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윤민하 기자
2021.07.10 00:25:13
전북 A고교, ‘윤석열X파일’ 문항 논란에 재시험
학교 “매뉴얼 따라 대응”·도교육청 “감사 예정”
특정 이념 주입·공교육 신뢰 하락 지적돼
전문가 “사회적 합의 거쳐 지침 마련해야”
‘윤석열 X파일·이준석 병역비리 등의 쟁점을 염두에 두며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서술하라.’
지난 1일 전북 A고교에서 치러진 2학년 도덕 시험 문제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공직자 덕목’과 관련된 서답형 문제를 출제하며 사실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정치적 사안을 예시로 들면서다. 해당 학교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어 진상을 파악하고 6일 재시험을 치렀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정치 편향성을 담은 시험 문제 출제가 반복되고 있다. 자아 형성 과정에 놓인 학생들에게 편향된 정치 이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교사 개인의 부주의와 검토·검수 과정의 부실함을 동시에 지적했다. 이어 구조적 대안으로 기존 사례를 수집해 재발 방지를 위한 지침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도덕·한국사·한문까지...시험문제에 첨예한 정치 사안 담겨
일선 고교의 시험 문제가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을 낳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10월 부산 B고교 중간고사에는 ‘정치검찰’을 비판하는 글을 지문으로 제시하고 해당 글과 관련된 인물을 찾으라는 한국사 문제가 출제돼 물의를 빚었다. 학교는 재시험을 치르고 해당 문제를 출제한 교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같은 해 12월 여수 C고교 기말고사에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비판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느꼈을 감정'을 드러낸 사자성어를 고르라는 한문 문제가 출제됐다.
이같은 사례는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부 교사의 ‘이념 주입’으로 공교육의 신뢰가 무너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하기에 아직 어려 이념적으로 편향되고 왜곡될 소지가 있다”며 초·중등교육에서 정치적 중립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재시험을 치르면서 발생하는 행정력 낭비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가치관에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재시험을 치러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학교의 행정력과 비용 등이 낭비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해당 교사, 정치적 중립 의무 소홀...검수 과정도 문제”
전문가들은 정치적 편향성이 담긴 시험문제가 출제되는 원인으로 교사 개인의 부주의 및 일탈을 꼽았다.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
김상무 동국대 교직부 교수는 “(검수하는 교과목과) 연구부장·교감 등 검수 담당자의 전공 교과목이 다를 경우 세부 내용까지 살피기 힘들다”며 “교사 개인의 잘못이라고 봐야 한다. 검수자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박 교수 또한 “해당 교사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검토·검수 담당자가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문제에 사용된 예시가 논란을 일으킬 만한 내용임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양 교수는 “검수자의 전공 교과목에 따라 (세부 내용)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면서도 “(이번 군산 고교 논란의 경우) 수학·영어 과목이 아니라 한글로 출제된 문제이므로 검수자가 도장을 찍기 전 한 번 읽어보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 “교사의 정치성향 시험문제에 투영되면 안돼”
해당 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 또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A고교의 B학생은 “제시된 사안이 사실로 밝혀진 것도 아닌데 굳이 정치적 이슈를 끌어와 시험 문제를 냈어야 했나 싶다”며 “학생의 정치적 의견이 드러날 수 있는 답안을 유도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화를 내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쉬워하고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며 교내 반응을 전한 뒤 “사전에 막았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학생 C군은 “공무원으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교사가 정치 성향을 시험문제에 드러낸 것은 잘못”이라며 “특히 교사는 미래 선거권자들을 교육하는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이같은 상황은 더욱 옳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교사를 징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를 (학교 외부에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해 (본 논란의) 본질을 흐리는 일 또한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합의 통한 지침 마련·교원 대상 반복적 연수 필요
전문가들은 유사한 논란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시험 문제를 출제하며 현실의 사례를 활용할 때 불필요한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보도되지 않았을 뿐 (전북의 A고교 논란과) 비슷한 사례가 시·도 교육청마다 그동안 제보됐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사례를 수집해 쟁점을 파악한 뒤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차원의 교원 연수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침을 마련할 때 교육 현장 안팎의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교육 당국의 일방적인 지시로 시행되는 ‘톱다운(top-down)’ 방식의 조치가 현장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어서다.
김 교수는 “정책 결정권자인 교육 당국 외에도 교사, 교원단체, 학부모단체,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야 한다”며 “교육 당국에서 일괄적으로 지침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공론화를 거쳐 범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직·예비 교원을 대상으로 한 반복적인 연수와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박 교수는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현직교사 연수 및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이 최우선”이라며 “예비교사 양성 기관에서도 이를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예방적 조치로서 징계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양 교수는 “간단한 주의나 경고 조치로는 교사들이 (편향된 시험문제 출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며 “예방적인 차원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을 때)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