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금융]②은행권 `4강 체제` 새판짜기
by이학선 기자
2011.01.01 08:25:00
하나금융 외환銀 인수..은행 `4강체제` 재편
우리금융 향배 주목..산은 민영화도 `촉매제`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은행의 지각변동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올해 첫 단추는 하나금융지주(086790)의 외환은행(004940) 인수가 될 전망이다. 인수후 하나금융은 총자산 기준 국내 3위의 금융지주로 발돋움하게 된다. 패권을 잡기위해 서로 다투던 춘추전국시대에서 합종연횡 등으로 힘의 우열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국면으로 전환되는 상징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다.
그동안 은행권 재편의 핵심으로 거론되던 우리금융지주(053000) 민영화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민영화 재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어 매각방식과 일정이 구체화되면 우리금융을 둘러싼 판도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관측이다.
여기에 산업은행 민영화 일정과 KB금융(105560)지주의 선두 굳히기, 내홍사태를 빚은 신한금융지주(055550)의 조속한 정상화 여부 등을 감안하면 올해도 은행권은 치열한 순위다툼의 한복판에 서게 될 전망이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된다. 외환은행 인수에 눈독을 들이던 다른 국내외 은행들은 허를 찔렸다.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지주 인수 후보로 나서줄 것을 기대했던 정부도 끝내는 우리금융 매각판 자체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밖에 없었다.
금융권은 충격이었지만, 하나금융으로선 당연한 수순밟기 측면이 크다. 하나금융은 국민·우리·신한 등에 밀려 `만년 4위`라는 꼬리표를 달고다녔다. 우리·국민·신한 등 금융지주사 총자산이 300조원을 넘을 때 하나는 200조원에 불과했던 것. 하지만 외환은행 인수로 총자산 약 320조원에 달하는 몸집을 가지게 된다. 이는 우리와 국민 다음을 차지하는 규모다. 은행권이 비슷한 규모의 4강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첫번째 구조개편이 있었다면 올해는 빅4의 진검승부가 이뤄지는 2차 개편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며 "각 은행이 연말 인사에서 영업력이 뛰어난 인사를 전면배치한 것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후 총자산 규모. 하나금융은 우리·국민에 이어 금융지주 3위 수준이 될 전망이다.(단위: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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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을 비롯해 막대한 인수자금 부담, 인수후 통합(PMI)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통 등 만만치않은 복병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있지만 인수 후 시너지 효과를 감안하면 잃는 것 보다 얻는 게 훨씬 많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기업여신 확대라는 숙원을 풀 수 있다. 저비용 수신기반인 월급통장 확보에 유리하고 방카슈랑스, 신용카드 등으로 전방위적인 영업확장이 가능하다. 거래기업을 통해 다양한 사업정보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나은행의 가계여신 비중은 전체 여신의 43.8%로 절반에 가깝지만 기업여신은 다른 은행, 특히 외환은행(70.2%)에 비해 한참 열위였다.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기업금융과 수출입금융, 해외영업 분야에 교두보 확보라는 전략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하나금융의 움직임에 다른 은행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경영진 사이에 내홍을 겪은 신한금융을 제외하고 국민·우리·기업은행 등은 필드를 주름잡던 인사를 승진 발령하는 등 영업전략을 대폭 강화했다.
우리금융 민영화가 복병으로 남아있다. 우리금융은 과점주주 형태의 독자적인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내면 인수가 어렵다며 발을 뺀 상태다. 적합한 매수자가 나서지 않자 정부도 매각작업을 중단했다.
| ▲ 정부는 조속한 우리금융 민영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사진은 우리은행 본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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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우리금융 민영화가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상기 공자위 위원장은 "조속한 민영화의 의지는 그대로다. 만약 그런 의지가 없다면 오히려 (이런 무의미한 입찰을) 계속 끌고 갔을 것"이라며 매각방침을 재확인했다.
남은 것은 누가 우리금융을 가져갈지 여부다. 우리금융측은 여전히 독자적인 민영화를 바라고 있다. 정부가 이제는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치중한 매각 정책을 바꿔 조속한 민영화와 금융산업 발전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정부는 경영권 프리미엄 10%를 요구했는데, 시장에서 사면 그냥 시장가로 살 수 있는데 누가 프리미엄을 주고 사려하겠냐"며 "지금은 회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조기회수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KB금융의 움직임도 주목하고 있다. 자금여력을 보면 KB금융 외에 마땅한 인수자를 찾기 어렵다는 논리에서다. 어윤대 회장은 "당분간 M&A를 하지않겠다"고 선을 그어놓았지만 `당분간`이라는 꼬리표는 언제든 뗄수 있는 게 M&A 생리인 점을 감안하면 KB금융이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관측이다. 어 회장은 취임 직전만 해도 "세계 50위권의 메가뱅크가 필요하다"며 M&A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바 있다.
산은금융 민영화도 은행권 재편을 불러올 수 있는 촉매제다. 산은은 취약한 수신기반을 만회하기 위해 외환은행 인수에 미련을 가졌으나 금융당국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
지난해 산은금융 설립으로 민영화의 첫 단추를 채웠다면 앞으로는 지분매각 등의 대장정에 나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