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판결]“출퇴근 사고, 언제쯤 산재로 인정받을까?”
by조용석 기자
2016.01.11 05:00:00
회사 제공 교통수단 아니면 산재 인정 불가…공무원은 예외
與野 노동5법 합의 늦어지면서 발목 잡혀…통과 불투명
| 출퇴근 사고를 산재로 포함하자는 산재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안개 낀 출근길을 걷는 직장인들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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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콘크리트 거푸집을 만드는 기술자였던 오씨는 2014년 11월 새벽, 자전거를 타고 공사현장으로 출근하다 승용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오씨는 이 사고로 오른쪽 정강이뼈가 부러졌고 머리와 얼굴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오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사업주가 지정한 숙소에서 출근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며 “자전거는 출퇴근 시간 외에도 업무상 자주 이용돼 자전거 출근은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법원 역시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박준석 판사는 “오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출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자전거는 회사가 지급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숙소와 공사현장은 불과 616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도보로도 충분히 출근할 수 있었다”고 청구를 기각했다. 오씨는 항소를 포기했고 판결은 확정됐다.(2015구단54448)
이 판결은 ‘출·퇴근 중에 발생한 재해가 업무상 재해가 되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근로자의 출퇴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로 한정한다’는 그간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 한 것이다. 현재는 회사 통근버스를 이용하다가 사고가 난 경우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이 아닌 공무원연금법이 적용되는 공무원이 아니라면 출퇴근길 사고를 재해로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출퇴근길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오스트리아(1917년), 독일(1925년), 프랑스(1946년)는 20세기 초중반부터 이미 출퇴근 사고를 산재에 포함했고 국제노동기구(ILO)는 1964년 출퇴근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협약에 넣었다. 가까운 일본도 1973년부터 통근재해보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해결의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9월 대표 발의한 산재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산재법 37조(업무상 재해의 인정기준)에 3호를 신설, ‘출퇴근 재해’를 명시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포함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도보·자전거·이륜자동차 등을 이용한 출퇴근 사고는 2017년부터, 자동차 등은 2020년부터 산재법에 적용된다.
‘서울변회와 이데일리가 뽑은 이달의 판결’ 선정 자문위원인 김기천 변호사(39·사법연수원 36기)는 “출퇴근은 업무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데 그 과정에서 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의 태도는 산재법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공무원의 경우 출퇴근 중 재해를 원칙적으로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어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씨의 사례를 이달의 판결로 선정한 이유는 현재 국회에 대법원 판례를 시정할 수 있는 내용의 산재법 개정안이 계류돼 이를 소개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출퇴근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보자는 산재법 개정안은 사실상 여야 합의를 마쳤다. 하지만 노동5법(근로기준법·산재법·고용보험법·기간제법·파견법)을 한꺼번에 처리하자는 여당과 민감한 파견법과 기간제법을 빼고 나머지 3개를 분리 처리하자는 야당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 대립 중이다. 여야간 정쟁에 발목이 잡혀 2017년부터 출퇴근길 사고가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