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머니] 1천원으로 그림 산다…수익률 155.6% 미술품도 공구시대

by오현주 기자
2021.09.06 03:30:01

[돈이 보이는 창]
'미술품 공동구매'에 올라탄 MZ세대
소장자 팔려는 미술품 가격만큼 쪼개
원하는 조각수로 구입해 되팔아 수익
서울옥션블루 미술품 공동구매 '소투'
6개월새 2만2천명…95%가 'MZ세대'
'소장 않는 그림' 코인처럼 투자로만

MZ세대가 ‘픽’한 작가 우국원·문형태·김선우의 작품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디너’(2019), ‘다이아몬드’(2018), ‘모리셔스 섬의 비극’(2019)이다. 이들 작가의 작품들은 온라인·메이저 경매는 물론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에까지 숨가쁘게 오르내리고 있다. 비싸고 무거운 작품들이 주요 대상이던 전통적인 ‘컬렉션’ 혹은 ‘미술품 투자’ 개념도 여지없이 깨지는 중이다(사진=케이옥션·서울옥션).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지금 수중에 1000원이 있다고 치자. 가진 돈을 탈탈 털었더니 1000원뿐이더란 건 아니다. 쓸 데 다 쓰고 융통할 자금이 1000원 남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1000원을 가장 유용하게 굴릴 방법은? 저축? 주식? 코인? 제아무리 ‘투자의 대마왕’이 나선다고 해도 1000원으로 운용할 여지는 많지 않다. 방식도 마땅치 않은 데다가 수익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독특한 방법 하나가 눈에 띈다. 투자단위가 단돈 1000원이라니. 물론 1000원은 최소일 뿐, 원하는 만큼 키울 수 있다. 어디에? 그림이다. 미술품이다. 소장자가 팔려고 내놓은 미술작품을 그 가격만큼 조각낸 뒤, 원하는 투자자들이 1조각부터 수십조각, 작품에 따라 수백조각까지 공동구매하는 방식이 그거다. 바로 그 1조각이 1000원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수익은? 그 작품이 다시 팔린 다음에 발생한다. 그때 생긴 시세차익을 역시 조각 수만큼 나눠 갖는다. 이른바 ‘조각투자’, 좀더 정확하게는 ‘미술품 공동구매’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고 있는 미술시장을 업고 부상 중인 ‘아트테크’(예술+재테크). 그중 ‘미술품 공동구매’는 MZ세대를 그림 앞에 줄 세우는 새로운 아트테크로 시선을 끌고 있다. 그저 막연하게 ‘돈이 된다더라’ 했던 기대 섞인 추측 그 이상이다.



“론칭한 뒤 6개월 만에 회원 수가 2만 2000명을 넘어섰는데, 그들 중 95%가 MZ세대다.” ‘미술품 공동구매’를 향한 MZ세대의 열풍을 가늠할 만한 수치는 서울옥션블루가 최근까지 진행한 ‘1000원의 조각투자’에서 엿볼 수 있다. 서울옥션블루는 서울옥션의 자회사로, 주로 국내 온라인 경매시장을 공략하는 중. 미술품에 특화한 공동구매 플랫폼 ‘소투’를 론칭한 건 반년 전이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든 회원이 몰렸다. 이들이 그간 구매한 작품 수는 234점, 공동구매를 위해 십시일반으로 내놓은 총액도 138억 5747만원에 달한다. 그중 170점을 매각해, 공동구매한 작품이 되팔리는 정도를 의미하는 ‘작품 매각률’을 73%로 썼다.

그렇게 환산한 연 평균 수익률이 155.6%라고 서울옥션블루는 귀띔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민감한 잣대가 될, 매각까지 걸린 기간이 평균 39일이란다. 이제껏 화랑·옥션 등에서 그림 한 점 팔고 사던 고전적 방식에선 꿈도 못 꿀 ‘파격’인 셈이다. 유나리 서울옥션블루 홍보마케팅팀장은 “기존 서울옥션 고객과는 5%도 겹치지 않는 30대·40대층의 참여가 특징”이라며 “사업을 소개할 때 알린 ‘보유기간 평균 6∼12개월’이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화랑에서 미술품을 판매할 땐 최소 1~3년의 보유기간을 제안·권고한다.

상황이 이러니 그새 한 사람당 평균 투자금액도 크게 늘었다. 초기의 30만원(1000원×300조각) 언저리던 투자액은 230만원(1000원×2300조각)에 닿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이 이 플랫폼에서 공동구매된 뒤 되팔렸을까. 국내 거장부터 현대미술 신진작가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이우환의 ‘조응’, 김창열의 ‘회귀’, 박서보의 ‘묘법’ 등 국내 미술시장을 들었다놨다 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당장 눈에 띈다. 그 아래 원로·중견인 심문섭의 ‘제시’, 김태호의 ‘내재율’, 이정웅의 ‘브러시’, 최울가의 ‘무제’, 고영훈의 ‘자전’ 등이 이름을 올렸고.



박서보 ‘묘법 No.180411’(2018·170×130㎝). 지난 4월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서 3억 5000만원에 공동구매한 작품은 56일만에 5억원에 팔리며 수익률 42.9%를 냈다(사진=아트앤가이드).


2~3년 전 아름아름 시작된 ‘미술품 공동구매’에 불을 당긴 건 뭉칫돈이 몰린 요즘 미술시장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2018년 10월 첫 사업을 뜬 아트앤가이드와 아트투게더를 비롯해 피카프로젝트, 아트블록 등 10여개사가 뛰어든 상태. 2018년 김환기의 ‘산월’(1963)을 첫 작품으로 매각한 아트앤가이드는 2년 남짓한 동안 93회의 공동구매를 통해 148억 8980만원의 총액을 모았다. 51점을 매각해 거둔 평균 수익률은 26%, 평균 보유기간은 278일이었다. 4500만원에 공동구매한 ‘산월’은 57일을 보유해 수익률 22.2%를 냈지만 모두 이처럼 좋은 성적이었던 건 아니다. 2019년 2억 1000만원에 공동구매했던 이우환의 ‘선으로부터’(1982)는 806일의 보유기간을 거쳐 11.0%의 수익률을 내는 데 그쳤다. 대신 지난 4월 진행한 박서보의 ‘묘법 No.180411’(2018)은 3억 5000만원에 공동구매해 56일만에 5억원에 팔리며 수익률 42.9%를 쓰기도 했다. 또 아트투게더는 그간 87점을 공동판매해 17점을 매각했다. 총 판매금액은 41억 8473만원, 평균 보유기간은 319일, 평균 수익률은 52.35%다.

말 그대로 ‘투자’다. ‘미술품 공동구매’가 독특한 건 구매자가 손에 쥘 작품이 없다는 점. 미술작품은 ‘투자대상’일 뿐, 내 집에 거는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주식·코인’을 사고파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이 방식이, 그래서 사실 MZ세대에겐 이상한 일도 아니다. 덕분에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쓰는 일로만 여겼던 ‘미술품 컬렉션’을 ‘나도 덤빌 수 있는 투자’로 바꾸고, ‘애들도 한다’를 지나 ‘전통 컬렉터·컬렉션의 개념을 깨는’ 다른 대상·방식을 만들어낸 건 주목할 변화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요즘 미술시장은 전방위로 변화와 맞닥뜨리는 중이다. 그림에 푼돈을 투자해 돈을 벌 수 있다는 ‘투자개념의 변화’, 유명 작가·작품만 사고 팔린다고 여겼던 고정관념을 깬 ‘투자대상의 변화’, 화랑·옥션을 통해야 한다고 믿은 생각을 뒤집은 ‘투자방법의 변화’. 물론 이 전부를 바꿔버린 ‘MZ세대’란 ‘투자자의 변화’가 가장 크다(이미지=이데일리DB).


그렇다고 ‘내 집에 거는 그림’에 영 무심한 것도 아니다. MZ세대가 알아본 ‘MZ픽’ 작가들도 덩달아 상승기류를 탔다. 김선우(33)·우국원(45)·문형태(45)·하태임(48)·정영주(51) 등이 2차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온라인 경매를 넘어 메이저 경매에서도 몸값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지난달 24일 열린 서울옥션 ‘제162회 미술품 경매’에서 우국원의 ‘타-다’(2017·80호)는 추정가 3000만∼5000만원을 뛰어넘어 1억 2000만원에 낙찰되는 기염을 토했다. 앞서 케이옥션 ‘7월 경매’에선 ‘디너’(2019·50호)가 시작가의 8배에 달하는 8000만원에, ‘6월 경매’에선 ‘새티스팩션’(2020·30호)이 800만원에 출발해 4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천진한 인물을 등장시켜 ‘속 깊은 동화’를 캔버스에 꾸준히 써온 문형태의 ‘다이아몬드’(2018·20호)도 순식간에 판을 바꿨다. 지난달 서울옥션에 내건 450만원의 시작가는 이내 4000만원의 낙찰가로 바뀌어버렸다.

우국원·문형태의 작품은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에서도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다. 문형태의 ‘바크’(2017)의 경우 지난 5월 아트앤가이드에 450만원을 달고 올라온 뒤 78일만에 1억 3000만원에 팔리며 188.9%의 수익률을 냈다. 우국원의 작품 중에선 ‘프록 B’ ‘프록 O’(2010)가 최근 아트투게더에 나섰다. 5000만원에 올라온 작품은 지난 1일 단 하루 동안 5000조각(아트투게더에선 1조각=1만원)에 대한 공동구매를 마치고 매각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