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 내집마련, 정상적으론 불가능한걸까…2030의 꿈 '부없치'[툰터뷰]
by김혜미 기자
2024.07.21 08:00:00
웹툰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 작가 유기
지방살이·재테크·내집마련 등 본인의 경험 녹여내
"헛된 욕심 갖지 말자…웹툰 통해 독자들과 대화"
늘어짐 없이 빠르게 전개…연재 3분의 2 가량 진행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들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그룹을 필두로 한 ‘K팝’을 비롯해 ‘K푸드’, ‘K패션’ 등 ‘K’는 한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습니다. 웹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스마트기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을 내리거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겨보는 방식의 웹툰은 한국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콘텐츠입니다. 최근에는 네이버웹툰이 세계 굴지의 정보기술기업들이 즐비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습니다. 이데일리는 또 하나의 ‘K’ 신화를 만들어 갈 국내 웹툰작가들을 릴레이로 인터뷰합니다.[편집자 주]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요즘 20대들은 치열하다. 대학 합격의 기쁨을 채 몇 달 느끼기도 전에 도서관을 찾고, 자격증을 따고, 공모전에 나가며 방학 때는 인턴으로 일하는 등 스펙 쌓기에 돌입한다. 취업을 한 뒤에도 평탄하지만은 않다. 업무에 적응하는 동시에 자산 축적을 위해 재테크 스터디에 나서고, 평일에는 주식, 주말이면 부동산 임장을 나가며 어떻게 하면 내 집을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네이버웹툰에 일요일 연재 중인 ‘부동산이 없는 자에게 치명적인(부없치)’은 부동산에 대한 20~30대 직장인들의 삶을 담아낸 웹툰이다. 누군가의 것인지 모를 손과, 119가 눌러진 전화기를 들고 눈을 번뜩이며 뒤를 돌아보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린 대표 이미지는 섬뜩함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도대체 부동산이 없으면 뭐가 어떻길래 이런 표정이 나오는 걸까. 작품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주인공 방지애가 ‘누구나 살고 싶은 더 넓고 좋은 집’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된 찰나의 선택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
부없치의 유기(본명 유지수) 작가를 지난 6월 하순께 서울 합정동에서 인터뷰했다. 1995년생, 올해로 딱 서른 살이 된 유기 작가에게선 사회 초년병의 느낌이 물씬 났지만 작품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진중했다. 그는 대학 시절 체험한 지방살이와 웹툰작가 데뷔 전 사회생활, 재테크 공부 등 본인을 둘러싼 주변환경과 체험을 모두 녹여내 부없치를 연재하고 있다. 그래서 더 실감나고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 일게다.
재미있는 것은 부없치가 내 집 마련이라는 경주에 가장 적극적일 것 같은 20~30대 외에 40대 이상 연령층에게도 고루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재테크에 대해 공부하던 분야 중 하나였습니다. 주식도 있고, 작게는 앱테크나 짠테크도 했었어요. 돈을 모으기 위해 통장 쪼개기(목적에 따라 통장을 분리하는 방법) 같은 것부터 공부하면서 부동산과 주식투자 등으로 분야를 넓혔죠. 제가 부동산에 대해 공부할 당시는 전세를 끼고 실투자금을 최소화해 주택을 구입하는 갭 투자가 유행이었어요. 특히 빌라를 싼 값에 사서 전세를 주고 또 빌라를 사서 전세 주는 것을 반복하는…. 저도 책을 찾아보고 유튜브로 공부도 했죠.
그런데 그 때 빌라왕 사기사건이 터졌어요. 그게 너무 충격적이어서 소재로 택하게 됐어요. 다행히(?) 빌라 갭투자는 돈이 없어서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지금도 내집 마련의 꿈은 꾸고 있어요.
주제를 딱히 정한 것도 아닌데 친구들과 만나면 다들 투자, 주식, 재테크 이야기를 많이 해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20살 때부터 10년간 자취생활을 하다보니 전세나 월세 계약을 2년마다 했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부동산에 좀 가까이 있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청년들이 부동산에 관해 갖는 관심이나 걱정, 어려움들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마음을 웹툰에도 담게된 것 같습니다.
의외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웃음). 제가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이기도 해요. 부동산 뿐 아니라 터무니없는 미제사건들이 많은데 자주 보다보니 ‘개연성’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를 보다 보면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개연성 없이 흘러가는 사건들이 많아요. 그런데 막상 나중에 문제가 해결되고나서 보면 개연성이 생기더라구요. 그게 스토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 웹툰도 쉴틈없이 사건이 일어나는데 나중에 뒤돌아보면 설명이 되는 그런 맥락으로 가고 있어요.
저는 그걸 ‘웃음버튼’이라고 불러요. 제가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삑사리의 예술’이라고 칭한 게 있는데요, 작중에서 어이없이 일어나는 사건이 전개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 말하죠. 그 ‘삑사리’를 제가 너무 좋아합니다. 제 만화에도 삑사리를 넣어 무섭고 긴장되는 상황에 실소가 터지게끔 하는 것이 제 취향입니다.
부예지는 ‘부자 예지’, 방지애는 ‘지방애’라는 뜻입니다. (지역차별적으로 볼 수 있지 않나요?) 맞아요. 지역차별을 함께 다루고자 했습니다. 주인공 방지애는 지방 출신이고 고교 시절 서울에 올라왔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아예 지방을 떠나는 캐릭터입니다.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는데 오히려 스스로가 지방 출신임을 부끄러워하고 차별하죠. 서울 동경이 강해서 지방 출신임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사실 저는 수도권에서 살다가 만화를 전공하고 싶어 대학 때 공주로 내려간 경우인데, 그때 왜 사람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을 그토록 가고싶어하는지 알게 됐어요. 교통도 불편하고 문화생활도 없고, 백화점 같은 편의시설도 없었고요. 공주시 외에 세종시에서도 살아봤는데 신도시라 모든 게 새 것이고 좋았지만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꼈어요. 그 때의 느낌으로 방지애 캐릭터를 잡았습니다.
부예지는 참고한 친구가 있는데 태어난 뒤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는 친구예요. 특별히 부자도 아니고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닌데 한 번도 부족함 없이 자란 게 제 눈에는 보이더라고요. 저의 열등감이라고 보려면 볼 수도 있는 부분이죠.
저는 내적수다가 많은 편입니다. 하고싶은 말이 많은데 그걸 웹툰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웹툰을 매개체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고 그게 직업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할 거리를 하나라도 심어주었다면 그걸로 뿌듯함을 느껴요.
부없치의 주제를 따지자면 ‘헛된 욕심을 갖지 말라’는 게 제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인 것 같아요. 주인공 방지애가 사실 그렇게 고달픈 인생은 아니거든요.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소기업에서 연봉 3000만원 정도를 받고 있고, 친구집에 얹혀살고 있지만 집세도 안내고 차도 있고. 그렇게 고달픈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의 주제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려다 참극을 빚게 되는거거든요. 본인의 현실을 받아들이자라는 게 주된 메시지입니다.
전체 줄거리의 3분의 2 정도 왔다고 보면 됩니다(인터뷰 당시는 약 한달 전이었음). 처음 시작할 때 3부로 나눴지만 실제로 연재를 시작하면서는 나누지 않고 휴재없이 쭉 달려왔어요. 애시당초 스릴러로 계획했던 작품이라 호흡이 굉장히 빠릅니다. 늘어짐 없이 사건을 빠르게 전개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짧게 느끼더라도 같은 호흡으로 끝까지 가려고 합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는데 저녁 8시까지 밥먹는 시간 외에는 계속 그립니다. 글과 그림은 제가 모두 직접 담당하고, 3명의 어시스트가 채색을 도와주고 계세요. 그런데도 일주일에 한 편을 거의 바로 그려서 넘길 정도예요. 세이브 원고 5편이 있었지만 금세 동이 났습니다. 수입은 제가 아주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보니 원고료를 어시스트들께 드리고나면 사실 마이너스(-)라고 보면 됩니다.
기존에 작품을 연재했어도 웹툰 플랫폼에 연재하려면 신인작가들과 동일하게 투고 과정을 거쳐 결정을 기다리는데요. 계속 도전할겁니다.
차기작 이야기를 하니 벌써 두근거립니다. 보통 3분의 2 정도 작품을 진행하다보면 차기작 생각이 나는데요. 제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 경험했던 비리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본래 저는 교수나 대학강사를 하고 싶었지만 대학원을 다니고, 졸업한 뒤 강사를 몇 년간 하면서 좋지 않은 일들을 많이 봤고 이후로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쯤 소재로 다뤄보면 어떨까 했는데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반응이 좋았어요.
저는 작품으로 독자들과 대화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감해주셔도 되고 반박해주셔도 되고. 다른 의견을 내주셔도 좋으니 작품으로 저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독자들께는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