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F 2011]⑫美 금융맹주 위상 `흔들`..주도권 쟁탈전 격화

by김춘동 기자
2011.05.16 10:00:00

美, 무분별한 탈규제와 과도한 팽창으로 버블 붕괴..기존 패러다임 와해
신흥국, 가파른 경제성장과 경상흑자 등으로 무장..선진국 추격 본격화

[이데일리 김춘동 기자]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존 금융 패러다임의 근간을 통째로 흔들었다.

이전까지 달러화 중심의 기축통화체제를 바탕으로 탈규제와 증권화, 겸업화, 글로벌화로 대변되던 영미식 금융시스템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모델로 많은 국가들의 글로벌 스탠다드로 떠올랐다.

하지만 순간의 달콤함에 취해 적절한 제어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특히 실물과 무관하게 과도하게 팽창한 금융부문은 자산가격 버블과 함께 주기적으로 위기를 초래하면서 '판도라의 상자'처럼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시한폭탄이 되고 말았다.

이번 금융위기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직격탄을 가하면서 글로벌 금융권력의 이동과 함께 새로운 주도권 쟁탈전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이 위기의 주범으로 금융맹주의 자리가 위협받는 가운데, 가파른 경제성장에다 경상수지 흑자와 오일머니 등으로 무장한 신흥국들의 추격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대형 투자은행들은 글로벌 벤치마크 대상이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단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대변되는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이었다. 하지만 그 근저엔 위기 이전까지 절대적인 가치로 추앙받던 영미식 금융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다. 영미식 금융 패러다임은 탈규제와 증권화, 겸업화, 글로벌화 등으로 대변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금융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금융혁신에 나서게 된다. 시장주의의 바탕위에 적극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특히 미국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 이후 유지되어 온 상업은행과 투자은행간 분리정책을 철회고, 은행들의 위험투자를 허용하는 등 적극적인 금융규제 완화에 나섰다.

금융기법과 IT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함께 글로벌화가 맞물리면서 미국의 금융규제 완화정책은 겉으로만 보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게 된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대형 투자은행들은 대표적인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각국 정부는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고 잇달아 금융개혁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적절한 제어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가운데 증권화,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금융과 실물부문의 괴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엄청난 레버리지에 의존한 파생금융상품시장의 급격한 팽창 등으로 금융부문이 오히려 실물부문을 압도하면서, 파생상품으로 대변되는 복합금융상품은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건드릴 수도 없는 거대공룡으로 변하고 말았다.

실제로 세계 금융자산 규모는 1990년 48조 달러에서 2007년엔 194조 달러로 불과 17년만에 4배이상 급증했다. 세계 GDP 대비 금융자산 비율 역시 1990년 226%에서 2007년 342%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실물부문과 유리된 채 레버리지에 의존한 금융부문의 과도한 팽창은 곧바로 자산가격의 버블로 이어졌고, 금융시장은 버블과 붕괴를 반복하면서 주기적으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 전 세계 금융자산 추이(그래프: 삼성경제연구소)

2008년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기존 금융 패러다임의 모순을 극적으로 드러낸 결정판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은행의 부실자산 상각규모만 대략 1조6000억달러, 원화기준으로 무려 1700조원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금융위기가 국지적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와 남미 등 신흥국들이 금융시장 개방과 함께 금융규제 완화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금융위기의 파괴력은 훨씬 더 막강해졌다.

실제로 신흥국으로 흘러간 민간자금 유입규모는 1995년 2259억 달러에서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엔 8878억 달러로 4배 가까이 늘면서 개별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초국경 자본이동이 종종 한 국가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적극적인 개방과 규제완화가 금융시장의 강력한 성장동력인 동시에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등장했다는 뜻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금융혁신을 주도하던 선진국들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금융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G20 차원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규제개혁의 공조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과 아시아 자체적으로도 유럽금융안정메커니즘(EFSM)·유럽금융안정기구(EFSF), 치앙마이합의(CMI) 등을 통해 금융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는 물론 금융맹주로서 미국의 지위가 크게 흔들리면서 향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주도권 쟁탈전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선진국 금융회사들의 경우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각국 정부들의 잇단 금융규제 강화로 자본을 더 확충해야 할 처지에 직면한 만큼 당분간 공격적인 사업 확장은 어려운 상태다.

반면 금융위기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중국 등 신흥국들은 경상수지 흑자와 오일머니 등으로 그 동안 축적된 자본과 가파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리만 브라더스 인수를 추진한 사례에서 잘 나타나 듯, 기존 글로벌 금융회사의 사업부문 매각 등 선진국 금융회사의 구조조정 등 신흥국들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글로벌 네트워크와 금융상품의 다양성 등에서 기존 선진국 금융회사들의 경쟁우위가 아직까진 확고하다는 점에서, 향후 국제금융질서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지배력 격차가 조금씩 축소되는 형태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글로벌 차원에서 볼 때 현재 국제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초래하는 원인중 하나는 이사아의 금융낙후"라며 "이미 세상은 다극화 체제로 변화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로선 글로벌 체제로 발전초석을 마련해야 만 동반·지속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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