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환율급등·고금리 '3고' 현상에…"팔면 팔수록 손해"

by김상윤 기자
2022.05.02 05:30:00

프리미엄 제품 판매 늘려도 영업익 줄어
中企 상황 더 열악..납품가격 인상도 못해
"제조 기업 66.8% 올해 영업익 감소 예상"
기업 투자 끌어낼 규제완화, 인센티브 절실

[이데일리 김상윤 박민 이후섭 이다원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는 당사 제품에 대한 수요 감소와 수익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의 부정적 환경과 불안정성, 유가와 생필품 가격 변동에 따른 세계 경제 침체는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IT 제품, TV 및 모바일 등을 제조하는 고객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해당 제품의 감산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달 29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연차보고서(Form 20-f)를 제출하면서 우울한 전망을 담았다. 원자재 비용 상승과 금리 인상, 공급 과잉 및 수요 축소에 따른 LCD(액정표시장치) 판가 하락 등이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 역시 부정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유동성 장기부채를 포함한 장단기차입금은 12조 6670억원에 달한다.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어 시설투자에 나설 시 차입 부담이 커졌다.

부산항 신선대와 감만부두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 우리 기업들이 ‘3고(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물가 현상이 임금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소비자 가격이 연쇄적으로 상승할 경우 수요가 줄어들고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들은 올해 초 세운 경영계획과 자금조달, 투자계획을 재점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재계 관계자는 “여러 리스크를 고려해 올해 사업을 전망했지만, 예상보다 거시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여러 상황을 재점검하고 있다”고 했다.

전자업체들은 물류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삼성전자 소비자가전 부문은 프리미엄 제품 판매를 늘리면서 올해 1분기 역대 최고인 1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1조 1000억원)보다 줄어든 8000억원에 머물렀다. 글로벌 물류비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 환율 상승 등 영향을 받아서다. LG전자는 2분기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비 증가와 같은 원가 인상 요인이 이어져 경영환경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외부 변수가 너무 많은 시점”이라며 “컨티전시플랜(비상계획)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답이 없다. 산업용 볼트·너트를 제조하는 A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를 보면서 원청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납품가격을 올릴 경우 거래거절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니켈 가격이 3배나 올라 은행에서 50억원 대출을 받아 겨우겨우 니켈 확보에 나섰다”며 “원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납품가격을 올릴 수도 없고 팔면 팔수록 손해다. 직원들의 임금도 못 올리니 회사 분위기도 나빠지고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의 어려움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 5월 BSI 전망치는 97.2로 집계됐다. 지난 4월 99.1에 이어 2개월 연속 기준선 100을 하회한 수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망 악화 심화로 인해 경기가 악화할 것으로 보는 기업들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업보다 많은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제조기업 304곳을 대상으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기업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6.8%는 올해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고, 31.2%는 제품을 팔면 팔수록 손해가 발생해 영업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인식 대한상의 산업정책실장은 “그나마 1분기에는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인상 수준을 감내할 수 있었지만, 갈수록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임금과 금리, 물류비 등 기업의 비용부담 요인들이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응책을 만드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생산원가 상승뿐만 아니라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 부담과 채권금리 상승에 따른 자금조달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신용등급 AA-급 우량기업의 3년 만기 회사채 평균 금리는 연 3.98%로 마감했다. 지난해 말 연 2.415%보다 약 1.57%포인트(p) 상승한 수치다.

자금조달 부담이 커지자 SK머티리얼즈, 한화 등 회사채 발행을 계획했던 기업들은 줄줄이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중 회사채 발행규모는 총 12조 9001억원으로 전월(14조 934억원) 대비 8.5% 감소했다. 기업들의 투자가 줄 것이라는 ‘시그널’이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만 할 게 아니라 기업 투자를 끌어낼 수 있는 각종 인센티브를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새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막는 데 가장 힘을 주겠다고 했지만, 경기침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경기부양책도 정부가 고민해줘야 한다”며 “법인세 인하를 비롯해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제를 보다 완화하고 세제 인센티브를 보다 강화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