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화정책 딜레마, 속도조절 필요하다

by논설 위원
2022.03.11 05:00:00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서방 진영이 초강력 경제 제재로 맞서면서 세계경제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금융 핵폭탄 급으로 불리는 스위프트(SWIFT, 국제은행간통신협회)배제에 이어 러시아산 원유 수입도 금지하는 등 초강수를 두고 있다. 그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고 원자재와 곡물 값이 폭등하고 있다. 서방의 경제봉쇄 조치로 러시아의 디폴트(채무 불이행)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글로벌 경제가 극도의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물가안정과 경기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한국은행을 딜레마에 빠트리고 있다. 두 마리 토끼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직전인 지난달 24일 ‘3.1% 물가, 3% 성장’이라는 올해 거시지표 수정 전망치를 내놓았다. 물가 전망치는 종전 2%에서 1.1%포인트나 대폭 올린 반면 성장률 전망치는 3%를 그대로 유지했다. 공급망 차질로 인한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값 폭등으로 물가는 오르겠지만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가 살아나 3%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물가는 더 오르고 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4%대 물가, 2%대 성장’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120달러로 오르면 성장률은 0.4%포인트 하락하고 경상수지가 516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는 이미 배럴당 130달러선을 뚫은 데 이어 최악의 경우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를 감안하면 ‘5%대 물가, 1%대 성장’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거시경제 전망이 달라지면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한은은 내부적으로 연말 기준금리 목표치를 연 1.75~2%로 설정하고 있다. 이 계획표대로라면 연내 2~3회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그러나 급격한 금리 인상은 성장률 추락을 가속화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상반기에는 우크라이나 사태 진행 상황을 보면서 가급적 금리 인상을 자제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