 또한 작가의 특징. 물감을 두껍게 입힌 알루미늄판을 송곳이나 면도칼로 긁어내는 건데. 그렇게 드러난 하얀 선, 반짝이는 금속광을 두고 작가는 “어두운 아프리카의 현실을 비추는 빛”이라 했다.
누구도 그에게 ‘천재’라는 말은 해주지 못했을 거다. 바오바브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새와 곤충이 무슨 의미인지 살필 겨를도, 그 바오바브나무 아래 작은 집을 짓고 밭일하며 가축 키우는 가족의 일상이 어떤 무게인지 재볼 여유도 없었을 테니. 탄자니아를 넘어 아프리카 미술계에 큰 자취를 남긴 팅가팅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35세였단다. 공사장에서 주워온 합판에 자전거에나 칠하던 에나멜페인트를 발라대는 것으로. 하지만 그조차 40년 짧은 인생 중 마지막 5년뿐이었다. 배운 적도 없고 스승도 없었으니 그리는 족족 ‘팅가팅가 사조’가 된 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까.
| 탄자니아 작가 에드워드 사이드 팅가팅가의 ‘바오바브와 곤충들’(연도미상). 아프리카 상징인 바오바브나무를 주요 소재로 합판에 에나멜페인트를 칠해 완성했다(사진=아트스페이스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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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가팅가가 닦은 길은 릴랑가가 즐겁게 걷는 중이다. 릴랑가의 작품은 한마디로 떠들썩하다. ‘축제’ ‘카페’ ‘행복한 가족’ ‘행복한 인생’이 엉켜 난리법석인데, 그 분위기를 화려하게 띄우는 건 색이다. 붉고 푸르고 노란 색을 나눠 입은, 토속조각을 닮은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을 춘다. 그중 백미는 모든 작품에 걸쳐 그 알록달록한 색을 인물 각각의 피부색으로 물들여놓은 거다. ‘차별이 아닌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란 뜻이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풍경들이다. 치기 어린 상징, 현란한 색채, 장난 같은 묘사, 이 모두를 무기로 전시는 그림보다 더한 아프리카 밖의 현실까지 들여다보게 한다.
| 탄자니아 작가 헨드릭 릴랑가의 ‘행복한 가족’(Happy Family·연도미상). 노란 바탕이 도드라진 작품은 같은 테마에 색을 바꿔 다른 분위기를 낸 연작 중 한 점이다(사진=아트스페이스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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