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OTT를 즐기는 경험…넷플은 되고 티빙은 안됐다(영상)

by정다슬 기자
2022.09.04 08:00:00

시각장애인도 스마트폰 쓸 수 있는 화면리더기
국내 OTT는 제대로 된 기능 구현 불가능 상황
내년 1월부터 장애인의 앱접근성 보장 법제화
미디어 베리어프리…OTT로 비약적 향상 가능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영우가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김밥을 먹고 빈 접시에 냅킨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는다. 영우가 의자를 테이블 아래에 놓고 계산대 앞으로 와 가방을 열자 광호가 도시락을 넣어준다. 영우가 헤드폰을 쓴다. “다녀오겠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화의 한 장면이다. 자폐증을 가진 여주인공 우영우의 첫 출근을 그리는 이 장면에는 대사가 없는 무음의 장면들이 있다. 영우가 김밥을 좋아한다는 것, 오랜 기간 아버지와 딸이 살며 호흡을 맞추면서 쌓아온 규칙이 있다는 것까지. 시청자들은 장면을 통해 이같은 정보를 캐치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이런 정보를 얻지 못한다. 이를 도와주는 것이 넷플릭스의 음성해설 기능이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는 넷플릭스와 웨이브, 티빙, 왓챠의 안드로이드앱과 iOS앱을 로그인/검색가능/동영상시청/설정 등으로 나눠 웹접근성을 평가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영상 하단에서 음성과 자막 설정을 클릭해 적용하면 된다. 시각장애인·청각장애인도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를 즐길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스마트폰을 쓸까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의외로 스마트폰의 [설정]만 키면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스마트폰 설정의 [접근성]에 들어가 보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리더기(스크린리더기) 프로그램을 작동시킬 수 있다. 안드로이드는 ‘Talkback’, IoS는 ‘VoiceOver’ 기능으로 앱 내부 구성항목 등을 음성으로 안내한다. 음성 안내에 따라 시각장애인은 현재 어떤 애플리케이션이 작동되고 어떤 기능이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성화하는지를 파악한다. 한 번 화면을 쓸면 다음 기능으로의 안내, 두 번 두드리면 선택이다.

비장애인인 기자가 화면리더기로 앱을 작동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음성이 너무 빨랐고 두드려서 검색·선택한다는 인터페이스도 익숙지 않았다. 그러나 25만명의 시각장애인은 화면리더기를 통해 스마트폰을 너무나도 능숙하게 다룬다고 한다.

지난달 31일 서울 상암동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에서 만난 공선미 책임연구원은 “많은 시각장애인이 더 빨리 음성을 듣고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선택한다”며 “시각 기능이 약한 만큼 청각에 예민하고 유연하게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터득한 생존능력인 셈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애플리케이션도 이를 지원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 화면리더기가 앱의 각 기능을 인식해 이를 해설하기 위해서는 앱 내부항목에 충분한 ‘라벨링’이 돼 있어야 한다. 우영우가 현재 인식돼 있으면 우영우를, ‘우리들의블루스’가 인식돼 있으면 우리들의블루스를 스마트폰이 소리내서 읽어줘야 한다. 재생하고 싶을 때 ‘재생’을, 앞으로 돌리고 싶으면 ‘앞으로’를, 끄고 싶으면 ‘끄기’를 읽어주는 앱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을 ‘웹 접근성’이라고 하며 이는 앱 서비스 제공자의 몫이다.

안타깝게도 넷플릭스와 웨이브, 티빙 등 국내외 주요 OTT를 확인해본 결과,

넷플릭스는 앞서 밝힌 음성해설과 자막 등의 설정 등이 용이했다. 동영상을 재생한 후에도 기능의 탐색 역시 잘 이뤄졌고 선택도 잘 적용됐다. 10초 앞으로나 10초 뒤로 등의 기능에서 화면리더기가 ‘초 앞으로’, ‘I초 뒤로’ 등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동영상 청취는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티빙은 동영상이 재생된 이후에는 화면리더기가 먹통이었다. 아무리 화면을 두드려도 티빙에 있는 작품명만 나왔다. 라벨링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탓이다.

웨이브는 그나마 인식이 됐지만, 화면이 재생되는 상태에서는 인식률이 불량했다. 공 책임연구원은 “아무래도 화면이 재생된 후에는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자동으로 재생 버튼 등이 사라지면서 화면리더기가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OTT에서는 넷플릭스처럼 자막이나 음성해설 등을 제공해주지도 않는다. 자막 제작이나 음성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OTT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전 세계로 서비스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막을 제작하게 됐지만 국내 시장만을 타깃으로 하는 국내 OTT 입장에서는 소수의 시청약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금전적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같은 환경의 차이가 있더라도 앱 시행과정에서 웹 접근성을 보장하고 음성해설과 청각장애인용 자막 등을 제작해 공급하는 노력은 부럽고 본받게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웹에 대해서만 장애인의 접근성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내년 1월부터는 모바일 앱에 대해서도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처럼 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앱 서비스 제공자가 고려해야 할 의무를 법적으로 규정했다. 다만 법 제정이 끝이 아니다. 웹 접근성이 의무화돼 있지만 여전히 많은 웹사이트들은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

2017년 시각장애인 963명이 SSG닷컴(이마트몰), 롯데쇼핑(롯데마트몰), 이베이코리아(G마켓)를 상대로 제기한 ‘웹 사이트 이용 차별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5년째 지난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법원은 지난해 쇼핑몰사에 원고들에게 각각 10만원씩 지급하고 6개월 내 각 쇼핑몰 웹사이트에 화면리더기로 전자상거래 상품 제공, 상품광고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마트와 이베이코리아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아직도 법정싸움이 진행 중이다.

모바일 앱의 접근성이 법적으로 보장되더라도 현실로 이것이 반영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앱 접근성에 대한 국가공인 인증제도가 부재한 것 역시 문제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웹 접근성에만 공인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인증제도를 운영하면 공공기관 등이 선제적으로 이를 인증받고 민간에도 확산되는 효과가 있다.

한시련의 조현명 책임연구원은 “시각장애인 직장맘인 내가 매번 베리어프리 극장에 가는 것은 쉽지 않다”며 “시각장애인도 매일 새롭게 올라오는 다양한 콘텐츠를 스마트폰으로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OTT 앱에 대한 접근성 향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