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삼성맨에서 토스맨으로…홍민택의 혁신 2막

by김유성 기자
2021.10.18 05:00:00

토스뱅크 대표로 홀연히 등장, 최연소 은행 CEO로
연리 2%의 파격적인 통장, 의구심이 있는 게 사실
홍 대표 "충분히 가능하다" 고심 끝에 전면 개방
이자 비용 부담되지만 '고객 불편함 해소하겠다' 취지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어, 왜 이승건이 아니지?’

지난 6월 9일 토스뱅크의 은행업 본인가 획득 사실을 알리는 기자간담회가 열리던 날, 유튜브 화면으로 낯선 얼굴이 등장했다.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다. 금융권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홍 대표 등장에 기자들 사이에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그전까지 토스뱅크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토스의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가 주로 등장했었다.

토스뱅크가 서비스 출시를 준비해 약 4개월, 홍 대표는 토스뱅크의 새 얼굴이 됐다. 10월 5일 토스뱅크 정식 출범을 알리던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나타난 그의 얼굴에서는 어색함보다 자연스러움이 배어났다.

홍만택 토스뱅크 대표.


서비스 출시 열흘째인 지난 14일, 홍 대표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했다. 170만명 가까이 몰린 토스뱅크 사전신청 고객들이 마음에 걸려서다. 실제로 고객들의 불평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고 한도 1억5000만원의 대출은 차치하더라도, 2% 금리 예·적금 통장 개설도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됐기 때문이다. 현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연리 2%의 금리를 주는 1금융권 은행은 어느 곳에도 없다.

홍 대표는 더이상 이들을 기다리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사전 신청자 170만을 포함해 토스뱅크 서비스 신청자 모두에게 통장 서비스를 내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 결정은 그가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중차대한 것이었다. 금융당국의 대출 총량 규제로, 출범 열흘이 지난 토스뱅크는 사실상 연말까지 대출 영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출범 초기 설정한 대출 총액 5000억원 이외 ‘추가 대출은 안된다’고 당국이 못박았기 때문이다. 대출 이자 수익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객이 맡긴 자금에 대한 금리를 2%로 돌려준다면 출혈적 손해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홍 대표는 토스뱅크 이용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당장의 수익보다 이용자 확보를 우선시하는 플랫폼 전략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고객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첫 약속을 지키는게 우선이라고 판단해서다. 홍 대표는 “사업 초기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고, 충분히 우리 역량으로 감내할 수 있다고 여겼다”면서 “토스뱅크 이용자들이 원하는 2% 통장 서비스도 차질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토스뱅크가 어떤 식으로 수익을 내 고객에게 2% 이자를 얹어줄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대출 영업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삼엄한 상황에서 수익을 낼 사업 찾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이에 대한 해답을 금리 10% 안팎의 ‘중금리 대출’에서 찾을 계획이다.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중금리 대출은 금융권에서는 ‘양날의 검’으로 꼽힌다. 은행 입장에선 고신용자 대출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부실화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연체와 부실 우려, 차주 선별에 대한 비용 부담으로 은행들은 중금리 대출을 피해왔다. 중금리 대출 확대를 약속했던 카카오뱅크가 사업 초반 고신용자 대출에 집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토스뱅크는 토스 시절부터 키워온 IT 경쟁력이 중금리 대출에서 빛을 발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지난 7년간 국내 최대 핀테크 업체로 데이터를 축적했고,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진화시켜온 덕분이다. 실제 토스뱅크의 최근 대출 자산 중 25%는 중금리대출이다. 다른 1금융권 은행들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해 금융 소외자들이 대부업 등 고금리 대출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던 금융 당국의 정책 취지에도 부합된다. 홍 대표는 기자간담회 당시 “중금리 대출 서비스가 정착된다면 2% 금리 통장은 무리없이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홍 대표는 평소 토스뱅크의 정체성이 IT 기업에 더 가깝다고 강조해왔다. 본인도 ‘은행장’이 아닌 ‘대표’로 불리기를 원한다. 좀 더 정확히는 모바일 IT기업의 CEO로 인식됐으면 한다. 이는 호칭에서도 드러난다. 직원들은 그를 ‘민택 님’이라고 부른다. 토스의 문화이기도 하다. 다른 토스 계열사 CEO처럼 홍 대표도 별도 사무실이 없다. 본인의 책상과 컴퓨터가 다른 직원들과 한 공간에 있을 뿐이다. 근거리에 이승건 대표의 책상도 있다. 언제든 찾아가 각자의 의견을 나눌 수 있다. 홍 대표도 이 대표를 ‘승건 님’이라고 부른다.

모바일 기업일수록 수평적 조직이 강조돼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바일 서비스의 특성상 빠른 시장 대응이 필요한데, 위계질서가 갖춰진 조직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모바일 기업 특유의 속도와 문화, 가능성에 매료돼 토스로 왔다.

사실 그는 삼성페이 개발자 중 한 명이었다. 삼성페이가 미국 시장을 개척할 때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내 주요 은행들과 삼성페이간의 공동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삼성페이 사업에서 입지를 다져가던 홍 대표는 토스에 주목했다. ‘저 기업은 규모도 작은데 왜 많은 관심을 받을까?’ 홍 대표는 호기심에 이승건 토스 대표를 만났다. 이틀 뒤 홍 대표는 토스로 적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2017년 6월이었다. 토스라는 기업에서 본인의 성장성을 확신한 것이다.

홍 대표는 토스 내 여러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 지난해부터 토스뱅크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국내 3대 인터넷은행의 CEO 타이틀까지 얻게 됐다. 국내 금융권에서는 최연소(만 40세) CEO인 셈이다.

홍민택의 토스뱅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장은 예금 통장 신청자 급증에 따른 이자 비용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지속적인 은행업을 위해서는 자본 확충도 필요하다.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중금리 대출 자산 연체·부실에도 대비해야 한다. 은행으로서 책무도 다해야 한다.

그렇지만 홍 대표에게는 소신같은, 하나의 바람이 있다. 토스뱅크가 시중은행을 닮아가기보다는, 은행들이 토스뱅크를 따라오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하는 도전이 (기존 은행들이) ‘못 했던 것’이 아니라 ‘안 했던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