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소리]정치는 저출산에 관심이 없다
by김영환 기자
2022.10.03 08:00: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아주 어린 영유아들은 집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두 살 안 된 애들도 여기(어린이집)를 오는구나.”
그가 1960년생 자식이 없는 검사였다면 전혀 문제 없을 발언이다. 더욱이 권력의 핵심들이 저지른 비리를 캐오던 ‘특수통’ 검사였다면 두 살, 24개월도 되지 않은 영유아들의 습성을 알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생후) 6개월 차부터 (어린이집에) 온다”는 답변에 “아 6개월. 그래도 뭐 걸어는 다니니깐”이라는 발언도 웃어 넘길 수 있다. 이르면 9개월부터 걷는 아이도 있지만 무자식의 61세 장년층에게는 대단한 사실이 아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달 27일 세종시 아이누리 어린이집을 방문해 아나바다 시장놀이를 참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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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대통령이다. 2021년 합계출산율이 0.81명이고 2022년에는 0.7명대까지 떨어질 것이 확실시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저출산 고령화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직속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장이다.
2021년 합계출산율 0.81명은 홍콩(0.75명)에 이은 전 세계 최저치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저출산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시킨 뒤 4개의 정부가 출산율 상승을 위해 노력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만 유일하게 소폭 반등했을 뿐 대한민국 출산율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린이집을 방문했던 날과 같은 날인 지난달 27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출산율을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췄던 기존 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시작으로 포퓰리즘이 아닌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작 스스로는 대한민국의 보육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도 모른 채 어린이집 방문 일정을 소화한 데는 ‘무관심’이라는 이유 말고는 다른 까닭이 떠오르지 않는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이미 2022년 대한민국이 0~1세 보육시설 이용 아동들에게 50만원의 보육료 바우처를 지원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이 두 번밖에 주재하지 않은 저출산 회의에 장관이 무슨 관심을 갖겠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이지만 임기 중 회의를 단 한 번도 주재한 적이 없고, 긴급 의제를 발굴한 적도 없다.”
같은 대통령을 상대로 비판한 의견 같지만 아니다. 첫 문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양승조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의 지적이고, 두 번째 문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적한 김병민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의 말이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지난 2016년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위원장 자격으로 박근혜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이같이 비판했다. 양 위원장은 국감 두 달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데 대통령이 3년 반동안 회의 주재를 단 한 번 했다”고 거듭 문제 삼았다.
엄밀히 말하면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2월 저출산위 첫 회의를 주재했고 같은 해 12월 3차 회의까지 2번 주재했다.
김병민 대변인의 발언은 대선전이 한참이던 지난 2021년에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첫 해인 지난 2017년 12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출범식을 겸한 간담회를 주재한 적이 있다.
자그마한 숫자의 오류가 있으나 박 전 대통령이나 문 전 대통령 모두 적어도 저출산위 회의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본인의 허물을 못보고 상대 정당 대통령의 저출산위 참석 회수만을 비판하고 나선 여야 정치권도 그저 저출산 문제는 정략의 대상이었을뿐이다.
지난 2020년 3월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서 부위원장은 저출산위를 만들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 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전문가였다.
그는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출생아 수가 더 줄어들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인터뷰 2달 전 국내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전 세계가 주요 이벤트를 추후로 미루는 등 급속도로 얼어붙던 시기였다.
그러면서도 서 위원장은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진 결혼이나 출산율이 회복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었다. 과연 그럴까.
출산율은 전술했듯 2022년 0.7명대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서 부위원장 시절 0.92명이 높아 보일 지경이다.
코로나 위기에서 완전하게 극복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코로나를 이유로 결혼을 미루지는 않게 된 지금, 혼인 건수는 2019년부터 23만9159건, 21만3502건, 19만2507건으로 계속 줄고 있다. 인구 1000명당 혼인율을 의미하는 조혼인율도 같은 기간 4.7, 4.2, 3.8로 지속 감소세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출산율 회복과 별개의 방안으로 이민 독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구상해온 이민청 설립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다만 ‘단일민족’이란 인식이 강한 한국에서 이민자로 인한 부작용을 가늠하고 있는지는 우려스럽다. 세계 대부분 국가가 인구조사에 ‘인종’을 묻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통계청에서는 외국인 수만 파악할 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외국인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건 중국계 한국인(조선족)과 중국인 등으로 74만명 가량이 된다. 무분별하게 나타나고 있는 중국인에 대한 비하·혐오 의식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추진하는 이민 정책은 자칫 또 다른 사회적 숙제를 남길 수 있다.
한국의 정치는 계층별 갈등을 이용하면 이용했지, 해결 의지를 보여준 바 없다. 당장 지난해 대선만 하더라도 20~30대 남녀를 타깃으로 삼아 표 얻는 데만 혈안이 됐던 정치권이다.
초저출산 국가에 2021년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 OECD 1위인 26.0명.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이때, 인구를 그저 사람이 아닌 생산성의 지표로만 본다면 인구증가는 더욱 요원한 목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