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멈춰선 금융정책…앞으로가 걱정이다

by문승관 기자
2024.12.09 05:00:00

[이데일리 문승관 금융부장] 경제와 금융이 가장 경계하는 게 불확실성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그 사이 한국의 금융·외환시장은 ‘발작’을 일으켰다. 다른 업종보다 정국 불안에 훨씬 더 예민한 영향을 받는 금융시장에선 ‘엑소더스’급 외국자본의 이탈이 이어졌다. 앞으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연일 경제·금융 간담회(F4회의)를 열고 시장 안정에 집중하고 있으나 대통령실 공백 상태로 모든 금융정책 추진이 셧다운됐다. 정국이 ‘시계 제로’인 상황에서 중요 금융 정책도 올 스톱이다. 사석에서 만난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치 상황과 민생 정책은 별개라 하지만 지금 금융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나. 예를 들어 밸류업 프로그램도 더는 강력한 추진이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정기임원인사를 끝낸 금융감독원 내부도 술렁인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저 현재 상황에서 더 악화하지 않을 정도로 시장 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누가 이 상황에서 밸류업, 금융정책, 민생금융을 논하고 나서겠나”라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당국과 금융사, 유관기관과의 거리감도 커지고 있다. 한 금융 유관기관장은 “공직 사회도 몸을 사리는 와중에 민간 금융사나 유관기관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국회가 파행으로 흐르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 관련 법률도 현재로선 처리 불가다. 예금자 보호 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과 불법 사금융을 막기 위해 대부업 자기자본 요건을 강화하는 대부업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각종 민생 대책 일정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표에 따라 준비하던 은행권 ‘맞춤형 소상공인 지원방안’은 추진 여부가 불투명하다. 다시금 준비하려면 차기 정권에서야 가능한 게 아니냐는 전망이다.

최근 인가 기준을 공개한 ‘제4인터넷전문은행’ 역시 인가 일정도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연말로 예정된 은행권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 대책 발표도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실손보험 개혁도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커졌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상법에 규정하자는 야당 방침에 대응해 나온 자본시장 개정안도 동력이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어 보인다. 탄핵 정국에 발목이 잡혀 정부의 관리 기조에 힘이 실리지 않을 가능성이 커서다. 이처럼 탄핵 등 정치 이슈에 파묻히면서 금융 정책은 뒷전이 됐다. 쉼 없이 달려도 모자랄 판에 동력이 사라지며 길 한가운데 멈춰 서게 됐다. 다시 달리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협의, 합의가 필요할지 가늠조차 안 된다. 불확실해진 정치 상황의 장기화로 앞으로 금융 시장이 얼마나 더 후퇴할지도 걱정이다. 탄핵 사태로 금융 시장이 주저앉지 않도록 정부와 금융기관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금융당국도 실효적 안정화 대책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이 말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암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