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인플레이션 vs 계속되는 소비자 가격 전가[최정희의 이게머니]
by최정희 기자
2023.03.01 05:00:00
이창용 "3월부터 물가 4%대, 디스인플레이션 경로"
M2 감소하며 실질 통화량 감소, 수요측 물가 압력 약해
공공요금 인상 등 물가상승 2차 파급효과 우려
2% 넘는 물가상승 품목 비중은 72%로 안 꺾여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디스인플레이션 초기’라고 언급했다가 물가지표가 기대보다 꺾이지 않자 신뢰만 깎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1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비 6.4%로 전월(6.5%)보다 0.1%포인트 꺾이는 데 그쳤고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은 5.4%로 전월(5.3%)보다 외려 0.1%포인트 높았다.
우리나라 물가흐름도 미국 만큼은 아니지만 더디게 하락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달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처럼 ‘디스인플레이션 경로에 있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공공요금 등으로 물가 상승의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준금리를 좌우할 핵심 변수인 물가 흐름을 두고 금통위원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물가 패스’를 11번이나 언급했다. 그 어느 때보다 물가 경로가 중요해졌지만 물가는 상반된 흐름 속에서 갈핏을 잡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 달 23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5%로 석 달 전(3.6%)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디스인플레이션의 경로상으로 가고 있다”며 “2월엔 물가상승률이 5% 내외를 기록하겠지만 3월엔 4%대로 내려오고 연말 3%대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 3월 물가상승률이 4%대로 진입한 만큼 기저효과를 따져봐도 3월부턴 물가상승폭이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유가 하락세(93달러→84달러)로 물가상승률이 0.3%포인트 하향 조정될 여지가 있었지만 공공요금 인상, 높은 근원물가로 인해 0.1%포인트만 하향 조정됐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은 식료품·에너지 제외 근원물가는 3.0%, 농산물·석유류 제외 근원물가는 3.9%로 0.1%포인트, 0.3%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이 총재는 “근원물가는 소비자 물가지수보다 약간 천천히 변화하는, 후행 성격이 있지만 집값 하락 효과, 서비스 물가 하락 등이 반영되며 연말 3% 미만으로 갈 것을 베이스라인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집세는 물가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작년 7월(6.3%) 1.9%에서 올 1월 1.3%로 떨어졌고 개인서비스와 외식도 같은 기간 각각 6.0%, 8.4%에서 5.9%, 7.7%로 하락 추세에 있다.
한 금통위원은 1월 의사록에서 “1년 반에 걸친 긴축 통화정책 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총통화(M2)의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고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물가를 감안한 실질통화량 감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 압력 확대를 경계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평가했다. 작년 12월 M2는 전월비 0.2% 감소, 9개월래 감소 전환했다.
반면 한은에선 공공요금 인상의 2차 효과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작년 원자재 등 원가 상승에 따른 상품·서비스의 가격 전가 흐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물가상승률은 작년 7월 6.3%에서 올 1월 5.2%로 둔화됐지만 물가지수에 포함된 458개 품목 중 물가상승률이 2%를 초과한 품목의 비중은 외려 증가했다. 7월엔 318개(69.4%)에서 올 1월 331개(72.3%)로 우상향하고 있다. 식료품·에너지 제외 근원물가지수에 포함된 309개 품목을 분석한 결과 물가가 2%를 초과한 품목의 개수도 195개(63.1%)에서 214개(69.3%)로 높아졌다.
이와 관련 또 다른 금통위원은 의사록에서 “2% 이상 상승률을 보이는 품목들을 지수화한 확산지수를 살펴봐도 7월 수준에서 감소하고 있지 않는다”며 “수요측 물가 압력을 주로 반영하는 근원품목 확산지수는 오르고 있어 물가상승의 2차 효과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필요성이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전기·가스·수도요금은 작년 7월 15.7%에서 올 1월 28.3%로 높아지며 여타 상품·서비스 가격을 끌어올릴 가능성도 커졌다. 가공식품의 경우 같은 기간 8.2%에서 10.3%로 상승률이 더 커졌다. 국제 원당 가격이 6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며 가공식품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통상 경기가 어려우면 비용 부담이 늘어나더라도 매출 감소를 우려해 쉽게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하기 어려우나 급격한 경기침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 전가 현상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로 두 달 연속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에 선행하는 수입·생산자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1월 수입물가는 계약통화 기준 전월비 1.0% 상승, 7개월 만에 상승 반전했다. 최근 환율이 1300원을 훌쩍 넘으면서 원화 약세에 수입물가 가격이 오름세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생산자물가는 1월 전월비 0.4%로 석 달 만에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